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이란 배려와 양보다" 조수철 지휘자
"합창이란 배려와 양보다" 조수철 지휘자
  • 조현웅 기자
  • 승인 2019.03.11 03: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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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시립소년소녀, 그리심 합창단 등 역임
비전공자란 인식…40대 늦은나이 유학선택
63세임에도 왕성한 활동으로 지역합창 선도
조수철 지휘자는 63세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30만km 자동차가 보여주듯 현재 가장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조수철 지휘자는 63세 나이에, 그의 30만km 차 주행거리가 보여주듯 현재 가장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진=조현웅 기자.

3월 8일 오전 10시. 인터뷰를 위해 진주시 충무공동 어느 한 음악학원에서 조수철 지휘자를 만났다. 인사와 함께 건네받은 그의 명함에는 ‘조수철 지휘자’라는 문구만 있을 뿐 어느 합창단을 지휘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너무 많은 합창단을 지휘하고 있다. 때문에 합창단 전부를 넣을 수 없어 단순히 이름만 넣었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명함을 보면 어떤 합창단은 위에 들어가고, 어떤 합창단은 아래에 들어가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조 지휘자의 설명을 듣고 나니 명함의 여백이 충분히 이해됐다. 물론 도대체 얼마나 많은 활동을 하고 있기에 명함에 다 싣지 못할 정도란 건지 한편으론 궁금했다. 그가 지휘자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기에는 다소 나이가 있는 63세라 더 그랬다. 60대 지휘자가 흔치 않을뿐더러 대부분 지휘자들이 그의 나이쯤이면 은퇴를 준비하거나 은퇴를 했거나 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주변에 음악하는 지인들은 모두 은퇴하고 여행을 다니며 노후를 보내고 있는데, 반대로 저는 지금이 제일 한창이다. 진주 뿐 아니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지휘자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가 이제야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유는 출발점이 남들과 달랐기 때문이다. 음악이 마냥 좋았던 중학교 시절 조수철 학생은 내성적인 성격이었음에도 음악 시간 만큼은 남들 앞에 나서 노래를 불렀다. 고등학교 진학 후에도 그는 합창부, 성가대 활동으로 음악을 이어갔다. 하지만 대학교는 현실의 벽이었다. 당시 음대 진학을 희망하는 대부분 학생들이 그랬듯 조 지휘자 역시 레슨비 등 큰 돈이 드는 음대 입학은 넉넉치 못했던 집안사정으로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심지어 그는 일반대학조차 아르바이트로 직접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27살에야 입학할 수 있었다.

대학에 진학한 조수철 지휘자는 필수로 들어야하는 전공수업을 빼곤 음악과 관련된 모든 수업을 들었다. 여담이지만 당시 음악과 교수가 조 지휘자와 음악과 학생들을 두고 “음악으로 먹고살려고 음대에 들어온 학생들이 비전공 학생보다 못하면 어떻게 하냐”는 부분에선 그의 음악적 재능을 엿볼 수 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서울오페라단 기획파트로 입사했다. 진주YMCA에서 청소년문화축제를 기획했던 것이 관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그가 YMCA에서 기획한 축제는 국악, 성악, 개그, 합창 등을 접목시킨 축제로 지금으로 친다면 ‘콜라보레이션’과 같은 것이었다. 당시가 1980년대 초반인 것을 감안한다면 관객은 물론 업계 관계자들 모두 신선한 충격이지 않았을까.

그는 그리심합창단, 진주시립소년소녀합창단, 거제여성합창단, 거제시합창단, 하동군시니어합창단, 진주부부합창단 등을 지휘했다.
그는 그리심합창단, 진주시립소년소녀합창단, 거제여성합창단, 거제시합창단, 하동군시니어합창단, 진주부부합창단 등을 지휘했다.

조 지휘자는 서울오페라단을 통해 당시 내로라하는 성악가들과 친분을 쌓고 그들과 교류하며 음악적 지식을 넓혔다. 그가 평소 즐기고 자신 있어한 '요들송'으로 모임을 만들어 활동한 것도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사천, 함양 등에 위치한 합창단 단무장도 맡게 됐다. 이 외에도 그는 진주시립소년소녀합창단, 그리심합창단을 역임했고, 거제여성합창단, 거제시합창단, 하동군시니어합창단, 진주부부합창단 등을 지금까지 이끌고 있다. 조 지휘자는 합창단들 중에서도 특히 그리심합창단으로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심합창단은 지역 합창단 사이에서 뛰어난 실력 덕분에 명성이 자자한 곳으로 조수철 지휘자는 이곳을 15년간 이끌었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가 비전공과 전공으로 구분된다. 아무리 실력이 있더라도 사람들 인식 때문에…”

음악으로 실력을 인정받아 수많은 합창단을 지휘한 그였지만 비전공자라는 이유만으로 그에겐 아마추어 꼬리표가 붙었다. 프로가 되기 위해선 전공자가 되어야했다. 주변에서도 실력이 아깝다며 본격적으로 공부해보길 권했다. 이에 그는 40대 늦은 나이에 배움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수없이 수많은 세미나를 다니며 음악적 스타일이 비슷하다고 느꼈던 민인기 교수를 찾아가 대학원을 졸업하고, 로비고 국립음악원에서 이태리 유학도 마쳤다.

“막상 공부를 시작하고 보니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 대부분이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제대로 공부하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직접 경험해보니 알겠더라. 기본기 등 당시에는 몰랐던 아쉬웠던 부분이 느껴졌다. 이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에게 배우며 그들만의 색깔, 노하우, 스킬 등도 배울 수 있었다”

그렇게 전공자가 된 그는 실력은 물론 사람들 인식에서도 ‘프로’가 될 수 있었고, 6년 밖에 되지 않은 그의 주행거리 30만km 자동차가 보여주듯, 전보다 더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그는 앞으로도 무릎이 서있을 수 있고, 목소리가 나온다면 계속 무대에 있고 싶다고 했다. 그는 합창이란 ‘배려’와 ‘양보’라 말했지만 그가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이기적인 듯 하다.

조현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