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짓는 천사' 서빈 건설 황용운 대표
'집 짓는 천사' 서빈 건설 황용운 대표
  • 김성대 기자
  • 승인 2019.02.10 1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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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토박이, 명신고등학교19회졸업
젊은시절안해본일 없어'평생업'찾아
봉사활동 생활화 '유아쪽도 고민 중'
서빈 건설 황용운 대표는 봉사활동을 생활화하는 가슴 따뜻한 한 가정의 가장이다. 

서빈(SEOBIN) 건설 황용운 대표는 명신고등학교 19회 졸업생이다. 취재 다니면서 명신고등학교 출신은 처음이라고 했더니 황 대표는 그러냐며 멋쩍게 웃었다. 그는 진주에서 쭉 살았다. 부속초등학교, 중앙중학교를 거쳐 명신고등학교에 들어갔다. 대학은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산업경제학과에 진학했지만 대학생활과 사회생활의 무리한 병행은 결국 휴학과 복학으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과 공부가 자신이 하려는 일과 맞지 않았던 것이 황 대표의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더 부추겼다. 그는 결국 학점은행제를 통해 건축과 부동산 공부를 했다. 적성을 찾은 것이다.

서빈은 택지개발과 건축을 주로 하는 건설사다. 이곳은 자체 공사를 많이 진행하는데 원룸 건설과 택지 공사, 때론 지인들의 요청으로 하는 공사도 있다. 알음알음 그런 곳들이 100군데 이상이다.

“메이저 건설사는 대다수 큰 수주를 받아 자체 시행을 하지만 중소도시 건설사들은 관급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 관급 공사에는 크게 의존하지 않으려 해요. 꾸준하지 않기 때문이죠. 관급 공사에다 꾸준하기까지 해주면 그것만큼 좋은 게 없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으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근래 경기는 매매나 공사 의뢰 모두 조금씩 줄고 있는 추세인데, 과거 예쁘고 고급스러운 걸 추구했던 사람들이 요즘엔 가성비를 더 따진다는 건 흥미로운 부분이죠.”

올해 34살인 황 대표는 건설업을 하기 전 말 그대로 '돈 되는 일'은 다 했다. 조선소, 소주방, 주점 웨이터까지. 돈을 많이 벌고 싶었던 그는 그러나 그 일들을 미련없이 정리했다. 일이란 꾸준히 유지되고 평생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는데 황 대표에게 저 일들은 그런 면에서 자격 미달이었다. 그는 젊은 청년들에게 장사보다 기술 배우길 조언했다.

“장사는 깊이 생각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비용 대비 월수입을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장사를 시작하면 가게 수명이 위태로워지거든요. 전 차라리 기술을 배우라 권하고 싶습니다. 기술이라는 게 꼭 쇠깎고 영업하고 이런 것만이 아니거든요. 사람을 만나는 것도 기술이고 어떠한 경험, 노하우 자체도 기술이죠. 먼저 이런 기술부터 습득하고 거기에 맞는 업을 찾아나가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황 대표는 한때 진주시대학생연합회 회장이었다. 2012년에 진주시내 대학생들이 모여 만든 모임으로 연암공대, 국제대, 보건대 등의 총학생 및 단대 회장들이 주축이다. 모임의 목적은 친목도모와 자기개발, 그리고 봉사활동이다. 그는 이런 대학모임이 졸업 후에도 이어지도록 진주 청년연합회 설립도 추진했다. 하지만 후자는 정식 설립이 좌절됐다.

황 대표가 진주지부 사무국장으로 활동 중인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나눔 운동' 공식 로고.

“청년연합회는 설립이 무산됐습니다. 법인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생업도 있고 여러 복잡한 과정 때문에 쉽지가 않더군요. 물론 명맥은 유지하고 있습니다. 사실 대학생연합회도 청년연합회도 뒤늦게 대학생활을 한 제가 스스로 안타까웠던 부분, 하고 싶었던 부분을 반영하려던 것이었거든요. 전 지방 대학생들이 수도권 대학생들만큼 열정과 도전의식을 가졌으면 합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데 단지 지방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위축된 모습을 보일 땐 내심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요. 저 두 단체는 그러지 말자는 제안이자 격려인 셈입니다.”

봉사활동은 황 대표의 또 다른 삶이다. 그는 개인 봉사활동으로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나눔 운동’을 하고 있다. 그가 속한 진주지부는 서부경남 지역에 연탄 15만 장을 기부하는 곳으로, 황 대표는 이곳의 사무국장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운영위원인 동시에 유니세프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봉사활동을 ‘죄와 이기심을 씻는 마음으로’ 꾸준히 한 끝에 자연스레 일상이 되었다고 말한다.

“얼마 전 우리 아들 돌잔치를 했습니다. 사실 제가 어린 시절 부모님 그늘을 제대로 못 받았는데, 전 제 아이가 커서 누군가 ‘아버지가 누구냐’ 물어오면 떳떳하게 저를 얘기할 수 있도록 키우고 싶어요. 봉사활동은 하다보니 어린이, 청년, 노인까지 거의 모든 연령대를 접하게 됐는데요. 이제 내 아이가 생겨서인지 유아 쪽 봉사활동까지 고민하게 됩니다.(웃음) 한국은 저출산 국가이면서도 청년과 노인에 비해 영유아 복지는 많이 취약한 것 같아요. 이쪽이 좀 더 발전하고 활성화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거기에 제가 작은 힘을 보탤 수 있다면 기꺼이 봉사할 생각이구요.”

김성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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