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을 살리지 않으면 우리가 없어진다" 통영오광대 김홍종 명인
"전통을 살리지 않으면 우리가 없어진다" 통영오광대 김홍종 명인
  • 김성대 기자
  • 승인 2019.03.17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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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남망산서 들은 북소리에 끌려 오광대 입문
2012년 1월 27일 통영오광대 보유자로 인정 받아
통영국제음악제추진위원·통영오광대회장 등 역임
"자연의 섬 장사도를 예술의 섬으로 만들고 싶다"

중요무형문화재 제6호 통영오광대 보유자인 김홍종 명인의 DNA에는 어릴 때부터 이미 예술의 끼가 담뿍 녹아 있었다. 경찰취주악대 악장이었던 부친과 노래를 곧잘 부르셨던 모친 사이에서 김 명인의 흥은 형성됐고, 그 흥은 1975년 남망산에서(탈춤전수관이 있는 곳) 젖은 북소리를 만나 기어이 그를 오광대의 세계로 이끌었다. 김홍종 보유자는 ‘86아시안게임 성화봉송과 함께 통영 지역 문화예술의 총연출을 맡은 바 있고 88년 서울올림픽 땐 통영지역 총연출(문화예술퍼포먼스)과 서울 종묘에서 여의도까지 민간신앙깃발 퍼포먼스도 펼쳤다. 2014년 아시안게임 성화봉송 주자와 지난해 평창 동계올림픽에선 이순신장군 복장으로 거북선을 타고 성화봉송을 하기도 했으며, 제10회 세계람사르총회 총연출을 맡아 마당놀이, 인간문화재대전, 한국명무전 등을 펼쳤으며 제40회 경남도민체육대회 문화예술행사의 총연출을 맡기도 한 연출의 전문가이기도 하다. “전통을 살리지 않으면 우리가 없어진다”고 말한 그는 또한 향토 민속음악, 민간제례악, 통영사또놀음, 이무기와 두레패 놀이, 남해안 별신굿, 오귀새남굿, 두레패 횃불놀이 등의 발굴에 참여하여 지역 내 우리 것을 지키는데 앞장섰다.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 예능단체분야 총연합회 초대 회장, 한국탈춤단체 총연회 이사장, 통영오광대 이사장, 통영국제음악재단 이사, (재)한산대첩기념사업회 이사 등을 맡고 있으며 통영예총 회장, (재)한산대첩기념사업회 집행위원장을 역임한바 있다. 김홍종 명인은 “인간이 자연을 닮아가려는 행위가 예술이고,자연은 예술이 못다한 것을 충족시켜준다”고 말했다. 도다리쑥국이 봄을 재촉하던 어느날, 통영 항남동 바이사이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통영오광대의 핵심인 문둥춤을 힘차게 추고 있는 김홍종 인간문화재.

▲어린 시절 어떤 환경에서 컸는지 궁금하다.

아버님은 경찰취주악대 악장이셨고 못다루는 악기가 없었다. 어머님도 장구, 가야금 등 손에 잡히는대로 연주하였으며 노래는 일품이었다. 저는 유치원 다닐 땐 음악을, 초등학교 들어가선 그림에 관심을 가졌다. 기계체조와 마라톤도 했다. 고등학교와 전문대학 시절에 악대부 활동에 푹 빠져 지냈다. 저는 음식도 예술로 보는데 그래서인지 요리도 곧잘 만들었다. 제 예술적 기질은 아무래도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 같다.

▲통영오광대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1975년이었다. 당시 전 학교 음악 선생이었는데 취주악대를 가르쳤다. 방과 후 학생들을 연습시키면서 남망산을 오르던 중 전수회관서 들려온 북소리가 너무 좋아 그대로 이 길을 걷게 됐다. 북은 동물의 가죽이다. 그래서 습기 먹은 북소리는 인간의 소리를 닮았다. 그것은 우리 심장의 고동소리처럼도 들린다. 그 시절 동료 선생 5명이 함께 입문했었지만 결국엔 저만 남았다. 치열한 수행 과정을 겪고 199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6호 통영오광대 전수교육보조자로 지정됐고, 2012년 1월 27일에 비로소 통영오광대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통영오광대는 오페라 또는 뮤지컬”이라고 말씀한 적이 있다.

맞다. 춤과 몸짓, 대사와 노래가 있으니 통영오광대도 오페라나 뮤지컬과 다름없다. 더구나 통영오광대 탈춤에는 한에 얽힌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다. 탈춤의 매력은 한을 풀어 준다는 것인데, 서민들은 통영오광대 공연을 보며 맺힌 한을 달래고 어르고 푸는 것이다. 바로 풀면 더 맺히므로 어르고 얼러 풀어주는 선조들의 지혜가 탈춤에는 녹아 있다.

