가족 같은 젊은 농부들의 모임 '산청군 4-H'
가족 같은 젊은 농부들의 모임 '산청군 4-H'
  • 김성대 기자
  • 승인 2019.01.03 22:4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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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4-H의 장점은 끈끈한신뢰와열정
소외계층 청년들과도 유대관계맺고파

4-H란 명석한 머리(Head), 충성스런 마음(Heart), 부지런한 손(Hands), 그리고 건강한 몸(Health)을 뜻하는 네 가지 이념을 가리킨다. 우리 말로는 지(智)ㆍ덕(德)ㆍ노(勞)ㆍ체(體)로 번역해 쓰고 있다.

1945년 해방 직후 낙후된 농촌 부흥과 실의에 빠진 청소년들에게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도입된 4-H운동은 본래 국가 장래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이 지ㆍ덕ㆍ노ㆍ체 이념을 생활화 해 인격을 닦고 농촌을 위한 마음을 길러 창조적 미래 세대로 성장해나가도록 하는 지역사회 청소년 교육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이후 70년대 새마을운동의 밑바탕이 된다.

4-H 운동이 다른 청소년 운동과 다른 점은 농업ㆍ환경ㆍ생명 가치를 이끌어내고 청년 농업인 4-H회원의 경우, 우리 농업과 농촌 사회를 이끌어갈 전문 농업인으로 자질을 길러내는데 있다.

한국 4-H 활동 추진 체계는 ‘4-H 활동지원법과 기본 시책’에 따른 민관 협력 체제, 평생 교육 운동체다. 가령 정부 부문에서는 4-H 활동 지도와 지원을 담당하는 농촌지도기관, 그리고 민간 부문에서 4-H활동을 추진하는 4-H주관 단체(한국4-H본부)가 협력하는 파트너십으로 4-H 청소년을 육성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70여 나라에서 청소년 교육 운동을 펼치고 있는 4-H는 크게 세 단위로 나뉘는데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환경/농업/자연친화적 태도를 형성케 하는 ‘학생 4-H’, 19세에서 29세까지 잠재 농업 인력을 발굴키 위한 ‘대학 4-H’, 그리고 19~39세까지 전문 농업 경영인을 양성하려는 ‘청년 농업인 4-H’가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 다룰 ‘산청군 4-H’는 이 중 세 번째에 해당하는 모임이다. 이번에 새로 이 모임의 회장이 된 정승민 씨와 부회장 양승창 씨를 산청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이번에 '산청군 4-H'의 신임 회장, 부회장으로 선출된 정승민 씨(사진오른쪽)와 양승창 씨(사진왼쪽)를 산청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사진=김시원 기자.

 

- 산청군 4-H 신임 회장이 됐다. 기분이 어떤가.

정승민 회장(이하 ‘정’): 앞의 권영민 회장님이 너무 잘 해주셔서 좀 부담스럽기도 하고 더 잘해야 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군수님, 의장님이 신경을 많이 써주셔서 거기에 부응해 잘 해야 되겠다 생각하고 있다.

-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나?

정: 올해 32살이 됐다.

양승창 부회장(이하 ‘양’): 저는 30살이다.

- 농사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 가업을 이어받은 건가, 아니면?

정: 어머니가 10년 전 산청으로 귀농하셨고, 아버지도 다른 사업 하시다 5년 전쯤 합류하셨다. 저는 학교에서 공부를 좀 더 하려고 했는데 서른 살이 됐을 때 특별한 일이 없으면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살겠다는 약속을 해서 들어왔다. 와보니 전공을 살려서 무언가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전공이?

정: 불교학을 전공했고 명상, 심리 쪽 석사까지 공부했다. 산청에서 항노화와 힐링 쪽으로 관광문화상품을 개발 중이어서 ‘농업에 기반 한 명상 치유, 힐링’ 쪽으로 아이디어를 내보면 좋겠다 생각을 해서 오게 됐다.

- 취급하는 주요 작물이 무엇인가.

정: 양파와 마늘, 밭작물을 주로 했는데 요즘엔 가공 쪽으로 생각을 하고 있다. 전통 장류를 가공하면서 이것도 명상과 연결을 시키려고 한다. 가령 장이 숙성되고 발효되는 과정을 사람이 명상을 하면서 내면을 다스리는 쪽으로 개발을 해보려고 생각하고 있다.

 

'산청군 4-H'는 회원들 간 나이 차가 1, 2살 밖에 나질 않아 모두가 친형제처럼 지낸다고 한다.
'산청군 4-H'는 회원들 간 나이 차가 1, 2살 밖에 나질 않아 모두가 친형제처럼 지낸다고 한다.

 

- 부회장님은 어떤가.

