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만나는 철학" 김영아 화백
"꽃으로 만나는 철학" 김영아 화백
  • 김성대 기자
  • 승인 2019.03.22 0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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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출신...현재 경북 청도에 정착
꽃을 소재로 만다라등 철학을사유
남편 한국현대미술 화가 예유근씨
꽃 - 감성적 전언 53×53cm, oil on canvas,  2018. 김영아 화백의 작품들엔 올빼미와 부엉이가 자주 등장한다. 그에 따르면 새들은 곧 작가 자신으로,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되바라보기 위한 장치이다.

꽃으로 철학을 그리는 김영아 화백은 부산 출신이다. 어릴 때부터 그림 재능이 남달라 초등학교 때 미술상을 휩쓸었다는 그는 홍익대학교 미대에 낙방하며 미대 진학을 포기할까도 생각한 적이 있다. 그는 결국 제자들을 가르치고 싶어 부산대학교 사범대에 입학했다. 김 화백의 작품 소재는 꽃이다. 하지만 그의 꽃은 생물 도감에 기반한 정물화가 아니다. 그의 꽃은 기독교의 광배이자 불교의 만다라다. 줄기도 뿌리도, 씨방도 수술도 없는 그의 꽃들은 어디서든 피고 그래서 영원히 핀다. 그의 꽃은 시다. 남미 현대문학의 아버지 보르헤스를 좋아하는 그는 실제 작품의 영감을 시를 읽다가 얻곤 한다. 영감은 음악을 듣다가도 찾아오고, 심지어 '멍 때리다가'도 영감은 번개처럼 그의 뇌리를 스친다. 작업을 위한 더 나은 환경을 찾아 경북 청도에 머물고 있는 그를 미디어팜이 직접 만나고 왔다.

 

▲그림은 언제부터 그렸나.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낙서를 하면서부터 화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국화, 서양화 구분도 잘 모르던 시절, 김홍도와 피카소 정도만 알던 어린 나이에 김홍도 같은 화가가 되어야지 했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땐 미술부장으로 후배들 학예전 그림도 손봐주곤 했다.

▲미대 진학은 순조로웠나.

홍익대학교 미대에 낙방했다. 당시 부산 바닥에선 '김영아가 홍대 안 가면 누가 가나'라는 말도 있었지만 몸 상태가 좋지 않았고, 입시 과정에서 불편한 여건들까지 겹쳐 그런 결과를 얻었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에 대한 회의는 없었는데, 몇 개월간 재수하며 미대 진학에 회의적인 생각을 잠시 했었다. 여름방학이 지나고 미술학원을 2~3개월 더 다닌 뒤 부산대학교 사범대에 들어갔다. 저는 제자들을 가르치고 싶었다. 저에게 가르친다는 의미는 대단했다. 아마 저 스스로 좋은 미술 선생님을 못 만나봤고 은사다, 스승님이다 생각한 분들 밑에서 공부를 못해봤기 때문이었을 거다. 지금도 끊임없이 공부를 하고 싶다.

▲경북 청도로 왔다. 근황은 어떤가.

잘 지내고 있다. 5년 전부터 출품하고 있는 화랑미술제가 있는데, 이번 2019년도 37회에선 10호 5점을 매진시키기도 했다.

경북 청도 자택에서 미디어팜과 인터뷰 중인 김영아 화백.

▲청도엔 어떻게 오게 된 건가. 

2017년 봄 작업실 문제 때문에 오게 됐다. 남편(화가 예유근)과 함께 쓰던 부산 작업실은 천정이 낮아 큰 작업을 할 수 있는 천정 높은 곳을 찾다 여기까지 오게 됐다. 학교 같은 곳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남편 쪽 의흥예씨 대종회관으로 쓰는 청도의 옛 학교 교실 2개실을 얻을 수 있었다. 각 20평 정도 넓이인데 이서면에 있다.

▲청도는 예술가들이 많이 머무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 풍경이 작품 구상에도 도움을 주는가.

