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기억되는 음식"을 만들다, 진주 에스코피에 하승호 대표
"마음에 기억되는 음식"을 만들다, 진주 에스코피에 하승호 대표
  • 김성대 기자
  • 승인 2019.04.03 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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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처럼 살기 싫어 요리의 길 걷기 시작
에스코피에→프랑스요리 3대거장 이름따
바질 페스토와 명란 크림 파스타 등 추천
좀더 편하게 먹을수있는 식당개업준비중
진주시 평거동에 있는 레스토랑 '에스코피에' 하승호 대표. 사진=김성대 기자.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대부분 초·중·고를 졸업하고 서태지의 가사 마냥 "좀 더 비싼 나를 만들어줄" 대학을 거쳐 적당히 취업해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간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건 필수는 아니지만 우리 사회에선 여전히 '하면 더 좋을' 사회 통념으로서 굳건하다. 이처럼 살아가는 데 있어 집단의 획일성 즉, 개성의 부재와 몰개성의 부각은 언제부턴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한국인의 조건이 되었다. 하지만 진주시 평거동 '에스코피에' 하승호 대표는 이 조건에 의문을 던졌다. 그는 대부분 사람들처럼 무리지어 졸업하고 무리지어 일반 직장에 취업해 살기 싫었다. 한 번 사는 인생 제대로 살아보기 위해 그가 택한 길은 그래서 요리다. 하 대표는 어릴 때 모친 곁에서 음식 일을 돕던 게 즐거웠던 기억을 살려 이 길에 들어섰다. 10년 넘게 검도 사범 일도 했지만 그는 사람을 베는 장검보단 재료를 다듬는 단검에 더 마음이 끌렸다. 서울의 유명 호텔을 비롯해 미국 라스베가스와 시카고, 캐나다 등지에서 유학을 마치고 와 자신의 고향에 터를 잡은 하 대표는 지금 진주에서 손꼽는 서양음식점의 셰프, 대표로 자리매김했다. 물러나는 겨울과 들어선 봄이 엎치락뒤치락 영역 다툼을 벌이던 어느날 오후, 가게 브레이크 타임을 틈타 그를 만났다.

 

▲배영초등학교와 진주중학교, 진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간 것으로 안다.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 했다가 다시 진주로 와 삶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무리지어 졸업하고 일반 직장에 취업하는 게 싫었다. 단순히 월급 받고 생활하기 위한 인생은 싫었다. 한 번 사는 인생, 뭘 해야 즐겁게 살 수 있을까를 계속 생각했다. 그러면서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일용직 목수 보조부터 영업직, 배달, 새벽시장 일, 검도사범에 당숙 목장에선 소도 키워봤다. 이 모든 게 저에겐 자아를 찾는 여정이었다.

▲요리 세계엔 어떻게 발을 담그게 됐나.

20대 중반 군을 제대하고 처음엔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을 뻔 했다. 1년 남짓 했는데 도저히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업은 아버지 인생이지 내 인생이 아니었던 거다. 요리는 신라호텔 인턴으로 입사하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주방에서 생선 비늘과 고기 손질하는 일부터 했는데, 요리의 기본은 재료 손질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어머니 옆에서 제사 음식, 명절 음식, 된장, 간장 담그는 일을 거들던 게 재밌었는데 결국 생업이 됐다.

▲요리에 관한 이론 전공은 따로 하지 않은 건가.

모 대학 호텔조리제빵과로 진학했다. 그런데 대학 공부가 자격증 따는 과정과 별반 차이가 없어 실망을 좀 했다. 취업률만 높으면 된다는 주의가 싫었고, 때문에 누구와도 진지한 상담을 할 수 없었다. 물론 교수님들 커리어는 훌륭했지만 정작 내가 원한 건 별로 없었다.

올해로 문을 연 지 5년째 접어든 진주시 평거동 에스코피에 외부 모습.
올해로 문을 연 지 5년째 접어든 진주시 평거동 에스코피에 외부 모습.

▲그래서 해외로 간 건가.

해외는 어렸을 때부터 막연하게 가보고 싶었다. 취업 알선처에서 연락을 받고 서울 강남에서 치른 요리 테스트와 영어 면접에 통과해 미국 라스베가스 하라스 호텔에 취업했다. 처음엔 모텔에서 살았다. 그러다 그곳에 많이 사는 남미계 사람들과 호텔 청소일로 부업을 하고 스시집 일도 꽤 오래 했다. 당시 처음 접한 스시를 만들기 위해 집에서 랩으로 따로 연습했던 게 생각난다. 그렇게 몇 달 생활해서 룸메이트를 구해 모텔 생활에서 벗어났다. 하라스에서 2년 정도 일했고, 스테이크 하우스와 이태리·프랑스 식당을 돌면서 경험을 쌓았다. 시카고와 캐나다에도 조금 머물렀다. 2010년 한국에 와선 서울 워커힐 호텔에 있었고, 광화문 쪽에서도 일을 많이 했다. 청담동, 경복궁 한옥 레스토랑 개업에도 관여했고 하루 저녁 식대만 몇 백만 원 했던 모 기업 VIP룸에서도 일한 적이 있다. 해외로 다시 나갈까 생각했는데 서울에서 결혼하면서 눌러앉았다. 에스코피에는 2013년 겨울에 준비해서 이듬해 봄에 문을 열었다.

