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성보다 나만의 색깔이 중요하죠" 김은기 작가
"대중성보다 나만의 색깔이 중요하죠" 김은기 작가
  • 조현웅 기자
  • 승인 2019.03.22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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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기 작가는 20여년 이상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며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진은 김은기 작가와 그의 작품 '태양안에서'
김은기 작가는 20여년 이상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며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진은 김은기 작가와 그의 작품 '태양안에서'

“예술에 대중성이 필요하진 않다고 생각해요. 대중성을 갖게 되면 유행이 되고, 누군가는 그 유행을 이끌었겠죠. 이미 누군가 했던 것을 굳이 저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저는 저만의 스타일을 고집해왔어요. 물론 그것이 지금도 제가 고생하는 이유일 수도 있죠.(웃음) 하지만 저만의 색깔을 포기하는 순간 작가 김은기는 생명을 다했다고 생각해요.”

진주에서 활동하는 김은기 작가(남, 53)의 생각이다. 김 작가의 말처럼 그가 만든 작품에는 그의 색깔이 깊게 배어있다. 캔버스를 실로 감기도 하며 1995년부터 작가로서 만든 모든 작품의 명제를 ‘태양 안에서’로 통일했다. 기존 작가들과는 확연히 다른 행보다. 그는 작품에 있어 거침이 없었다. 때문에 신선했다. 기자가 만난 그는 자신의 색깔이 분명한 작가였다. 이를 증명하듯 김 작가의 주변 지인들도 그의 작품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김 작가의 색깔이 꼭 대중성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그가 20년 이상 작업을 이어오기란 결코 녹록치 않았다. 작업환경이 너무 열악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어려움 속에서도 2년에 한 번은 개인전을 열어야 작가로 활동하는 것이란 생각에 꾸준한 활동을 펼쳤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란 말처럼 결국 그는 창원 메디치협회에서 주관하는 공모전에 당선됐다. 공모전에서는 단 한 명 작가만을 뽑았는데, 그 한 명에 김 작가가 뽑힌 것이다. 이후 그의 작품은 SCOPE 뉴욕 아트쇼에 전시되고 MBC 드라마에 협찬되는 등 인정받기 시작했다. 김 작가는 “작가가 포기하지 않고 활동을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것이다. 계속해서 노력한다면 누구나 뛰어난 작가”라고 말했다.

김 작가는 예술이란 ‘감각’이라 말한다. 컴퓨터로 기술은 따라할 수 있어도 감각은 흉내 내지 못한다는 것. 이에 그는 후배들에게 무조건적인 대학진학을 권하지 않는다. 김 작가는 “대학은 예술의 테크닉을 가르친다. 하지만 예전과 다르게 지금의 현대미술에서는 테크닉이 강요되지 않는다”며 “테크닉보다 자기만의 세계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나 역시 대학진학을 위해 입시란 흐름에 맞춰 테크닉을 요구하는 그림을 그렸었다. 수많은 강의, 책을 보며 배우기도 많이 배웠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남의 것이었다”고 말했다.

파블로 피카소의 '꿈'. 김 작가는 피카소를 일컬어 "영감이 샘솟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김 작가는 항상 자신의 것을 만든다. 한번 자신의 것을 만들어 놓으면 거기에 무엇을 더해도 자신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작품을 만드는 것은 아이디어를 형상화 한 일종의 노동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새로운 것에 대한 고민, 그리고 그것을 캐치하는 감각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가 피카소를 좋아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는 피카소의 수많은 작업들과 독특한 작업방식에 대해 말하며, 피카소를 ‘영감이 샘솟는 사람’이라 표현했다.

반면, 김 작가 자신은 특별히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어릴 적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아이에 불과했다고. 그랬던 그가 작가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건 대한민국 미술대전 ‘추상작업’ 부문에 입선하면서부터다. 당시에는 지방 사람이 입선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였다. 이때 김 작가는 본인이 추구하는 스타일이 인정받을 수 있음을 느꼈다고 한다.

이후 그는 자신의 첫 개인전을 위해 100호 사이즈(163x130cm) 작품 30여개를 반년 만에 만들었다. 엄청난 창작열로 한 달에 다섯 점 작품을 만든 것이다. 그렇게 그는 1996년 서울 인사동 도올 아트타운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수없이 많은 개인전, 그룹전을 통해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두고 “현대미술은 너무나 다양하지만 제 작품을 그 다양함에 속하게 하고 싶진 않아요. 그곳에 속하는 순간 다양함 위로 올라설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힘들더라도 저만의 작품을 계속 만들 거예요.”

김은기 작가는 예술에 있어 전공이나 분야는 상관없다고 말한다. 20여 년 이상 다양함을 등지고 외길을 걸어왔듯, 앞으로도 그의 길은 순탄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흐름을 따라가기 보단 흐름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53세 나이에도 그는 아직 예술계의 선두주자다.

조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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