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이 살 길이다" 더플레이 박진용 원장
"지역이 살 길이다" 더플레이 박진용 원장
  • 김성대 기자
  • 승인 2019.03.14 11: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진주출신밴드 블루라라 이끈 프로드러머
여유가되면 솔로음반 제작도 해보고싶어
창작뮤지컬 '의기' 예술회관 무대에 올려

기대 이상이었다. 지역 공연단체 '공연예술BOX 더플레이'가 개관 30주년을 맞은 경남문화예술회관과 공동으로 제작한 창작뮤지컬 <의기>는 연출자의 말처럼 "대형 라이선스 작품보단 부족하지만 앞으로 펼쳐질 가능성"은 분명히 보여준 작품이었다. 전국 최초 3.1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진주 기생들을 다룬 이 작품은 국악과 양악, 교방검무와 비보이, 판소리와 댄스, 굿거리장단과 왈츠를 뒤섞으며 시작부터 장르의 구분을 지워버렸다. 대신 무대 앞에 배치한 밴드의 역동성과 무대 뒤에 뜬 보름달의 서정성을 대비시켜 <의기>는 일제 치하라는 슬픈 민족 현실에 저항한 그 시대 비주류들의 용기를 과감히 조명해냈다. 연극과 음악, 뮤지컬계 청년 인재 발굴을 지역에서 실천하고 있는 진주 평거동 소재 '더플레이'의 박진용 원장. 그는 더플레이 원장을 비롯해 경남청년문화창업협동조합 대표, 공연예술BOX 더플레이 예술감독, 진주청소년뮤지컬단 다재다능 예술감독을 병행하며 수도권 위주로 돌아가는 한국 공연예술계의 현실에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지는 인물이다. 왜 너도나도 무조건 서울, 서울로만 가려고 생각하는 걸까. 지금처럼 방구석에서도 글로벌을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자신이 발딛고 사는 터를 '지방'으로 폄훼하는 젊은이들의 주눅이 그는 안타까웠다. 박 원장에게 발전과 가능성의 거점은 언제나 진주다. 서울에서 진주로, 가 아니라 진주에서 서울로, 가 연출자로서 그의 지론이요 목표다. 그에게 대한민국의 예술 수도는 진주다. <의기>가 초연되기 며칠 전 더플레이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지역 공연예술단체 더플레이의 박진용 원장. 그는 창신대학교 음악과에서 드럼을 전공한 프로 드러머이기도 하다. 사진=김성대 기자.

▲진주에서 쭉 살았나.

진주중학교를 나와 진주기계공고 관악부에서 6년간 활동했고, 연암공업대학교 밴드 동아리에도 있었다. 교회에선 연극과 콩트도 했다. 군대는 군악대엘 가 99년 12월에 제대했다. 작곡은 고등학교 때부터 독학으로 시작했다. 집에선 반대했지만 음악을 포기할 순 없었다. 보다 체계적인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창신대학교 음악과에 진학했고 드럼을 전공했다. 원래 저는 클래식 쪽이었지만 실용음악을 하다 드럼에 빠진 케이스다. 록과 재즈, 퓨전 드럼까지 두루 연주할 수 있다. 그러다 결성한 팀이 블루라라(Blue Lara)였다. 드러머가 리더였던 밴드다.

▲블루라라는 프로 밴드였던 걸로 아는데, 밴드 생활을 접은 이유는?

진주에 거점을 두고 서울을 왔다갔다 했다. 쌈지사운드페스티벌이었나. 그 대회 본선 최종 무대 전 단계에 장기하와 얼굴들과 함께 섰던 적이 있다. 2011년에 열린 지포(Zippo) 록밴드 대회에서도 최종 선발된 4팀 중 2등을 한 적이 있다. 그렇게 가능성은 보였던 밴드였지만 기타 치던 멤버가 결혼을 하고, 또 다른 멤버는 몸이 안 좋아지면서 각자의 길을 걷게 됐다. 기타 치던 친구는 호주에 사는데 그곳 방송에도 캐스팅 되면서 나름 음악 활동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당신도 음악을 여전히 하고 있다. 이번에 제작한 <의기>의 경우도 모든 곡들을 직접 쓴 걸로 아는데. 솔로 뮤지션으로서 활동 계획은 없나.

<의기>를 완성하는 데만 2년이 걸렸다. 여유가 없는 거다. 개인 음반 작업은 여유가 되면 하고 싶다.

창작뮤지컬 <의기> 연기 지도를 하고 있는 박진용 원장.

▲연극과 뮤지컬은 따로 전공을 한 건가.

혼자서 공부했다. 지역에선 뮤지컬과 연극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곳이 없다. 다 서울에 가야 있다. 영화 제작 과정도 창원 정도는 오가야 심화 학습을 할 수 있으니, 참 열악한 환경인 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미 해당 과정을 다 거쳐 왔는데 굳이 보여주기 위해 학위를 받는다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 일은 현장에 가서 부딪혀야 하는 일이다.