통영 바이사이드 카페에서 미디어팜과 인터뷰 중인 김홍종 명인(사진 오른쪽).

▲통영은 자타공인 ‘전통문화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통영은 국가 지정 무형문화재를 가장 많이 보유한 곳이다. 제4호 통영갓일, 제6호 통영오광대, 10호 나전장, 21호 승전무, 55호 소목장, 64호 두석장 등 통영은 전통문화의 완벽한 산지, 문화의 보고라 할 수 있다. 아이러니한 것이 서울 다음으로 인간문화재를 많이 가진 탓에 통영은 시 예산 차원에서 인간문화재가 괄시 받는 곳이기도 하다.(웃음)

▲지난 2014년 10월 통영오광대 인간문화재(한국탈춤단체 총연합회 이사장) 자격으로 '한국 탈춤-사천성 변검 교류 워크샵'에 초청됐었다. 당시 명인께선 '멋과 해학의 정수 통영오광대'라는 주제로 PPT 발표 및 통영오광대 제1과장 문둥춤 시범 공연을 펼쳐 많은 관심을 받기도 했는데.

그네들에게 문둥이의 한을 설명하고 춤을 췄다. 문둥이의 한을 모두 설명했기 때문에 내가 춤을 췄을 때 누군가는 울어야 했다. 아니면 내 춤이 대한민국을 대표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춤을 끝내고 탈을 벗은 뒤 관객석을 봤는데 한 중국 교수가 울고 있었다. '아, 성공했구나' 싶었다. 발표와 공연 이후 "조선, 한국 대단하다. 아이돌만 있는 나라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말을 들어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네 전통, 정서가 기어이 그들에게도 통한 것인가.

분명히 알아야 될 것은 우리의 전통, 놀이문화가 있었기에 아이돌도 태어날 수 있었다는 거다. 어느 나라든 자신들의 전통을 먼저 내세운다. 우린 전통이 있는 나라다, 전통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가라앉지 않는다, 우리를 함부로 보지말라는 얘기다. 전통은 뿌리다. 뿌리가 있어야 잎이 솟아 꽃이 핀다. 보통 사람들은 뿌리보다 잎에 물을 주려고 한다. 잎에 앉은 먼지를 씻어내려는 것인데, 그러면 나무는 죽는다. 나무가 번성하려면 뿌리에다 물을 줘야 한다. 저는 살리지 않으면 큰일난다는 사명감으로 통영오광대 보존에 임했다.

김 명인이 바이사이드 카페 3층에 마련된 자신의 공간에서 자신이 담긴 사진 하나를 들어보이고 있다. 그는 배경을 이룬 바다의 여백이 좋다고 말했다.
프로 사진작가인 김홍종 명인이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에서 촬영한 자신의 사진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의 소명은 ‘진실의 알림’이고 한 장의 사진은 천 마디 말보다 더 맹렬하게 세계에 파문을 일으킨다고 말한 그는 현재 한국사진작가협회 자문위원이기도 하다.

▲고성오광대, 사천 가산오광대 등과 비교해 통영오광대만의 자랑거리란 무엇일까.

대한민국 오광대 중 통영오광대가 양반들을 가장 신랄하게 비판한다. 시쳇말로 나쁜 양반들을 ‘죽여 버리는’ 것이 통영오광대다. 그래서 군부 시절엔 따로 제재를 받기도 했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 탈춤꾼들도 그 지역 지형지물의 영향을 받는다. 통영 사람들은 강하고 조금은 급박한 편이다. 하지만 뒤끝은 없다. 그것이 통영의 기질이다.

▲자서전을 내셔도 될 법 한데, 계획은 없는지.

그러지 않아도 파주 열화당 대표께서 책 한 권 내자 제안은 해왔다. 내 생애에 관해 무엇을 어떻게 남겨야 할 지 지금부터 고민할 것이다. 나를 위한 것이 아닌, 내 고향 토영(통영)을 위해 내가 무얼 남길까를 생각하는 거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이 있나.

남도쪽에서는 최고로 아름다운 자연의 섬, 동백의 나라 장사도를 예술의 섬으로 만들어보고 싶다. 물론 주인과 의논을 전제로 해서다. 있는 그대로의 풍광, 햇빛, 바람 등 자연을 몰아와 예술 축제를 한 번 벌여보고 싶다. 바다 포말로 눈이 시리도록 아픈 통영만의 무엇을 이뤄내고 싶다. 그 섬에 가고싶다를 연발 할 수 있도록.

김성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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