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리뷰] 81세 로커의 사자후, 신중현 '헌정 기타 기념 앨범'
[음반리뷰] 81세 로커의 사자후, 신중현 '헌정 기타 기념 앨범'
  • 김성대
  • 승인 2019.07.31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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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말 미국 펜더(Fender)사가 헌정한 기타로 연주한 신중현의 신작. 재킷 사진은 본인이 직접 촬영한 것으로, 주위의 화려한 색 처리는 자신의 음악에 담긴 '싸이키델릭'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사진=신중현 MVD 제공.

첫 곡 '겨울공원'이 내뿜는 인트로 기타 연주는 'Little Wing'의 주인이 지미 헨드릭스가 아닌 신중현이었을 때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것에 가깝다. 올해로 81살 노장 기타리스트의 체념이 깃든 이 처연한 싸이키델릭 록 트랙을 기반으로 신중현의 14년만 신보는 조용히 날개를 편다. 힘을 빼 더욱 힘이 느껴지는 보컬, 언어의 굴곡을 닮은 기타, 파열과 지지를 일삼는 베이스, 가장 전면에서 가장 후방을 엄호하는 하몬드 올갠, 이 모든 질서에 비밀처럼 균열을 가하는 드럼.

신중현의 새 앨범은 지난 2009년 펜더(Fender)사가 그에게 헌정한 기타로 다시 펜더사에 돌려주는 음악의 답례다. 세계적 기타 브랜드를 업고 스티비 레이 본, 제프 벡, 에릭 클랩튼, 잉베이 맘스틴, 에디 밴 헤일런 정도만이 누렸던 세계적 명성을 국내 음악팬들과 함께 만끽하자는 거장의 제안이 이 작품 속엔 녹아있다.

신중현은 새 음반 녹음을 위해 아들 셋을 불렀다. 신대철, 신윤철, 그리고 신석철. 현직 프로 기타리스트 둘과 드러머 한 명이 아버지의 부름에 응한 것인데 여기서 전공을 살린 사람은 신석철 뿐, 나머지 두 사람은 자신들의 주종목을 잠시 내려놓고 베이스(신대철)와 하몬드 올갠(신윤철)을 각각 취했다. 신대철이 단 두 곡에서만 베이스 연주를 했고 서울전자음악단의 이봉준(베이스)이 나머지를 처리한 사실로 헤아려볼 때 이 앨범은 결국 '신중현과 서울전자음악단'의 것이라 해도 무방해보인다. 그것은 지금의 엽전들, 작금의 더맨, 이 시대의 세 나그네다. 64년 애드-훠부터 신중현이 거느린 밴드는 언제나 신중현을 완성시켰듯 서울전자음악단 역시 그 암묵적 임무에 충분히 부합한 느낌이다.

무심하고 허탈한 아버지의 목소리를 에워싸는 아들들의 악기 톤은 저마다 확고한 세계를 구축해 아버지의 기타에 맞선다. 질주하는 '바다'의 경우 짜디짠 일렉트릭 기타 톤은 요염한 하몬드 올갠, 덜컹대는 드럼 비트와 육박전을 벌이고, 신곡 '그날들'에선 거품을 뺀 멜랑콜리를 덧씌워 록이라는 소란에 깊은 평화를 입혀낸다. 

또 비틀어서 으깨는 '빗 속의 여인' 후반 기타 솔로는 신중현이 자신의 기타 연주를 '기(氣)로 내는 소리'라고 말한 바의 증거이며, 롤링 스톤스의 기타를 키스 리처드 대신 신중현이 잡으면 이런 곡이리라 싶은 '어디서 어디까지'는 46년 전 이 노래를 부른 김정미에게 보내는 원작자의 푸념처럼 들린다. 더 잘 만들 수도 있었는데, 하는 세상 모든 창작자들이 겪는 약속된 후회는 이 곡에도 어김없이 스며있는 것이다.

도인의 경지, 거인의 건재. 이런 값싼 감격으로 이 작품을 대하고 싶진 않다. 내가 놀란 건 이 음반에 담긴 에너지다. 즉흥적이고 단호한 잼(Jam)으로 일관하는 이 오싹한 열기가 81세 기타 장인과 그 아들들이 빚어낸 것이란 사실에 나는 흥분했다. 세속의 기준에서 '절창'일 수 없는 신중현의 보컬. 그것이 남기는 허망함의 여운은 피어나 사라지는 음악의 운명과 어찌 그리도 쏙 빼닮았는지. 다시 이 에너지를 느낄 기회가 조만간, 또 오리라 믿는다.  

글/김성대 (본지 편집장·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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