일단 자연 친화적인 환경이 그림을 그리는데 도움이 되고, 영감도 많이 준다. 어릴 때부터 들판과 꽃을 좋아했고 제 그림의 소재도 꽃이어서 더 그런 것 같다. 물론 자연적인 건 그림 소재가 무엇이든 작가에게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림을 떠나서도 자연이라는 건 좋은 것이라고 본다. 인간도 죽으면 어차피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사실 저는 청도보다 더 산골로 들어갈 뜻이 있다. 그만큼 자연으로부터 마음의 치유를 받고 있다.

▲작품 활동 외 시간은 주로 어떻게 보내나.

꽃피는 계절엔 꽃차도 만들고, 추워지면 톱 들고 나무꾼이 되어 다닌다.(웃음) 동산 과수원들을 다니며 가지나무 잘라놓은 것들을 거둔다. 무엇보다 책을 많이 보고, 시간이 나면 갓등도 만들고 화단도 만들고 담 보수도 하고 겨울에 지내는 황토방 미장도 했다. 시골 생활이 편해보여도 규칙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 작업 시간도 6~8시간 정도를 지킨다. 직장인들이 근무하듯 작업실로 출근해 그리는 것이다.

▲그림 소재로 꽃을 선택한 이유는? 꽃으로 무엇을 말하려 한 것인가.

사람들이 꽃그림 그린다고 하면 정물화라고 생각하는데 제 그림은 관념, 사유의 꽃이다. 제가 그린 꽃 하나 하나에는 우주가 담겨 있다. 기독교에선 광배(光背)라 하고 불교에선 만다라라 일컫는 무한 관념의 세계가 꽃으로 만개한다. 밤하늘로 치면 우주의 별들인 그런 생각의 꽃들이 끊임없이 피어난다. 꽃 하나도 우주가 되는 것이다.

▲그럼 화백님의 꽃은 스스로 창조한 꽃인 셈인가.

맞다. 세간에서 제 꽃들을 나팔꽃, 달맞이꽃이라 평가한 적이 있는데 저는 생물 도감처럼 그 꽃들을 그린 게 아니다. 그저 내가 본 꽃의 인상을 재창조했을 뿐이다. 씨방과 수술을 갖추지 않은, 철저하게 내가 만든 꽃들이다. 내 꽃은 줄기도 뿌리도 없는 꽃이다. 그래서 작품 부제가 '떠다니는 꽃'이다. 이 꽃은 어디서든 필 수 있다. 그 꽃들을 화폭에 옮기는 건 영속성과 영원성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다. 내 그림 속 꽃은 비현실적이며 관념의 꽃이기 때문이다.

▲작품들에 부엉이 또는 올빼미가 자주 보인다.

올빼미는 제가 어릴 때 아버지께서 잠 안 잔다고 붙여준 별명이다. 그림 속 올빼미는 때로 나 자신이 되기도 한다. 부엉이는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를 뜻한다. 무엇보다 제가 부엉이, 올빼미, 앵무새 등 새들을 작품에 집어넣는 건 화폭을 마주하고 있던 내가 그 속에 직접 들어가본다는 뜻이다. 즉, 새를 통해 작품 속에 들어가 작품 밖을 바라보는 것이기도 하고, 꽃과 다를 바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독서를 많이 한다고 했다.

시골에선 책 볼 시간이 많아 좋다. 그래서 하루에 시 한 편은 꼭 읽는다. 최근엔 <보르헤스의 말>을 재밌게 읽었다. 내용 중 '감동은 공감에서 오는 것'이라는 말이 좋았다. 사람도 첫인상에서 호감이 가듯, 맞는 말인 것 같다. 저는 소설보단 인문서적을 많이 보는 편이다.

작업실에서 김영아 화백. 그는 자신이 그리는 꽃들이 영속성과 영원성을 지닌 '비현실적인 꽃'이라고 말했다.

