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맛은 결국 멋” 진주 향기와 멋 우병극 대표
“커피의 맛은 결국 멋” 진주 향기와 멋 우병극 대표
  • 김성대 기자
  • 승인 2019.02.0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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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부터 진주서 커피가게운영
바리스타대회 출전 및 심사위원
“실망시키지 않는 맛”을 추구해
진주시 평거동 '향기와 멋' 우병극 대표가 만든 카페라떼. 푸근하고 따뜻한 표면은 마치 망망대해의 고요함을 닮았다.

1986년 성균관대 앞에서 문을 연 책방 풀무질. 근래 폐업 위기를 맞았다 록밴드 전범선과 양반들의 전범선을 비롯한 ‘20대 청년 3인방’이 인수하면서 기사회생 했다. 전범선은 풀무질에 들어선 순간 압도된 특유의 공기 밀도가 꽂혀있는 책들이 아닌 책방의 주인장 은종복 대표 때문이었다고 했다. 기자도 마찬가지다. 진주시 평거동에 있는 카페 ‘향기와 멋’에 들어선 순간 느낀 독특한 운치는 거기 있는 물질들이 아닌, 오롯이 우병극 대표의 내면에서 빚어진 것이었다. “커피의 맛이란 결국 멋”이라는 신조로 24년째 커피 인생을 살고 있는 그를 평거동 남강변의 한 찻집에서 만나고 왔다.

진주 평거동 '향기와 멋' 우병극 대표. 올해로 커피 인생 24년째를 맞은 그는 "커피의 맛은 결국 멋"이라는 신조를 갖고 있다.

그는 대뜸 말했다. 커피 좀 안다고 나대지 마라. 커피 좀 했다고 가르치려 들지 마라. 대신 숙련된 서비스의 힘을 보여줘라. 커피 한 잔 마시러 온 손님이 마치 커피 몇 잔은 마신 듯 포만감을 안고 돌아갈 수 있도록 해라. 그래야 손님이 다시 오고 많이 온다.

향기와 멋 우병극 대표가 가진 커피 철학의 핵심은 겸손과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맛은 곧 멋이었다. 우 대표는 도올 김용옥이 중용의 맛과 멋을 논하며 “결국 그 맛이란 곧 멋이다”는 말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해당 카피는 곧바로 우 대표의 커피에 응용됐다. 모든 상황에서 맛이 다른 커피. 인성이 맛으로 이어지고 그 맛은 결국 멋으로 연결된다. “그래, 커피는 결코 맛이 아니야. 멋이야!” 김용옥의 결론은 오래전부터 우 대표가 생각해온 생각이었고 감각이었다.

“전 저만의 색깔로 커피를 상상하며 나아갑니다. 향기와 멋만의 스타일로 나아가는 게 제 인생 컨셉인 거죠. 전 커피를 다루는 사람들에게 커피를 대하는 태도를 분명히 하라 말하고 싶습니다. 쌀을 생산하는 농부들의 피땀보다 더 진한 피와 땀,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바로 커피 농부들입니다. 그들에 대한 고마움의 태도를 갖고 커피를 대해야 한다는 거죠. 한 톨의 커피 열매를 만들기 위해 그들이 얼만큼 정성과 에너지를 쏟는지를 모른 채 만든 커피에선 좋은 맛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향기와 멋에서 판매 중인 드립백 커피에 새겨진 글귀 중 하나. 캘리그래퍼이자 국제 서예대전 추천 작가인 우 대표의 아내 분 솜씨다.
향기와 멋에서 판매 중인 드립백 커피에 새겨진 글귀 중 하나. 캘리그래퍼이자 국제 서예대전 추천 작가인 우 대표의 아내 분 솜씨다.

우 대표는 95년 진주에 커피 가게를 열었다. 아메리카노나 카페라떼 대신 레귤라와 사이드, 우유 커피 정도가 메뉴의 전부였고 커피숍을 여는 일 자체가 로망인 시절이었다. 진한 커피 위에 생크림을 얹은 비엔나 커피가 유행했으며, 4년 뒤 서울엔 스타벅스 1호점이 생길 것이었다. 그는 일본 진공 여과식 커피 추출기구인 사이폰에 매력을 느껴 이 일을 시작했다. 외롭게 에스프레소의 매력을 설파했지만 세상은 아직 에스프레소를 만드는 일도 익숙하지 못할 때였다. 천사와 악마, 천당과 지옥이 함께 있다는 커피의 전성기는 아직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한국땅을 접수할 터였다.