양: 저는 아버지가 귀농하신 지 10년이 넘었다. 제가 대학 3~4학년 때 항공 방재라는 사업을 아버지 권유로 하게 됐다. 지인들과 동업 아닌 동업을 했는데 올해 4년 차다. 그걸 하다 보니 농업 본연의 맛이랄까, 그런 걸 느끼게 됐다. 6~9월까지 비수기 때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농사를 직접 배워보자 해서 시작했다. 과기대 동물소재공학과를 졸업했으니까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해보자 다짐을 하고, 석사 졸업 후 공부도 계속 해가면서 아버지 밑에서 농사 배우며 축산도 같이 하리라 마음 먹어 여기까지 왔다. 여름에는 항공 방재 사업을 하고 나머지 절기에는 축산업, 밭작물을 하고 있다.

- 농사 지으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

양: 어리다는 게 단점이 되더라. 사람들이 내 나이를 물어보고 어리니까 어디에 들어가기가 일단 힘이 들었다. 뭘 해도 인정받기 쉽지 않았고. 커리어가 쌓일 때까진 그 상태가 지속됐다. 물론 지금은 더 안 늙었으면 좋겠는데(웃음) 26살 정도까지만 해도 나이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되게 많이 했다. 나이 어린 게 장점일 줄 알았는데 이게 단점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정: 처음에 동네 어르신들로부터 ‘젊은데 농촌엔 왜 들어왔냐’ ‘나가서 다른 일 해라, 힘들다’ ‘남 밑에서 돈 버는 게 훨씬 수월하다’ 엄청 구박을 받았다. 어딜 가면 내 이름이 아니라 누구 아들 이렇게 불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 아버지가 단체에서 활동을 하셨기 때문에 저도 그 활동을 할 수 있고, 행사를 가도 아는 얼굴들이 많으니까 정착을 잘 할 수 있었던 거였는데 말이다. 하지만 당시엔 그런 말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공부를 그렇게 많이 해놓고 왜 농사를 짓느냐, 잠깐 쉬다가 나가라. 부모님도 저를 소개할 때 농사 지으러 들어온 게 아니라 공부하다 잠깐 도와주러 들어왔다 이렇게 말씀을 하셔서(웃음). 그래서 부모님과 엄청 다투기도 했다. 그걸 왜 부끄러워하냐고. 농사를 지으러 왔다고 해야 그 사람들이 나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 하고 도움을 주려 할 건데. 그냥 도와주러 왔다 하면 그건 너네 부모님 일이니까 넌 그냥 도와만 줘, 이러면서 계속 애 취급을 하니까. 그런 것들이 많이 힘들었다.

양: 우린 나름 비전을 가지고 온 건데 어르신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거다. 젊은 애들이 취업이 안 돼서 들어왔구나, 이런 생각부터 먼저 하고. 그런 모습들이 보이고 들리니까 힘들었던 거다.

 

'산청 4-H'는 일러스트 강사를 따로 초빙해 스스로 상품 홍보물, 현수막 디자인까지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왔다.
'산청군 4-H'는 일러스트 강사를 따로 초빙해 스스로 상품 홍보물, 현수막 디자인까지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왔다.

 

- 친구들은 농부가 된 친구를 어떻게 생각하나?

정: 저는 고향이 대구인데, 친구들은 제가 작물을 수확했다고 안 알려줘도 이번엔 뭐 수확했냐고 먼저 연락을 해온다. 뭐 있을 때마다 연락을 먼저 해와서는 친구가 농사 지은 걸 비싸도 사먹고 싶다 말한다. 서로가 경험하지 못한 걸 하며 사니까 만나면 친구끼리 이야기 거리도 참 많다. 대구 친구들과는 1시간 거리니까 자주 만난다. 대학 동창들과도 3개월마다 한 번씩은 만난다. 산청에 왔을 때 처음엔 친구가 없어 힘들었는데 4-H 활동을 하면서 신세계를 만났다(웃음).

양: 농업, 농사일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제외하면 대부분 친구들은 자랑스럽게 생각해준다. 결과가 계속 보이니까 응원도 해주고. 원래는 한 달에 2, 3번 친구들 만나러 사천엘 갔었는데 4-H 가입 후에는 반 년에 한 번 가기도 힘들어졌다. 많아야 1, 2살 차이 나는 형님들, 우리 회장님 경우엔 똑똑하고(웃음), 배울 게 참 많겠다고 생각해 들어왔다.

- 4-H가 왜 필요한 것 같은가?

정: 일단 사람들끼리 유대 관계, 공동체 의식을 길러준다. 기관장들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배우고. 보조사업이 내려오면 우린 눈치 안 보고 신청할 수도 있다. 또 농촌에서 살지 않았으면 받기 힘들었을 상을 내가 받고 있다는 것도 4-H에 몸담고 있기 때문일 거다. 사회에 있었다면 도지사, 군수 상을 내가 받을 일은 아마 없지 않았을까.

