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산청을 대표할 천혜의 공간, 산청산골박물관
미래 산청을 대표할 천혜의 공간, 산청산골박물관
  • 김성대 기자
  • 승인 2018.12.31 18: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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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제57호 제1종 전문박물관
산골농장 이상호대표 고향위해지어
산청산골박물관은 산청군 신안면 민들레마을과 간디중학교 사이 경사진 산길 꼭대기에 있다. 사진=김성대 기자.

 

세밑 한파를 뚫고 올라선 국도 3호선. 진주에서 20여 분을 달려 산청군 신안면 원지 적벽산 인근에 닿았다. 차는 다시 기독교 공동체인 민들레 마을과 대안 중학교인 간디중학교 사이 경사진 산길로 접어들었고, 가파른 그 길을 넘고서야 비로소 목적지인 산청산골박물관을 마주할 수 있었다. 차에서 내리니 겨울 칼바람이 두 볼을 스치듯 베었다. 하지만 돌아서 마주한 탁 트인 산세는 세상을 내 발 아래 눕게 했다. 정복자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 현실을 비웃는 풍광에 감탄하며 박물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박물관 1층 도자기 전시관에선 조용히 책도 읽을 수 있다. 사진=김성대 기자.

 

사비 들여 지은 1급 박물관

산청산골박물관은 이상호 관장이 사비 20여억 원을 들여 지은 1급 개인 박물관이다. 2014년 5월 26일 신축에 들어가 2015년 5월 1일에 임시 개관을 한 뒤, 같은 해 6월 19일 ‘경상남도 제57호’로 제1종 전문박물관으로 등록됐다. 박물관 정식개관은 그해 7월 11일에 했다.

산청산골박물관은 산골농장 위 1만 7,893제곱미터 부지에 373제곱미터 규모 전시관과 수장고(37제곱미터), 자료실(55제곱미터), 사무실(14제곱미터) 등을 함께 갖추고 있다. 지하 1층, 지상 3층에 총건축면적은 694제곱미터인 박물관 본관에는 토기, 백자, 청자 등 등록 유물과 골동품 192점, 그리고 분청, 옹기, 문서 등 비등록 유물 4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여기에 베틀, 물레, 가마니틀 등 생활 민속품 400여 점까지 더하면 전시 물품은 총 1,000여 점에 이른다.

 

지하 1층, 지상 3층인 박물관 본관에는 총 1,000여 점에 이르는 물품들이 전시돼있다. 사진=김성대 기자.

 

1층은 닭 관련 물품들, 2층은 산골카페

1층 전시관을 둘러보다 보면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닭이다. 전시관에는 닭 그림과 닭 모형, 닭 항아리, 옛 닭 사육시설 등 닭 관련 물품들로 즐비하다. 이는 골동품에 관심이 많은 이 관장이 지난 20여 년간 산란계 축산업을 하며 국내·외에서 모은 것들이다. 

이 관장은 하루에만 20~25만 개 달걀을 생산해내는 ‘산골농장’의 대표이기도 하다. 그는 고향인 산청에 문화공간을 만들어 지역주민들과 함께 즐기려 이 박물관을 만들었다.

 

산골농장의 대표인 이 관장이 국내외를 다니며 수집한 닭 모형들. 사진=김성대 기자.
생각 중인지 조는 중인지 모를 동자승. 중요무형문화재 목아 박찬수 선생의 작품이다. 사진=김성대 기자.
산청산골박물관에는 닭 관련 모형들이 많다. 사진=김성대 기자.

 

박물관 2층은 관람객들이 쉬었다 갈 수 있도록 산골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차와 식사를 할 수 있는 이곳에선 이 관장의 농장에서 난 산골란, 산청에서 생산한 차 등 특산품도 판매하고 있다.

또한 박물관 주변은 소나무 분재와 단풍나무 등 정성들인 조경으로 볼거리를 마련해두었고, 박물관에서 조금 떨어진 산골농장에는 돌 조각공원을 조성해 방문객들 쉼터를 배려했다.

2016년 12월 경상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 교수 4명이 ‘동락’이라는 기획전시를 열기도 한 박물관은 도자기 체험, 계란빵 만들기, 약초 가꾸기 등 다양한 체험 행사도 마련해 방문자들의 지루함을 일찌감치 잠재웠다.

 

◆산청산골박물관 이상호 관장 미니인터뷰

 

이상호 관장은 자신이 나고 자란 지역에 투자하고 그 지역을 알리려는 생각에서 박물관을 지었다고 말했다. 사진=산청산골박물관 제공.

 

- 고향이 산청인가?

