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43년 걸렸다" U2 첫 내한공연
[공연리뷰] "43년 걸렸다" U2 첫 내한공연
  • 김성대
  • 승인 2019.12.1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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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8일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 록밴드 U2가 결성 43년만에 처음으로 한국에 왔다. 마지막 곡 'One'에서 스크린에 등장한 태극기.
▲밴드의 대표작이자 이번 투어 제목이기도 한 '조슈아 트리(Joshua Tree)'의 전곡 연주 전 붉은 대형 스크린 앞에 선 U2 멤버들.

U2를 아껴온 누군가에겐 수 십년을 벼렀을 일이겠고, U2를 낳은 포스트 펑크에 일말의 관심도 없는 사람들에겐 단순한 호기심 충족, '인증샷'의 대상에 머물렀을 공연. 1회 공연당 10만명 관객은 수월하게 동원할 수 있는 세계적인 밴드 U2의 첫 내한공연이 그렇게 2019년 12월 8일 일요일 저녁 7시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렸다.

추운 날씨였음에도 관중수는 생각보다 많았다. '한국엔 U2 팬이 적다'는 생각 자체가 편견이었는지 결성 43년만, 공식 데뷔 39년 만에 처음 한국을 찾았으니 이 정도는 '기본'이었던 건지. 여튼 사람들은 공연장 인근과 장내를 가리지 않고 인산인해를 이뤘다. 평소였다면 쉽게 드나들었을 편의점과 화장실도 이날은 줄을 서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U2는 약속한 시간보다 20분 늦게 무대에 나왔다. 보노가 익살맞게 자신들을 소개한 뒤 래리 뮬렌 주니어(드럼)의 웅장한 마칭 리듬이 이어지면서 'Sunday Bloody Sunday'가 터져나왔다. 'New Year's Day'와 함께 1983년작 [War]를 대표한 이 곡으로 U2는 공연 시작부터 자신들이 '정치적인 밴드'임을 분명히 했다. 왜냐하면 'Sunday Bloody Sunday'는 1972년 1월31일 영국 정부에 시민권을 주장하려 평화시위에 나선 북아일랜드 데리시 주민들을 유혈 진압한 영국군을 다룬 곡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영국 감독 폴 그린그래스의 2002년 작품 '블러디 선데이'에서도 다뤄진 바 있다.

이번 공연에서 U2는 총 24곡을 들려주었다. 앞선 두 곡과 함께 데뷔작 [Boy](1980)에선 'I Will Follow'가 선곡 됐고, 브라이언 이노가 프로듀서로 가세하면서 밴드 음악의 색깔이 바뀌기 시작한 4집 [The Unforgettable Fire](1984)에선 'Pride (In The Name Of Love)'가 연주됐다. 4집에선 'Bad'도 예상됐지만 이날은 들을 수 없었다.

▲유투는 약속했던 7시보다 20분 늦게 무대에 나타났다. 그래도 유투는 유투였다.

U2가 경건한 전투성을 유지했던 시절의 대표작 [Rattle And Hum](1988)에선 'Desire'가, "싱글 11곡을 발표한다는 마음으로 만든 앨범"이라고 보노가 고백한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2000)에선 'Elevation'과 'Beautiful Day'가 발탁됐다. 2004년작 [How To Dismantle An Atomic Bomb] 수록곡 'Vertigo'는 강력한 드라이브감으로 공연장을 뒤흔들었으며, 비교적 근작들인 [Songs Of Innocence](2014)와 [Songs Of Experience](2017)는 각각 'Every Breaking Wave', 'Love Is Bigger Than Anything In Its Way'를 들려주며 겨우 체면치레 했다.

언젠가 존 본 조비가 "전설에 가까웠던 앨범"이라고 극찬했고 밴드 스스로는 "가장 정치적인 앨범"이라고 자평한 [Achtung Baby](1991)에선 [Joshua Tree] 다음으로 많은 3곡이 연주됐는데 거기엔 'Even Better Than The Real Thing', 'Ultraviolet (Light My Way)', 그리고 인엑시스의 'Never Tear Us Apart'를 덧붙여 공연의 문을 닫은 'One'이 포함됐다. 이중 22번째로 들려준 'Ultraviolet (Light My Way)'에선 특별한 영상이 대형 스크린을 장식했으니, 바로 세상을 바꾼 그녀들의 역사(History)를 곡에 맞게 편집한 'Herstory'였다.

영상에선 18세기 영국 여성 권리 옹호자였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미국의 게이 해방 운동가 마샤 P. 존슨 같은 인물들을 비롯해 아이슬란드의 여성들(아이슬란드에선 노동 연령 여성들의 88%가 취업하고 대학생의 65%가 여성이며, 국회의원 중 41%가 또한 여성이다), 러시아의 여성주의 펑크록 집단인 푸시 라이엇(Pussy Riot) 등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네 '여성들'도 사이사이 등장했는데 사람들은 여기에서 제법 감동을 먹은 듯 보였다. 다른 나라에서도 같은 컨셉으로 선보이고 있는 이 기획에서 한국 여성들 중엔 서기 424년부터 현재까지 살아남은 해녀들과 미투의 불씨를 댕긴 서지현 검사, 얼마전 안타깝게 팬들 곁을 떠난 고 설리, 그리고 이날 공연장에까지 직접 온 김정숙 여사 등이 음악에 겹쳐졌다. 이는 공연 시작 전 스크린 영상으로 흐른 최승자, 이시영 시인의 시들('나는 기억하고 있다'와 '지리산')이 암시했던 것으로 미투를 지지하는 U2, 여성주의(페미니즘)를 환기시킨 보노의 사상적 일면을 엿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With Or Without You'를 장식한 대자연 익스트림 롱 쇼트 영상. 유투는 이날 공연에서 '음악과 영상의 조화'를 적극 활용했다.

