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과 대화로 푼다” 하승철 전 경남도 서부권지역본부장
“설득과 대화로 푼다” 하승철 전 경남도 서부권지역본부장
  • 김성대 기자
  • 승인 2019.01.28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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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옥종출신, 진주서 학창시절 보내
영화감독 되고팠던 건축·조경 마니아
소신 잃지 않는 ‘아름다운 관료’지향
2월경 새임무 맡을예정, 절차진행 중

하승철 전 본부장. 그는 하동 옥종 출신이다. 부친은 시골마을에서 약방을 하셨는데, 남명의 수제자였던 각재 하항(河沆)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아버지는 남명 조식의 유교철학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선친의 남명 사랑은 결국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사회 정의와 형평에 대해 하 전 본부장이 관심을 갖는데 큰 영향을 끼친다. 지방고시를 치르고 1997년 사무관으로 임용돼 1년 연수 후 진주시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맡은 첫 임무는 실업대책상황실장이었고, 정부에서도 처음해보는 실업행정을 그는 정말이지 기적처럼 처리해냈다. 눈코 뜰 새 없었던 4개월을 보내고 같은해 여름 진주시 강남동장으로 첫 보직 발령을 받았다. 이후 항공·나노·해양플랜트 국가산단 유치성공을 인정받아 2014년 12월 진주부시장으로 임명됐다. 공직생활 15년만에 공직생활을 출발했던 곳에 부단체장으로 돌아온 것이다. 지난해 12월31일부로 경상남도 서부권지역본부장직을 내려놓은 하 전 본부장은 현재 또 다른 미션을 맡기 위해 준비 중이다.

 

건축과 조경, 영화에 조예가 깊은 하승철 전 경남도 서부권지역본부장은 소신을 갖고 공익과 국익을 위해 숙고한 중국 원나라의 명참모 야율초재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사진=김성대 기자.

 

▲하동 출신인 걸로 안다.

맞다. 하지만 초·중·고는 다 진주에서 나왔다. 봉원초등학교, 남중학교, 동명고등학교. 대학은 부산대 행정학과를 졸업했고 인제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경상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공직생활은 지방고시를 통해 시작했다. 

▲학창시절엔 무엇에 관심이 있었나?

중·고등학교 땐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관점, 본질적인 면을 캐치하는 것이 좋았다. 세상 사람들이 듣고 보고 감동적으로 와 닿아 그들에게 어떤 변화를 주는 일이 왠지 나와 맞을 것 같았다. 무언가 만들어가는 것. 공직자도 비슷한 것 같다. 겉으로 드러나는 사회 현상은 물론 본질적인 현상을 잘 캐치해 주민·시민들이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사회를 바꿔나가는 일을 하고 싶었다.

▲어떤 영화를 좋아했나?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의 <대부>를 좋아한다. 시대를 반영하면서 인간의 권력과 욕망의 본질을 잘 꿰뚫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본질적인 인간관계를 맺어나가는 모습. 누가 누구를 단죄하겠는가.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 같은 컬트 무비 감독들의 작품도 좋아했다.

▲<대부>는 걸작이다. 영화 외엔 어디에 관심이 많나.

건축과 조경 쪽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 지금도 휴대폰에만 수 천 장의 건축 사진이 들어있다. 전공 공부는 하지 않았지만 책을 사서 보며 지식을 쌓았다. 도시교통국장 시절 신도시 도시계획 개발을 하면서 공간을 만드는 복잡한 법적 업무와 실무 경험을 한 적도 있고. 건축은 사람의 삶을 담는 공간이다. 하나의 집만 구성되는 게 아니라 환경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도시의 공간구조, 장기비전, 생명력 이런 것들을 얼마나 튼튼하게 가꾸고 베이스를 잘 까느냐가 건축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건축, 조경에 대한 관심을 공직 생활에서 응용한 경험은?

진주 부시장을 하면서 혁신도시 조성에 관여한 적이 있다. 한창 건물들을 짓는 중이었는데 사실 내 마음엔 안 들었다. 건물들은 20년 전 서울 느낌을 주는, 트렌드를 반영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건축과 공공디자인 관련 공무원들을 정통파 건축을 공부하신 교수님의 인솔 하에 유럽으로 보내 도시계획과 건축이 잘 된 곳을 보고 오도록 했다. 또 저 나름 공부해온 건축 지식도 있었기 때문에 혁신도시의 큰 건물들 건축 허가 신청이 들어오면 내가 직접 조감도를 펼쳐놓고 주변 도시계획까지 일일이 따지며 살피기도 했다. 당연히 건축주와 직원들의 불만은 있었지만 빌딩 3곳 정도 그렇게 하고 나니 부시장의 요구에 사전 준비하는 시스템이 갖춰졌다. 빌딩 몇 개만 잘 만들어놓으면 이후에 들어서는 빌딩들도 자연스레 일정 수준을 유지하기 때문에 신도시 조성의 출발은 매우 중요했다.

▲개인이 가진 ‘도시론(論)’ 같은 게 있나. 혹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도시가 있는지.