양: 독립적인 농사를 협업적 관계로 치환해내는 배움의 장소랄까. 그게 4-H의 존재 이유인 것 같다.

- 나라에서 지원은 많이 해주는가?

정: 국가 법령에 4-H 지원법이 따로 제정돼있다. 청년 농업인 육성하고 그들이 정착을 잘 할 수 있도록 교육도 하고, 애로사항을 물어볼 수도 있고. 기술센터 자체에 담당 부서가 있으니까 여러모로 도움이 많이 된다.

- 4-H 회장으로서 기관들에 바라는 점은 없나?

정: 기관에서 요구하는 대부분을 잘 들어주신다. 실제 정부 차원에서 청년 농업인 육성에 관심을 쏟고 있고, 군수님도 청년 농업인이 있어야 산청이 산다, 라고 말하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산청군 4-H 회원들은 아이디어부터 디자인, 판매까지 직접 해결하려는 열정을 공유하고 있다. 

 

- 산청군 4-H 회원수는 얼마인가.

정: 34명이다.

- 산청 토박이가 더 많나, 아니면 귀농해온 사람이 더 많은가.

정: 반은 토박이, 반은 귀농해온 사람들이다. 남매도 있고 부부도 많다.

- 제일 먼 곳에서 귀농해온 사람은?

정: 수도권에서 온 분이 있다. 어머님이 10년 전에 오셨고 그 분은 3년 전에 왔다.

양: 디자인 일을 하다가 내려왔는데, 뭘 만드는 걸 보면 ‘아, 이 사람 디자인 한 사람 맞구나’ 싶을 정도다. 문구 하나, 로고 하나에서도 프로 냄새가 난다.

- 4-H 가입 조건 같은 게 있나?

정: 특별한 조건은 없다. 산청에 살고, 39세 이하면 된다.

양: 단, 39세 이상인 형님들과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은 마음에 산청 관내에서만 45세까지 비공식적으로 회원 자격을 준다. 물론 공식적인 보조사업, 행정 부분에선 그 분들은 제외된다.

- 산청군 4-H만의 자랑거리가 있다면?

정: 사이가 정말 돈독해서 거의 형제처럼 지낸다. 최근엔 우리가 농업을 업으로 삼지만 상품을 알리려면 우리가 직접 디자인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전문가에게 일러스트 교육을 받기도 했다. 홍보물, 약초축제 현수막 디자인을 우리가 다 해서 인쇄만 맡기면 되는 시스템을 구상한 거다. 결국 그게 산청군 4-H만의 무엇으로 특화된 것 같다. 전국 행사들에 가서 담당 공무원 분들이 오면 다 우리가 직접 한 거라 자랑도 하고. 그렇게 우리끼리 아이디어를 내서 직접 해내는 열정이 산청군 4-H의 가장 큰 자랑거리인 것 같다.

- 최근에 따로 경사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정: 지난해 상복이 터졌다(웃음). 권영민 전 회장이 농협주관 청년농업인상과 차세대농업인대상 본상(농업진흥청장)을 받았고, 전주영 전 부회장이 경상남도 도지사 표창과 산청군수 표창을 받았다. 저도 경상남도 도지사 표창을, 박혜림 님과 김원규, 최진우 회원은 각각 산청군의회 의장 표창, 산청군 농협조합장 표창, 그리고 산청군 군수 표창을 받았다.

양: 올해엔 저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표창을 받을 예정이다(웃음).

- 모두 축하드린다. 끝으로 4-H의 앞으로 계획 또는 각 개인의 앞으로 바람, 계획을 말해달라.

정: 과제포라고, 함께 농사짓는 게 있는데 거기서 나온 수익금으로 지난해에도 군청에 100만원 성금 기탁을 했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소외계층 청년들과도 유대 관계를 맺고 싶다. 우리는 영농 4-H이면서 봉사, 공익적 성격도 있기 때문이다. 또 농업의 가치를 알리는 차원에서 관내 학교들의 농사 체험, 교육 프로그램도 마련해보고 싶다. 물론 가장 큰 바람은 우리 회원 농가들이 다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단체를 유지해나가는 것이다.

양: 지난해 마늘을 처음 다뤄봤는데 결과가 좋질 못했다. 손해를 좀 봤고 그래서 자존심이 상했다. 올해는 좀 잘 됐으면 좋겠고, 이게 끝이 아닌 이걸 계기로 산청에서 ‘마늘’ 하면 제 이름이 거론될 수 있도록 열심히 할 계획이다.

김성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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