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리뷰] 톰 요크의 진정한 음악적 해방 'Anima'
[음반리뷰] 톰 요크의 진정한 음악적 해방 'Anima'
  • 김성대 기자
  • 승인 2019.08.31 14: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톰 요크는 라디오헤드라는 밴드를 벗어날 수 없어 보였다. 그가 모던록을 하건 글리치(Glitch), 앰비언트 팝을 하건 톰의 등 뒤엔 늘 라디오헤드가 귀신처럼 서 있었다. 세 번째 솔로앨범 제목으로 가져다 쓴 칼 구스타프 융의 이론(Anima: 남성 속 여성의 특성)을 비틀어보면 결국 라디오헤드는 톰 요크의 무의식 속 또 다른 자아였던 것이다.

하지만 톰은 이제야 비로소 라디오헤드와 별개 음악 세계를 펼칠 수 있는 경지에 이른 모습이다. 이건 어쩌면 제임스 이하가 과거 [Let It Come Down]으로 스매싱 펌킨스와 완전히 다른 음악을 들려준 것과 같은 맥락일지 모른다. 톰 요크는 그 시도를 이미 두 차례 한 바 있지만 두 차례 시도에서 라디오헤드는 그를 완전히 놓아주지 않았다. 톰은 라디오헤드에 어떤 식으로든 결박됐고 라디오헤드는 톰에겐 피할 수 없는 재갈처럼 기능했다.

앨범 [Anima]에서 톰의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이 강력한 개성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건 지난 [Suspiria] OST 작업이 계기가 된 듯 보인다. 일종의 자신감이랄까. 영상과 음악이 추상의 환영이 아닌 구체적 환상으로 결합할 때 그것을 들이킨 뮤지션의 자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톰은 누구보다 강렬하게 경험했을 터였다. 그런 면에서 폴 토마스 앤더슨과 만든 넷플릭스 영상도, ‘Twist’ 라이브 퍼포먼스도 이제는 모두 그를 ‘토털 아티스트’로 이끄는 단서들로 남게 됐다.

세상이 ‘내공’이라 부르는 성장의 동력으로 톰 요크는 마침내 음악의 예술적 전환을 이뤄냈다. 이건 [OK Computer]로 이룬 라디오헤드의 성취보다 [Kid A]로 갈린 라디오헤드의 운명에 더 가까운 결과다. ‘Traffic’의 다소 들뜬 그루브가 ‘Last I Heard (...He Was Circling the Drain)’의 염세에 전염되면서 드러나는 강박도 결국 그 운명에 부합한 톰 요크의 음악적 안식처일 터다. 이어지는 ‘Twist’도 마찬가지. ‘Twist’를 듣고 있으면 그에게 불안과 안정은 더 이상 반대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닫힌 비트와 열린 멜로디로 사운드에 통찰을 주는 톰의 감성은 ‘Dawn Chorus’의 독백에 풍성한 여백을 만들어낸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감상자의 마음을 훔칠 줄 아는 능력. 톰이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

벗어날 수 없어 보였던 라디오헤드의 그늘에서 톰 요크가 벗어났다는 단언은 무의미하다. 두 존재를 함께 논한다는 것 자체가 이젠 지겹고 싱겁거나 지루한 일이다. 하지만 단호하고 숭고한 톰의 세 번째 여정을 마주하며 나는 어쩔 수 없이 ‘라디오헤드로부터 톰 요크가 완전히 해방된 사실’을 곱씹게 된다. 이전까지 해방에서 작위적이고 인위적인 냄새가 났던 데 비해 이번 해방에선 어떤 돌파구, 가능성이 짙게 배어나기 때문이다. ‘Not The News’, ‘The Axe’ 같은 곡에서 그런 확신이 드는 건 비단 나 뿐은 아니리라. 차갑고 서정적인, 그러면서 슬픈 이 다차원의 감정이 재빠른 일렉트로닉 편집 속에서 폭발하는 광경은 경이롭다. 더는 라디오헤드의 톰 요크가 아닌, 톰 요크 자체를 독립된 뮤지션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경위 또는 이유가 담긴 작품. 바로 [Anima]다.

글/김성대 (본지 편집장·대중음악평론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