일단 도시를 계획하기 위해선 선, 점이 아닌 면 단위로 보고 가는 큰 그림들을 그릴 줄 알아야 한다. 도시 공간 구조에 대한 전문적 안목으로 주민들과 합의를 통한 명품 도시를 만들면 그 자체가 엄청난 경쟁력이다. 그런 도시를 10~30년 정도 가꿔나가면 특색 있고 문화 예술적으로도 뛰어난 건축물들이 들어서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 도시를 보러 오게 된다. 우선은 도시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힘이 있어야 한다. 안목을 가진 자에게 가꾸도록 해야 하고, 주민 참여도 반드시 필요하다.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의 경우 벽돌 하나를 보수해도, 예컨대 그 벽돌이 17세기 이전 것이어야 한다면 반드시 그 시대 것으로 보수해야 함이 주민들 사이에 공공연한 약속처럼 돼있다. 그래야 도시가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도 건물을 스카이라인과 반대로 갈 것이냐, 그대로 앉힐 것이냐를 고민한 곳이다. 건물 색으로 정한 아이보리는 그 지역 건물이라면 모두 따라야 한다. 사회적 동의를 거친, 공공의 이익을 위한 제재인 것이다. 새파란 바다는 정장, 아이보리 건물은 셔츠, 그리고 빨간 금문교는 넥타이다. 얼마나 멋진가.

▲진주 혁신도시는 그러질 못했다는 얘기인가.

혁신도시 LH본사가 3천 억짜리 건물이다. 배가 바람에 15도 가량 누워 불안하면서도 속도감이 느껴지는, 밸런스와 볼륨, 조형미를 다 갖춘 곳이다. 문제는 옆 건물들과 조화다. 진주 혁신도시에선 LH건물만 돋보일 뿐 주변 건축물들이 LH건물과 조화되게 형태나 높이, 색감들을 고려한 흔적이 전혀 없다. 공무원들의 안목도 문제고, 때문에 도시 행정가들은 반성해야 한다. 프렌치 터치(French Touch). 프랑스 사람들은 보도블록 하나를 만들어도 예술을 한다. 그것이 바로 시민의식이다.

▲98년 IMF 구제금융 당시 실업대책상황실장 직책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당시 상황을 듣고 싶다.

임용되고 1년 연수 후 맡은 자리였다. 난리도 아니었다. 일단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실업업무’라는 게 처음이었고, 그래서 실업대책 자체가 없었다. 모든 부처에서 동시다발로 엄청난 정책들을 쏟아냈지만 그것들이 시로 내려온들 법도 원칙도 없는 중구난방이었다. 그 중구난방 정책들을 다듬고 분류해 조립하거나 역으로 경남도와 정부에 건의, 제안하는 일들을 했다. 실업자 전수조사라는 것이 전국 최초로 실시됐는데, 그때가 도스 환경 컴퓨터를 배우는 단계였기 때문에 내가 직접 윈도우를 깔아 직원들에게 엑셀과 파워포인트를 가르치며 통계청 자료를 만들기도 했다. 4개월을 그렇게 정신없이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처음이어서 해냈던 것 같다. 정부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먼저 하는 사람이 임자였기 때문에.(웃음)

▲올해로 22년째 공직생활을 한 셈이다. 소회 한 말씀.

지방자치가 본격 시행된 후 행정가로서 늘 고민이 법적 테두리 내 시민(주민)의 요구와 정치 권력자의 비전, 사회적 이익들의 결집 과정에서 충돌 및 상호모순을 어떻게 하면 조화롭게 엮어낼 것인가다. 그러기 위해선 공무원들이 자기중심을 잘 잡아야 하는데, 나름 지혜롭게 잘 헤쳐온 것 같다. 설득과 대화를 많이 했고, 장이 요구하는 부분이 현실과 맞지 않으면 대안을 마련해 건의했다. 시민과 주민들 말도 열심히 듣고 안 되는 상황은 역시 대안을 가지고 설명해나갔다. 이런 방법도 있을 수 있다는 걸 고민하는, 그런 걸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공직자로서 지켜온 신조가 있다면.

아름다운 관료가 돼야 하고, 소신을 잃지 않아야 한다. 물론 공직자로서 사명감과 자부심도 가져야 한다. 매슬로 욕구단계설에서 자아실현 욕구가 있다. 나는 그걸 봉사를 통해 보람을 느끼는 데서 찾는다. 바로 공직자의 일이다. 나는 공직자가 지역의 미래, 주민들의 현실과 비전, 권력자의 사적 이익으로부터 공공 이익을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선 싸우지 않고 지혜롭게 대화로 풀어가는 게 중요하다.

 

미디어팜과 인터뷰 중인 하승철 전 경남도 서부권지역본부장. 하 전 본부장은 오는 2월 중 새로운 임무를 맡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내외, 시대 구분 없이 닮고 싶은 공직자가 있다면 말해 달라.