▲화백님의 화풍과 세월의 관계는 어떤가. 변화가 있었나.

초기 작품들엔 꽃이 한 송이었다. 가령 푸른 바탕에 달맞이꽃이 한 송이 있거나 꽃이 없는 엉겅퀴, 고들빼기 하나가 화폭을 채우곤 했다. 그러다 꽃의 숫자가 점점 늘어났다. 초기엔 나 스스로에 집중한 상태였다면 지금은 어울림, 많은 생각들을 공유하는 쪽으로 변했다.

▲영감은 주로 어떻게 얻나.

음악을 듣다가도, 시를 읽다가도, 심지어 멍 때리다가도(웃음) 영감을 얻는다. 그림 그리는 일은 시를 쓰고 글 쓰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다고 생각한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거나 그 모든 자연현상도 영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청도로 오고부터는 주위가 온통 영감 투성이다.

▲작품 하나에 걸리는 시간은 대략 어느 정도인가.

내 그림은 덮고 덮고 또 덮는 작업이다. 10호 기준으로 하루 8시간 그린다고 볼 때 4~5일 정도 걸린다. 그래서 전 다작을 하려면 무척 힘이 든다. 하지만 열심히 그리고 있다.

▲작업 중 징크스 같은 게 있는지?

꽃 하나를 시작으로 꽃들을 그려나가기 때문에 내 그림은 나도 어떻게 완성될지 모른다. 전 그림을 그릴 때 스케치 없이 그린다. 물론, 전체적 개요는 갖고 시작한다. 그리고 맨 처음 꽃을 그렸을 때 그 그림이 순조롭게 갈 것인지 느낌이 온다. 반대로 첫 꽃이 안 그려질 땐 애를 먹는다. 그런데 애를 먹인 작품들이 시집은 더 빨리 간다.(웃음) 그게 징크스라면 징크스다.

▲자신의 그림을 향한 가장 인상적인 비평이 있었다면.

2012년도였던가, 비평은 아니지만 모 신문에 "흔한 꽃 그림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흔한 꽃그림이 아니었다. 마치 화폭에 폭죽이 터지듯, 상상하지도 못한 꽃그림이었다"는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그 기사가 기억에 남는다.

▲남편 분이 화가 예유근 님이다. 소개를 부탁드린다.

늘 생각이 앞서 있는 사람이다. 그는 시대를 앞서 간다. 현실적인 것엔 느리지만(웃음), 그림의 세계에선 엄청 앞서가 있다. 그래서 동시대 사람들은 그의 작품 세계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실제 그가 30대에 했던 것들을 요즘 시대 젊은 작가들이 시도하고 있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하늘과 땅, 시공간, 우주, 시원이 그가 천착해온 주제들이다. 예 작가의 작품들은 국립현대미술관 등 국내서 소장돼야 할 곳들엔 웬만하면 다 소장돼있다. 한국 현대 미술사에서, 특히 부산 미술사에서는 그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고서는 부산 현대미술을 말하기 어렵다.

★ 예유근 선생의 작품 '하늘과 땅' 감상

김영아 화백의 청도 자택에 걸려있는 예유근 선생의 '하늘과 땅'. 사진=김성대 기자. 

바이올린이 자신의 몸을 울려서 내는 소리는 음악이 되고, 그 음악은 나비가 되어 빛 속으로 날아간다.
반짝이는 빛은 별이며, 예수의 가시면류관이며, 사랑이다. 
우리의 고난과 시련은 승화되어 하얀 비둘기되고, 하늘의 깊고 푸른 심연에서 시간의 기억으로 남겨진다. 
언제나 땅을 디디고 사는 나의 삶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땅은 척박하고 황량하며 황폐화되어 가고 있지만, 꽃을 피우고 싶은 열망은 불꽃처럼 더 타오른다.
눈부시는 빨강 파랑 노랑 무지개같은 극락조 꽃을 피울 것이다.

글/예유근

김성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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