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웠으면 실천하라" 남명 조식의 정신을 기리다 '한국선비문화연구원’
"배웠으면 실천하라" 남명 조식의 정신을 기리다 '한국선비문화연구원’
  • 김성대 기자
  • 승인 2019.01.16 16: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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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학파거두 남명조식선비정신계승
위탁 운영 적자, 2년 만 경영 정상화
한국 정신문화의 성지 되도록 할 것
산청군 시천면 남명로에 위치한 한국선비문화연구원. 멀리 지리산 천왕봉이 보인다. 연구원은 영남 학파의 거두 남명 조식 선생의 실천적 선비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건립됐다.

 

우리 역사상 가장 훌륭하고 성공한 교육자로 평가받는 영남 학파의 거두 남명 조식 선생의 실천적 선비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국가사회적 정신문화 함양에 기여하기 위해 산청군이 중앙정부와 경상남도의 지원으로 건립한 한국선비문화연구원(이하 ‘연구원’)은 2016년 4월경 관련 학계와 창녕 조씨 문중 위주로 설립된 ‘남명학진흥원’에 의해 위탁 운영되고 있다. 연구원은 그렇게 8개월간 운영되며 수 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 경영의 주체였던 재단은 위기 의식을 느꼈고, 산청군에서도 부담을 가졌다. 그러던 2016년 11월에 연구원은 현 최구식 연구원장, 박태갑 사무처장 체제를 갖추고 새로이 출범하게 된다. 박태갑 사무처장이 이곳 살림을 맡게 된 것은 자신이 문화관광과장이었던 시절 연구원의 밑그림을 그렸다는 소명의식 때문이었다. 어려움에 빠져 있는 연구원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새로운 콘텐츠를 갖추고 초기 투자가 더 있어야 한다고 본 박 사무처장은 세 가지 사항에 중점을 뒀다. 먼저 직원을 새로 뽑아 서비스 만족도를 높였고, 단순 대여 위주 시설운용을 개선하기 위해 연수 수요자를 감안한 자체 프로그램을 만든 뒤 지속적 모니터링으로 만족도를 높였다. 또한 적자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곳에는 과감히 재투자를 해 시설 만족도를 높임으로써 입소문을 통한 재방문 기회를 확대하는 전략을 썼다. 그런 것들이 효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연간 5,600명 정도이던 방문객 수가 2017년 13,000명, 2018년 19,000명을 기록하며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적자액 역시 급속히 줄어 머지 않아 정상화 단계로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한국선비문화연구원 박태갑 사무처장. 그는 한해 5,600명 정도이던 연구원 방문객 수를 지난해 19,000명까지 끌어올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사진=김성대 기자. 

 

“저는 이 일과 여러 번 인연이 겹쳤습니다. 첫 번째는 제가 산청군 경제도시과장을 지내던 2002년도였는데요, 당시 시천면 지역에 ‘양수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사업비’라는 게 나왔습니다. 그 돈을 공적인 일에 쓰면 좋겠다 싶었죠. 당시 함께 근무했던 강순경 계장님과 남명 조식 선생님을 기리는 산천재 인근 토지를 사는데 쓰자 제안했고 그 땅을 사들여 선비공원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그 땅에 연구원이 지어질 거란 생각은 못했어요. 두 번째는 이후 제가 면장으로 근무하다 2006년도에 문화관광과장을 맡고 있을 때였습니다. 서영배 전 경상대 총장님, 남명선생의 훌륭한 후손인 부산교통 조옥환 사장님, 당시 진주교대 총장을 지내셨던 권정호님 등이 사무실에 오셔서 남명학 연구원을 30억 정도 들여 건립하면 좋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주시더군요. 검토해본 결과 30억 원으로는 건물 하나 정도는 지을 수 있어도 콘텐츠를 돌릴 수 있는 수준은 못 됐습니다. 할려면 제대로 하자 해서 198억 원 가량으로 기획하고 당시 이재근 군수님께 결재를 받았습니다. 이후 군수님께서 의지를 가지고 중앙부처를 계속 설득했고, 당시 국회문광위원회 간사를 하고 계셨던 최구식 원장님도 예산 확보에 많은 기여를 해주심으로써 연구원 건립은 마침내 국가 사업으로 확정됩니다. 그런 인연으로 애착을 가지고 공직 퇴직 후 이곳 사무처장을 맡게 됐습니다.”

 

산천재 남명매와 덕천서원. 남명매는 450년 이상 됐다. 연구원 주변에 산재해있는 이러한 청렴 유적들은 그대로 연구원의 상징이자 인프라가 된다.