그렇다. 부산에서 40년 정도 유통 사업을 하다 고향으로 왔다. 산청 출신만 15만 명 이상이 사는 부산에선 재부산 산청군향우회 회장직을 맡아 활동하기도 했다.

- 95년 5월부터 장미축제를 열었다.

원래 문화와 환경에 관심이 많았다. 90년대 초부터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꽃 장미를 많이 심었는데, 100여 품종에 수 만 그루를 심다 보니 이게 축제가 됐다. 남쪽 지역에선 최고였다. 고속도로가 막히고 경찰이 관여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울산시청 관계자들, 조선대학교 간부들도 와서 보고 벤치마킹을 할 정도였다. 그러다 AI(조류인플루엔자)가 창궐하면서 사람 출입이 막혔고 결국 축제도 접게 됐다.

- 박물관은 어떻게 짓게 된 건가?

장미축제를 하며 사진촬영대회, 유물 전시 등도 같이 했는데 그때 구입한 유물들이 축제를 접고 나니 둘 데 가 없었다. 여기저기 옮기면서 깨지고. 그래서 박물관을 지어야지 생각했다. 물론 이전부터 박물관을 지을 생각은 해왔다. 실제 단성IC 인근에 생태박물관을 지으려 토지까지 사들였었으니까. 당시 산청군에서 좀 도와주기로 했었는데 잘 안 됐다. 그래서 지금 박물관을 짓게 됐는데 처음엔 서울의 모 대학교 유명한 건축학과 교수에게 설계를 의뢰했다. 그런데 그 분이 자기 작품은 서울 (건설)업체를 써야 한다고 해서 결국 성사되진 못했다. 그 분과 세계 박물관 견학도 많이 하고 했는데. 그때 느낀 것이 세계적인 박물관들은 안 만큼이나 바깥 조경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는 것이다. 우리 박물관도 부지가 넓으니 계속 손보면서 꾸며갈 예정인데, 아무래도 명소가 되려면 5~10년 정도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전망은 정취암보다 여기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정취암에선 좁게 보이지만 여긴 더 많이 보인다.

 

산청산골박물관의 탁 트인 산세는 세상을 내 발 아래 눕게 했다. 사진=김성대 기자.

 

- 고향에서 의미 있는 행보인 것 같다.

지난날 파리정서 기념탑을 세우는데 힘을 보탰다.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을 국보로 만드는 데도 앞장섰고, ‘이제 개국공신교서(李濟開國功臣敎書)’의 국보 승격에도 관여했다. 사학 쪽에 관심을 갖다보니 자연스레 연계가 돼 한 일들이다. 지금도 해외로 자주 나가 견문을 넓히려 한다. 박물관은 내가 나고 자란 지역에 투자하고 그 지역을 알리려는 생각에서 지은 것이다. 다른 목적은 다 부차적인 것들이다.

- 골동품들은 언제부터 모았나. 전시회도 여는 것 같던데.

평생을 모은 것들이다. 내년 봄쯤엔 문방사우(文房四友) 전시회도 열 예정이다. 사실 개인이 무료로 박물관을 운영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저 고향에 뭔가를 남겨보려는 것이다. 그래서 경남 메세나협회 등 문화 예술 쪽으로 되도록 많은 관심을 갖고 활동 중이다.

- 들어오는 길이 제법 가팔랐다. ‘산골’이 실감 나던데(웃음).

처음엔 길도 없었다. 사비로 다 닦은 거다. 관광버스들이 들어오길 정말 꺼리긴 한다(웃음).

- 이곳(황토방)에서 머무는 것인가?

집은 진주에 따로 있다. 가끔 일이 있을 때 여기서 숙식을 하는 정도다. 여긴 창 바깥으로 해 떠오르는 모습이 참 좋다. 새해가 되면 그 장관을 보러 진주에서도 많이들 오신다.

 

◎이상호 관장 이력

진주 국립경상대학교 박사과정

진주 국립경상대학교 응용생명과학부 이학박사 학위

(전)경남과학기술대학교 동물생명과학부 명예교수

(전)(사)친환경 운동 본부 공동대표

(전)한국농수산대학 현장 교수

(전)새마을회 진주시지회장

(전)채란분과위원장

산청양계영농조합법인 대표이사 취임

농림부장관 표창장

대통령 표창장

전국 산란계 자조금 관리 위원장

한국가금학회 이사

산청양계영농조합법인 회장 취임

산청산골박물관장 취임

(현)산청 향토 장학회 이사장

(현)좋은세상 진주시협의회장

(현)경남생약농업협동조합장

김성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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