중국 원나라 기틀을 닦은 명 참모 야율초재를 좋아한다. 금의 멸망을 막았고 원나라를 야만에서 문명제국으로 바꾼, 용기와 지혜를 겸비한 인물이다. 그는 소신을 잃지 않고 공익이 무엇인지, 나라를 위한 최선이 무언지를 생각했다. 싸우지 않으면서 소신을 발휘해 권력자를 설득할 줄 알았다. 누구나 싸우는 건 쉽다. 정말 어려운 건 참고 견디면서 공익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최선이 안 되면 차선이라도 되게끔 하는 것. 최고 권력자의 엉뚱한 지시도 그것이 가지는 장점을 키우고 문제점은 최소화 시키는 것이 바로 공직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야율초재는 나에게 그런 지혜를 가르쳐주었다.

▲서부경남 KTX 이야기를 좀 해보자.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는 확정된 것인가.

지금은 내가 자리를 떠난 상태여서 지난해 12월31일까지 상황만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당시 국무회의 때 이달(1월) 하순 대통령이 공식 확정 지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요한 건 복선화다. 비용 때문에 단선화가 거론되는 건데, 백년지대계로 가야한다고 본다. 처음 단선화로 만들었다가 나중에 복선화로 바꾸려면 공사비가 1.9배 더 들 수 있다. 미래를 위해 나는 마지막까지 복선화를 주장했다. 중앙정부 관료들도 계속 설득했다. 실행 과정에서 정부가 받아들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가 설사 확정된다 해도 기본계획 수립과 기본실시 설계 등에 3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한 걸로 안다. 행정절차 단축으로 최대한 빠른 착공을 말한 적이 있는데, 그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일단 기본계획 1년, 기본·실시설계 2년 예정이다. 하지만 기본계획 기간을 줄이고 기본·실시설계 위한 준비를 철저히 하면 1년 정도는 단축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정부의 적극적 협조를 이끌어내야 한다. 정부가 협조하면 2년 안에도 가능할 일이다. 구간도 김천-진주부터 자금을 집중 투입해 사람들이 많이 오가게 만든 뒤 거제까지 이어가는 것이 좋다고 본다. 그러면 정부도 자신감을 갖고 투자를 더 많이, 더 적극적으로 하게 될 것이다.

▲일각에선 빨대효과와 일부지역 패싱현상을 지적하며 서부경남 KTX가 마냥 장밋빛 미래만 가져다주진 않을 거라 얘기하기도 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국가기반 인프라(SOC)가 잘 갖춰져있으면 오히려 빨대효과가 우려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되레 외부인들이 내생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시도하지 않으면 빨릴 것이냐, 빨아먹을 것이냐를 선택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게 된다. 다행인 건 우리에겐 혁신도시와 한국경제의 미래인 항공산업이 있다. 또 남해안 관광이 트렌드로 주목받고 있고, 실제 관광객들이 늘고 있다. 먼 지역 사람들은 남해가 좋은 건 알겠는데 가기가 불편해 많이들 망설인다. 멀어서 투자도 꺼린다. 우리가 능동적으로 자체 역량만 잘 길러나가면 밝은 미래를 거머쥘 수 있다. 또 하나 정말 중요한 건 문화예술 시장이다. 문화예술 시장의 활성화는 젊은이들이 많아야 이룰 수 있다. 인구절벽시대에 맞닥뜨린 지금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 이 지역 젊은이들을 어떻게든 잡아야 한다. 젊은이가 없으면 지역 미래도 없다. 젊은이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 젊은이들이 놀고 즐기고 돈벌이도 할 수 있는 문화예술의 자체 생태계 및 기반을 만들어줘야 한다. 5~10년 정도를 본다. 그 사이 그들의 자존심, 의지, 열정들을 잘 끌어 모아 새로운 미래 문화 콘텐츠를 정말 목숨을 걸고 만들어내야 하겠다. 젊은이들이 있으면 기업들도 온다. 그게 바로 구심력이다. 서부경남 KTX와 같은 노력으로 지역 구심력 역량을 길러야 한다.

▲향후 정치권 진출(출마)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꿈은 있다. 자리를 원하는 게 아니라, 그동안 공직자로서 바라본 관점, 응용한 해결책들을 바탕으로 이랬으면 좋겠다는 나만의 방식을 펼쳐보고는 싶다. 물론 그걸 하려면 과정이 필요하다.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와 준비, 타이밍 등. 어찌될 진 모른다. 공직 수행 후 그 타이밍이 살아있으면 해보고는 싶다.

▲앞으로 계획을 들려 달라.

진주 서부청사에 있으면서 항노화, KTX, 혁신화, 항공과 관련해 많은 일들을 했다. 특히 적은 예산을 들여 서부청사에 정원을 가꾸고 나온 건 따로 보람 있게 생각한다. 그곳은 나중에 경남도민, 진주시민들을 위한 공간, 2년 안에 정말 멋진 공원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라 본다. 실제 공공자원을 시민에게 돌려주는 중요도 과정은 이미 선정돼있다. 떠나오기 전 정리해둔 것이다. 그 나무들이 부디 잘 자라길 빈다. 현재 저는 다른 임무 수행을 위해 절차를 진행 중에 있다. 2월 중에 결정이 날 듯 하다. 경남도를 유라시아 및 동북아시아 물류 산업의 중심지로 만들고 남북교류를 활성화 시키며, 부울경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그런 일을 하게 되길 희망하고 있다.

김성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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