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리뷰] 대중을 속이는 대중음악, 잠비나이 ‘온다(ONDA)’
[음반리뷰] 대중을 속이는 대중음악, 잠비나이 ‘온다(ONDA)’
  • 김성대 기자
  • 승인 2019.07.16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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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비나이의 브레인' 이일우에게 영감을 준 대자연(그랜드 캐년). 사진=The Tell-Tale Heart 제공.

‘국악과 헤비메탈의 크로스오버로 우리 것을 세계에 알리는 팀’

잠비나이라는 밴드를 이런 식으로 단순 정의 내리는 건 부당하다. 그것은 사실일 순 있어도 진실이라기엔 모호하다. 국악과 헤비메탈을 뒤섞은 건 음악적 사실이지만, 그들이 그것으로 ‘우리 것을 세계에 알리려’ 따로 노력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그간 밴드의 인터뷰들을 보면 그들은 특정 음악 장르를 비롯해 국경과 가치관, 제도와 관습에 얽매이길 거부하는 쪽에 가까웠다. 메인 송라이터 이일우(기타, 태평소, 피리)가 음악으로 뿜어내는 분노, 누리는 자유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경험과 정서에 기반 한 것이지, 거창한 국가 이념이나 심오한 사회 철학에 바탕을 둔 게 아니다. 잠비나이는 그저 자신들이 배워 알고 있는 것(국악)으로 사람들이 접하지 못한 음악 세계를 잉태해 세상에 토해냈을 뿐, 그걸로 내 나라 내 조국을 빛내려 한 적은 적어도 표면적으론 없었다. 이들을 자꾸만 ‘한국’과 ‘우리 것’에 가두려는 시도들은 그래서 무모하다. 모르긴 해도 아마 밴드 역시 그런 시도들이 불만스럽거나 부담스러울 것이다.

세 번째 작품이다. 달라진 건 없다. 베이시스트(유병구)와 드러머(최재혁)가 가세해 풀 밴드 모양새를 갖추었다는 것(그 뜨거운 시너지는 ‘사상(絲狀)의 지평선 (Event Horizon)’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말곤 음악에서 기존 작법과 크게 비껴난 예를 이 앨범에서 찾긴 어렵다. 수줍지만 전면적인 심은용의 거문고는 언제든 곡의 도발을 위해 박차를 가할 준비가 되어 있고, 김보미의 사무치는 해금 역시 이일우의 처절한 기타에 슬픈 낭만을 심을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이번 앨범은 과거 ‘Wardrobe(벽장)’처럼, 이일우가 직장에서 겪은 좋지 않은 경험이 반영된 곡이 있었던 것 마냥 밴드가 전업 뮤지션 생활을 하며 겪은 생활의 무게감을 작품의 뼈대로 삼았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잃게 되는 것, 잃어버리게 만드는 것, 자연 뿐 아니라 우리가 상실하고 멀어지는 것들에 관한 곡을 썼던 이일우는 이번에도 “너는 정말 잘해 나가고 있어”라며 위로하는 대자연(앨범 재킷의 그랜드 캐년)의 품에 안겨 곡들을 썼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반전을 새긴 ‘Sawtooth’나 ‘나무의 대화 (In the Woods)’가 품은 13분 16초의 심연이 다 그 결과이자 절충이다.

잠비나이는 대중적이지 않다. “우리는 늘 대중성을 생각하면서 곡을 만든다”는 그들의 확신은 그러나 대중에겐 농담에 가까운 불확실이다. 가령 ‘작은 위로가 있는 곳에 (Small Consolation)’를 들으며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대중은 드물다. 거기엔 위로 대신 느리게 침투해오는 폭탄 같은 침묵만 있을 뿐이다. 우리말 ‘온다’가 지닌 느리고 조용한 가치가 거칠고 거대한 스페인어 ‘파도(ONDA)’에 전복되는 광경은 그래서 한편으론 잠비나이 음악이 지닌 보편적 특징처럼 여겨진다. 그들은 대중을 속이는 대중성을 자신들이 지향하는 대중성이라 음악으로 치열하게 말하고 있다.

언젠가 외국 팬이 해준 “잠비나이가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공기를 바꾼다”는 말을 이일우는 특히 마음에 들어 했다. 할로우 잰과 슬립낫을 함께 국악 안에 가두면 어떤 몸부림을 칠 지가 들리는 ‘검은 빛은 붉은 빛으로 (Sun. Tears. Red.)’는 그 평가를 거드는 최적의 논거다. 그들의 소리가 지나간 자리에서 공기는 완전히 새로운 옷을 입고 온전한 긴장을 머금는다. 소스라치는 광기, 아득한 전율, 그을린 환희. ‘퓨전’과 ‘국악록’이라는 단순 도식으로 이들을 설명하려 들지마라. 잠비나이는 어설픈 정의를 거부한다. 대신에 느껴라. 그것만이 잠비나이 음악을 감당하고 이해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열쇠다.

글/김성대 (본지 편집장 ·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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