▲가게 이름을 프랑스 요리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오귀스트 에스코피에에서 가져온 것으로 안다. 그의 어떤 면에 영향을 받았나.

일반인들에겐 생소하지만 제가 존경하는 사람을 가게 이름에 넣고 싶었다. 2006년도엔가, 이 사람에 관한 책이 국내에 나왔다. 책으로 본 그의 열정적인 삶, 프랑스 요리 소스 및 요리의 틀을 만들고 자리 잡게 한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 ‘에스코피에’는 현재 세계 요리학회 이름이기도 하고 세계 요리대회 앞에 붙는 이름이기도 하다. 

▲또 영향 받은 셰프는 없나.

6개월간 함께 있었던 장병동 셰프에게 많은 걸 배웠다. 어릴 때 스쳐갔던 것들을 그를 통해 완전히 소화시킬 수 있었다. 장 셰프님은 요리 뿐 아니라 열심히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의 자양분도 던져준 고마운 사람이다. 경희대학교 최수근 교수님도 좋아한다. 그분이 소스에 관해 정리한 책을 강연에 들고가 사인 받은 적이 있는데, 감동이었다.

▲어떤 요리를 주로 하는가.

기본적으로 양식이다. 그 중에서도 좀 더 관심있게 하고 보는 건 역시 프랑스 요리다. 요즘엔 손님들 요구에 따라 파스타 위주 식사로 메뉴를 바꿨다. 우선은 살아남아야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으니까. 물론 대중이 쉬 접하지 못한 메뉴들도 시도는 한다. 예컨대 만드는데 이틀 걸리는 양파 수프 같은 것, 스테이크 소스 경우도 하루종일 걸리는 것도 있다. 그런 것들은 아무래도 손이 많이 가지만 그럼에도 클래식한 것이 한 두 개쯤은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고집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마니아들이 있어 못 빼고 있다.

에스코피에는 현재 60~70종 와인을 구비하고 있다. 과거엔 120~130종까지 있었다.

▲이곳 소개 좀 부탁한다. 가게 특색이나 추천 메뉴 등.

바질 페스토와 명란 크림 파스타, 한우 안심스테이크, 양갈비 스테이크를 추천하고 싶다. 비프 콘소메 수프도 괜찮은데, 고기와 야채를 끓여 내는 맑고 투명한 수프다. 맛있는 갈비탕을 먹는 느낌이랄까. 이런 메뉴는 만들기가 까다로워 몸은 피곤하지만 기분은 좋다. '해냈어'라는 만족감이 든다. 바질 페스토 경우엔 괭이질 하면서 바질을 직접 키워 만든다. 그래야만 바질이 초록빛을 띠고 맛이 난다. 양갈비 스테이크는 손이 많이 가 뺐는데 일부 손님들이 왜 없앴냐고 해서 다시 메뉴에 넣었다. 그리고 음식에 곁들이는 와인은 아마 진주시내에서 종류가 가장 많지 않을까 싶다. 예전엔 120~130종 정도였는데 지금은 60~70종 정도 된다. 가격도 다른 곳보다 부담이 적다.

▲힘든 적은 없었나.

항상 힘들고 항상 고비는 있다. 모든 사람들이 고통을 함께 한 2014년 세월호 사건 때와 이듬해 4월 메르스 사태 때 가게가 한동안 주춤했다. 더워도 너무 더웠던 지난해 여름도 힘들었긴 마찬가지다. 그리고 인력 수급이 잘 안 된다. 기술을 갖추고 함께 맞춰갈 수 있거나 제대로 된 서비스 마인드 가진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 웃돈을 줘서라도 데려오고 싶은 사람은 언제나 다른 가게에서 일하고 있다.(웃음)

▲셰프로서 철학이 있다면? 요리를 할 때 마음가짐 같은 거 있잖나.

음식은 입으로 먹는 것이지만 저는 혀끝에서 기억되는 음식이 아닌, 마음이 따뜻해지는 음식을 추구한다. 손님들이 에스코피에라는 곳에서 행복했고 즐거웠고 맛있었고, 그래서 다시 오고 싶게끔 하고 싶다. 마음에 기억되는 음식을 만들고 싶다. 그것이 바로 가게가 오래갈 수 있는 전제, 이유라고 믿는다. 저희 가게에 굳이 찾아오시는 분들은 아마도 내 생각과 같지 않을까.

▲징크스 같은 게 있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음식 간이 짜진다.(웃음)

▲앞으로 계획, 목표라면.

잘 먹고 잘 사는 거다.(웃음) 처음 진주 올 땐 내 가게 4~5군데를 생각했는데 지금은 하나만 잘 돼도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저희 가게 요리들이 나름 '고가'로 쳐지니까 좀 더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준비하고 싶다. 1만 원 정도 수준의 경양식집을 생각 중인데 관련 레시피는 이미 다 준비해뒀다. 오픈 직전까지 아이템을 계속 준비할 예정이고 테스팅을 거쳐 적재적소에 보따리를 펼쳐놓을 수 있도록 준비할 생각이다. 내가 가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집을 차리고 싶다.

김성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