 

연구원 설립의 가장 큰 의미는 남명 조식 선생의 정신을 기리는 일을 중앙정부와 도에서 이제 나라의 일, 도의 일로 인식하게 됐다는 데 있다. 특히 지난해 연구원의 건의 등을 바탕으로 경남도에서 ‘선비문화진흥조례’를 제정 공포한 것은 획기적인 일로, 이로써 오랜 숙원이던 법적 제도적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또한 지난해 경남도에서 발족된 ‘남명 TF팀’이 올해 정식 계가 되면서 조직 체계를 갖추게 된 것 역시 큰 성과다. 이처럼 경남도의 활발한 움직임과 함께 연구원에서는 2018년에 이어 국비 7억, 도비 2억, 산청군비 2억까지 총 11억 예산을 확보했다. 이 예산은 초중고생을 비롯한 방문객들의 선비 문화 체험 연수비로 쓰여 참여자들 부담을 줄이고 프로그램 내용을 알차게 구축해 재방문율을 더욱 높여나갈 전망이다.

“우리 연구원은 환경적으로 인프라가 매우 뛰어납니다. 예컨대 남명 선생이 조선 최고 사학으로 설립한 산천재가 있고, 그때 심었던 매화나무인 남명매도 있습니다. 그 옆엔 남명기념관이, 또 인근엔 남명 선생의 학덕을 이어가는 덕천서원과 선생이 잠들어 계신 남명묘소, 남명 선생의 시에 등장한 역사적 현장들(지리산 양단수, 세심정 등)도 그대로 남아 있죠. 무엇보다 이곳 연구원 자리는 지리산 천왕봉이 가장 잘 보이는 곳입니다. 남명 선생이 지리산을 12번 답사 끝에 찾아냈습니다. 선생은 하늘과 가장 가까이 맞닿아 있는 지리산 천왕봉처럼 티끌 하나 오염되지 않고 맑고 투명하게 청렴, 청빈하게 살겠다는 의지로 후학들을 양성했습니다. 이처럼 주변에 산재해있는 청렴 유적들은 그대로 우리 연구원의 상징이자 독특한 인프라가 되는 것입니다.”

 

남명기념관과 남명묘소.

 

남명 선생이 학문에 정진할 당시 학풍과 주류 사회의 관심은 정통 성리학이었다. 하지만 선생은 달랐다. 그는 성리학 외 의서, 병법, 천문지리 등도 제자들에게 적극 가르쳤다. 잡학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선생은 학계에서 이단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해안가에 왜구들이 출몰해 백성들을 괴롭히는 모습을 본 선생이 나라의 미래를 걱정해 ‘우리도 힘을 가져야겠다’ ‘왜구에 대응 해야겠다’ 생각하고 행한 일임에도 말이다. 실제 남명 선생 사후 20년 뒤 임진왜란이 일어났고, 당시 남명의 제자 57명이 의병장이 됐다. 거의 모든 제자들이 가족과 재산을 버리고 죽음을 각오하며 의병활동에 투신한 것이다. 다른 선비들의 문하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정의, 올곧음, 청렴. 남명의 정신은 촛불혁명이라는 현실의 시대정신과도 맥이 닿는다. 배웠으면 실천하라는 남명의 사상 또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즉, 실천유학의 현대적 계승이다. 또한 남명은 ‘나라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주권재민을 이미 400여 년 전에 주창한 선각자였다.

“백성은 물과 같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기도 한다.”

왕권 시대에 잘못 몰리면 죽임을 당할 수 있는 극단적인 주장임에도 남명 선생은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라는 소신을 ‘민암부’라는 작품에 담아 설파했다. 뿐만 아니라 명종을 어린 고아로, 실권자인 문정왕후를 과부로 표현한 ‘단성소(을묘사직소)’에선 왕도와 청렴을 일깨웠고, ‘무진봉사’라는 상소를 통해선 공무원들의 청렴 문제를 신랄하게 다뤘다. 남명의 학설은 지금 현실에 대입해도 위화감이 없다. 실학의 태동을 이끌어낸 남명의 학문은 실제 학문이다. 남명의 정신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정신이 아니라 현실의 정신이고 미래의 정신이다. 이러한 남명의 얼을 기리는 곳의 향후 계획과 비전을 박 사무처장에게 물었다.

 

국궁 체험 모습. 박 사무처장은 연구원을 "초중고생은 물론 공무원과 사회지도층들도 꼭 한 번 다녀가고 싶은 곳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정신문화의 성지가 될 수 있도록 비전과 열정을 가지고 연구원을 발전시켜나갈 계획입니다. 초중고생은 물론 공무원과 사회지도층들도 꼭 한 번 다녀가고 싶은 곳이 되도록 할 것이구요. 사실 연수라는 게 머리를 채우는 것보단 비워야 하는 측면도 있어요. 우리 연구원은 40%를 강의로, 60%는 힐링 체험을 실시합니다. 예컨대 지리산 천왕봉을 등정하고 대원사 생태길을 탐방하고 둘레길 8, 9코스를 걷고 동의보감촌을 탐방하는 등 재미있고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마련해 두고 있습니다. 자신을 되돌아보고 재충전하는, 그러면서 남명을 통해 삶의 가치관을 되돌아볼 수 있는 그런 연수기관이 되도록 노력할 예정입니다.”

김성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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