“음악 다방이 즐비했던 시절이었어요. LP가 흥행을 달렸고 CD 보급이 시작될 무렵이었죠. 이후 mp3가 나오면서 커피 가게들이 쇠퇴기를 걸었습니다. 90년대 중반이었는데,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커피업계는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죠. 그땐 소비 자체가 사치였으니까요. 향기와 멋은 99년도 10월에 문을 열었는데 처음엔 고유명사에 가깝다는 이유로 상표등록이 거부됐었어요. 이후 몇 가지 품목만 뽑아 재청구해 상표권 등록을 할 수 있었죠. 향기와 멋은 2년 뒤 오픈한 ‘인생’이라는 레스토랑과 함께 운영했습니다.”

향기와 멋의 메뉴들은 우 대표가 세대별로 부여한 의미에 기반해 만들어졌다.
우 대표는 인터뷰 중 2000년대 초반 향기와 멋과 함께 운영한 레스토랑 '인생'의 계단에 써두었던 문구를 기자에게 보여주었다. 

우 대표는 독학으로 커피를 배웠다. 90년대 중후반 지직거리는 커피 관련 비디오테이프를 틀어 보며 그는 커피를 홀로 터득했다. 로스팅이 등장한 2000년대 중반 무렵 이런저런 바리스타 대회들이 열리면서 커피는 한국의 사회 현상이 됐다. 물론 당시 우 대표도 바리스타 대회에 직접 출전하거나 심사위원을 봤다. 그는 2014년 진주에서 열린 제1회 국제 바리스타 대회에도 깊이 관여해 지역 커피 문화를 앞장서 이끌었다. 그는 현재 서울에서 카페 컨설팅, 메뉴개발 및 구성, 커피 트레이닝, 바리스타 과정 등을 총괄하는 회사 소속으로 있으며 전국구 커피 인사로서 맹렬히 활동 중이다.

“향기와 멋의 메뉴들에는 특별한 뜻이 담겨있습니다. 10·20대의 향기와 멋은 에스프레소, 30대의 낭만과 멋은 아메리카노, 40대 여유와 멋은 카페라떼, 50대 풍요의 멋은 카푸치노, 60대 즐거움의 멋은 핸드드립, 그리고 70대에 이르면 비로소 커피의 멋을 알게 돼죠. 커피는 꾸준히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커피를 대하는 오랜 마음가짐, 한 방향을 보며 가는 뚜렷한 진심이 있어야만 커피의 맛은 비로소 멋이 될 수 있습니다. 얄팍한 상업적 계산은 당장 장사를 잘 되게 할 순 있어도 얄팍한 것에는 늘 끝이 있게 마련이라 오래 갈 순 없습니다. 커피를 시작했다면 내 브랜드에 어떤 철학을 담아 내 인생을 지탱해나갈 것인가라는 문제와 씨름해야 합니다. 나만의 스타일에 맞는 규칙을 만들어 사람들이 공감하는 맛, 사람들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 맛을 내기 위해 노력해야 하죠. 맛은 멋, 멋은 내는 게 아니라 스스로 나는 것입니다.”

2014년 열린 제1회 진주 국제 바리스타 대회에 참가한 우병극 대표.

제임스 브라운의 그루브와 프랭크 시나트라의 낭만을 좋아하는 우 대표가 바라는 건 단 하나, 자신이 내린 커피를 마시고 사람들이 즐거워 하는 것, 그리고 커피와 더불어 스스로도 즐겁게 살아가는 일이다.

김성대 기자

 

★향기와 멋 미스터 우가 가르쳐주는 커피 핸드드립과 마시는 요령!

먼저 적당량 커피콩을 분쇄하고 물을 부은 뒤 뜸을 들입니다. 이때 처음 물 부은 선을 넘어서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고, 물을 붓고 하얗게 되면 끝입니다. 더 이상 내리면 잡맛이에요~

커피도 차입니다. 차란 맑고 투명하게 마련이죠. 하지만 커피는 검습니다. 시커먼 커피를 오랜 기간 마시면 몸에 좋지 않아요. 커피는 물로 알맞게 희석해 마시는 게 좋습니다. 커피를 잔에 부었을 때 바닥이 투영되는 농도 즉, 흔히 ‘커피 색이네’ 하는 정도가 가장 좋은 커피 색입니다. 내가 직접 추출했다고 잡맛이 나도, 색이 검어도, 머리가 띵해도 마시는 분이 종종 있는데, 그러면 수명이 줄어들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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