▲영화도 다루나.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출품한 <앵커>에 제작 부장으로 참여했다. 단역배우로 출연한 적도 있고. 진주를 비롯한 서부경남 쪽엔 연기를 가르칠 사람이 없다. 지역 인프라를 만들기 위해 제가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거다. 그나마 이제야 체계를 갖춰가는 중이다.

▲<의기>는 어떻게 경남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까지 오르게 된 건가. 또 <의기> 전까지 몇 편의 작품을 만들었나.

언젠가 다른 작품 갈라 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 경남문화예술회관 관계자 분들이 관심 있게 봐주셔서 성사됐다. <의기> 제작은 이전에 만든 3편 작품들을 진행했던 게 밑바탕이 됐다. 뮤지컬은 종합예술이다 보니 안무 구성부터 작곡, 편곡까지 제가 다 해내야 했다. 그렇다고 MR(경음악)로 갈 수도 없고, 무조건 라이브 밴드로 갔기 때문에 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의기>의 경우 출연진과 악기 팀만 35명에 스태프는 11명이다.

▲더플레이는 어떤 단체인가.

더플레이는 공연예술단체이면서 비영리민간단체다. 지역 청년들을 중심으로 지역 공연예술 활성화를 위한 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삼는 곳이다. 서부경남 지역에는 연극 단체는 있지만 뮤지컬 단체는 없다. 당연히 우리처럼 라이브 밴드를 뮤지컬 전속 팀으로 배치하는 건 그래서 더 비현실적인 얘기다. 더플레이는 진주를 중심으로 한 서부경남 지역에서 청년 인재들을 발굴하려 늘 노력하는 단체다.

창작뮤지컬 <의기> 배우들의 연습 모습.

▲진주에서 이 일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 서울, 부산 같은 대도시에서 해도 되지 않나.

더플레이는 진주에 거점을 두는 공연예술단체다. ‘서울에서 진주로’가 아니라 ‘진주에서 서울로’를 모토로 삼는다.

▲쉽지 않은 길을 걷고 있다. 힘든 적은 없나.

7, 8년째 뮤지컬을 하고 있다. 음악은 25년 이상을 했다. 몇 년 전 사비를 털어 <지난 겨울 이야기>라는 창작 뮤지컬을 외부에서 진행한 적이 있다. 앞으로 내가 예술 활동을 계속 할 것이냐 말 것이냐 결정을 내리게 할 기로였던 작품이다. 한 집안의 가장이 된 이상 이걸 실패하면 다 접자는 생각을 해야 했다. 다 접고 목수가 되려 했는데 관람한 분들이 너무 재미있다고 해줘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 길이 운명인 것 같다.(웃음)

▲지역에서 예술 문화 활동을 펼쳐나가기에 현실은 여전히 팍팍하다. 수도권 수준의 활성화를 이루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우선 환경이 갖춰져야 할 것 같다. 뭔가 된다 싶으면 서울로 가버리는 현상부터 바뀌어야 하고, 자신의 터에서 그 일을 해보겠다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도 많아져야 한다. 지속적인 공부와 도전은 당연히 필수다. 더플레이는 그래서 무조건 진주를 거점으로 갈 예정이다.

▲2년 전부터 구상했다는 뮤지컬 <의기>는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시민들을 주·조연 배우로 발탁해 제작했다고 들었다. 

하동, 산청, 사천, 진주 외곽 쪽에 사는 분들이 지원해주셨다. 학생도 있고 직장인도 있다. 노래를 접고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 뮤지컬을 전공하려다 접은 친구들도 있다. 이들과 함께 갈라 공연 준비부터 6~7개월을 달려왔다.

지난 3월 8, 9일 경남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무대에 오른 창작뮤지컬 <의기> 출연진들과 박진용 원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계속 고향을 떠나고 있다. 그들이 내세우는 가장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이유는 역시 ‘지역에선 할 게 없어서’일 거다. 그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고 또 앞으로 무엇을 제안해나갈 것인가.

지역에서 배우, 뮤지션을 꿈꾸는 친구들이 너무 서울만 고집한다. 지금은 유튜브 세상이고, 때문에 지방에서도 얼마든지 세계화를 외칠 수 있는 세상인데도 말이다. 자신이 원하는 길을 지배하고 개척하려는 생각보다 안정적인 생활 쪽으로 쏠리는 경향은 아쉬운 부분이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곳에서 꿈을 꾸는 친구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뮤지컬 <의기> 이후 계획은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4가지 버킷 리스트가 있다. 첫 번째는 제가 만든 곡들을 직접 연주해서 앨범을 내는 것. 그건 이뤘다. 두 번째는 내가 만든 작품을 뮤지컬 공연으로 올리는 것. 이 역시 이뤘다. 세 번째와 네 번째가 아직 못 이룬 것들인데 바로 뮤지컬 영화 제작과 오케스트라 지휘다. 요컨대 <의기> 이후 당장의 계획은 <의기>를 뮤지컬영화로 만드는 것이다. 현재 진행을 위해 준비단계에 있다.

김성대 기자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