선곡리스트에선 아쉽게 완전히 누락된 앨범들도 있었다. 'Gloria'가 있는 [October](1981)는 일본 현대사진 작가 스기모토 히로시의 작품으로 재킷을 장식했던 2009년작 [No Line On The Horizon]과 함께 통째로 증발했고, 'If God Will Send His Angels'를 가진 [Pop](1997)과 'Stay (Faraway, So Close!)'가 수록된 [Zooropa](1993)도 앞선 두 앨범과 같은 운명에 처했다.

이어 [Joshua Tree]다. 이번 내한공연의 투어 제목이기도 하거니와 U2의 대표 앨범, 나아가 세계 대중음악계 80년대 대표 명반인 이 작품은 이날 밤 단 한 곡도 빠지지 않고 모두 선보였다. 생명과 희망, 종교의 구원을 뜻하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나무를 주제로 삼은 이 불멸의 앨범에서 밴드는 특히 '음악과 영상의 조화'를 적극 활용했는데 이게 또 백미였다.

가령 곡이 끝날 때쯤 보노가 직접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펼친 비디오아트 퍼포먼스('Bullet The Blue Sky')나 스테디캠을 내려앉힌 이름모를 대로('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 광활하고도 황량한 대자연을 느리게 쓰다듬는 익스트림 롱 쇼트('With Or Without You')는 관중들이 들리는 음악을 더 깊이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카메라가 천천히 줌 아웃 하며 비추는 무표정한 악대부의 녹화 연주가 현장의 유투 연주와 정확히 합을 이루던 'Red Hill Mining Town' 역시 시공을 넘어선 토탈아트의 감성, 감동을 그대로 전했긴 마찬가지. 이번 공연의 중심이자 핵심이었던 이 '조슈아 트리 전곡 퍼포먼스'는 U2라는 밴드가 40년을 지향해온 종교적 믿음과 사회적 평등("우리 모두가 평등해질 때까지는 우리 중 누구도 평등하지 않다"), 정치적 평화를 티끌 하나까지 담아낸 것이다. 물론 그것은 [War] 앨범에 보탠 혹자의 촌평("정치와 인류의 상태에 대한 정열적인 견해")에도 정확히 부합했다.

▲[Joshua Tree]의 첫 곡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이 흐르면서 2만 8천 관중들은 유투와 함께 미국의 황량한 대로를 드라이브 했다.

그리고 존 레넌.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U2의 첫 내한공연이 열린 날은 비틀즈의 존 레넌이 39년 전 마크 채프먼의 38구경 권총에 눈 감은 날과 같았다. 보노는 공연 중간에 레넌을 가리켜 "위대한 피스메이커(Peacemaker)"라 했고, 그는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에서 'Stand By Me'에 이어 'Vertigo'에서도 비틀즈의 데뷔 싱글 'Love Me Do'와 'She Loves You'를 접붙이면서 공연 내내 존 레넌을 추모했다.

U2는 [Joshua Tree]를 발매한 1987년에만 전세계 110회 투어를 치렀다. 이는 세계 대중음악 역사상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는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U2는 다른 건 몰라도 공연에서만큼은 천하의 롤링 스톤스도 뛰어넘는 밴드인 것이다. 이날도 U2는 그런 '스타디움 밴드'로서 자신들의 위력을 새삼 증명했다. 어떤 자리에선 사운드가 뭉개졌다 불만도 있었지만 내가 들은 그들의 연주는 충분히 세계적이었다.

에지는 전기 기타가 가진 최대 장점인 증폭과 왜곡을 십분 활용한 자신만의 톤을 2만 8천 관중 앞에 과감히 전시했고, 보노 역시 세월의 흔적을 살짝 비쳤을지언정 이승열이 동경한 그 울림을 아낌없이 쏟아냈다. 에지가 마음껏 연주할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야 하는 애덤 클레이턴의 베이스도 그 정도면 만족스러웠고, 기교보단 (밴드에의)기여에 의미를 두는 래리의 단단한 리듬 프레이즈도 공연의 척추로서 손색이 없었다.

▲에지와 보노. 에지는 잉베이 맘스틴처럼 안 쳐도 얼마든지 전기 기타를 멋있게 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가끔 힘에 부쳐보였지만 보노의 보컬도 무난했다.
▲U2 공연에 쓰인 스크린은 가로 61미터, 세로 14미터에 해상도 8K다. 이날 공연을 위해 공수된 장비만 화물 전세기 3대와 50피트 카고 트럭 16대 분량이었다고.

1976년 고등학생 때부터 여태껏 같은 멤버로 달려온 밴드. 이는 보노가 존경하는 존 레넌의 비틀즈도, 공연 전 장내에 흐른 고향 선배 밴드 씬 리지('The Boys Are Back In Town')와 레드 제플린('Whole Lotta Love'), 퀸('Killer Queen')도 이루지 못한 일이다. 변함 없는 라인업. 어쩌면 '밴드'에겐 그보다 더 값진 일이 없을 지도 모른다. 팬들도 바로 거기서 U2 음악의 진정성을 느끼는 것일 테고 강산에와 박정현, 라이브(Live)와 킬러스(The Killers), 콜드플레이와 노엘 갤러거 같은 대가들도 바로 그 이유로 U2를 편애하는 것일 게다.

사진=라이브네이션 코리아, Ross Stewart 제공.

*이 글은 연예전문매체 <마이데일리>에도 실렸습니다.

글/김성대 (본지 편집장·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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