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파머스 조합원 인터뷰 15] "남명의 정신에서 '자연드림'까지" 합천 '본초농원' 최창율 대표
[합천파머스 조합원 인터뷰 15] "남명의 정신에서 '자연드림'까지" 합천 '본초농원' 최창율 대표
  • 김성대 기자
  • 승인 2019.12.23 17: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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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삼가 출신...부산에서 학창시절 보내
KT 30년 근무, 2007년 퇴직 후 농사 시작
산청 해동성원서 공부하려 한 적도 있어
토마토, 메론, 애플수박...대파는 시험재배
아이쿱생협 '자연드림' 통해 100% 유통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에 있는 용암서원 입구. 사진=김성대 기자.
용암서원 입구에선 그 유명한 남명의 '단성소'를 새긴 8톤 무게 비석도 만날 수 있다. 1555년(명종 10년) 10월 11일 단성현감에 제수된 남명이 그해 11월 19일 임금과 조정의 잘못을 신랄하게 비판해 올린 단성소(단성현감 사직소)는 지금까지도 시대를 초월한 명문, 정신으로 남아 있다. 사진=김성대 기자.
용암서원 입구에 있는 남명 조식 선생의 흉상(청동, 높이2.5m·좌대높이1m·폭3m). 충북대학교 유경원 교수가 조각했다. 남명 흉상 좌우(원문과 역문) 비에는 전주부윤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 새겨져 있다. 사진=김성대 기자.

경남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에는 조선의 대학자 남명 조식 선생을 추모하는 용암서원(龍岩書院)이라는 곳이 있다. 남명이 세상을 뜨고 4년 뒤인 1576년, 삼가 유림들이 힘을 모아 회산서원이란 곳을 세웠는데 광해군 때 사액을 받아 지금의 용암서원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용암서원은 흥선대원군 때 사원철폐령으로 부수었다 2007년에 복원되었다.

양천강 물줄기를 따라 흐르는 남명의 경의(敬義) 정신을 남몰래 흠모해온 최창율(65) 씨는 바로 그 삼가면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의 직장 관계로 부산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KT 입사 후 스스로 합천 발령을 원해 다시 고향으로 내려와 30년간 출퇴근을 했다. 본초농원은 최 씨가 2007년 퇴직 후 택한 두 번째 직장 이름이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농사를 지으려 했던 건 아니다. 그는 퇴직 후 절에 들어가 수행하려 했다.

합천군 삼가면 '본초농원' 최창율 대표. 남명 선생을 흠모하는 그는 자신이 재배하는 메론에도 선생이 김해에서 돌아와 61세 때까지 학문을 닦은 '뇌룡정(雷龍亭)'을 이름으로 붙였다. 사진=김성대 기자.

스님이 되려 했던 농부, 첫 작물은 '당귀'

최창율 본초농원 대표는 농원을 열기 전엔 호미 한 번 안 잡아본 농사 문외한이었다. '여기에 일구어 보라'며 동네 한 어른이 땅 100평을 내주기 전까지 그는 절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싶었다. 구체적으론 산청 해동선원 성수스님 밑에서(최 대표는 성수스님에게 행자승 승낙까지 받아둔 상태였다) 세상 이치를 깨달으려 한 것인데 아내의 반대로 그 꿈은 이루지 못했다. 아내는 "아직 자식 혼사도 치르지 않았는데 어쩌시려고 그런 승낙을 내리십니까" 성수스님에게 따졌던 것이다. 최 대표의 인생 공부는 아내의 반대로 어쩔 수 없이 유예되어야 했다.

절 생활이 무산되고 최 대표가 삽 한 자루와 호미로 100평 땅을 일궈 재배한 것은 바로 당귀. 당귀는 직장 생활로 '인생 1막'을 마친 그가 약초로 세상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고른 '인생 2막'의 매개였다. 하지만 약초 재배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굉장한 생명력을 지닌 당귀 뿌리는 비닐조각, 노끈 등 땅속 쓰레기들과 마구 뒤섞였고 '이 지저분한 것이 세상에 나가 어찌 사람들 병을 치료하겠나' 싶어 최 대표는 거둔 당귀를 모두 갖다버렸다. 대구 한약사 지인도 있고 해서 시작한 약초 농사는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약값은 계속 내렸고 재배는 뜻대로 안 됐다. 이대로 가다간 '인생 2막'이 위태로워질 것 같았다.

"100평으론 모자랄 것 같아 율곡면에 놀고 있던 밭 1000평 정도를 빌려 포크레인으로 개간했습니다. 그리고 시호(柴胡)라는 약초를 심었죠. 그 전 해였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치료제로 한방에서 시호를 쓰면 좋다는 말이 나왔거든요. 그런데 땅 개간이 보통 일이 아닌 거예요. 사람을 썼는데도 풀이 너무 많아 700평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나머지 300평에서 2년간 가꾼 시호를 쇠스랑으로 캤는데 너무 힘들어 몸살이 나 보약을 지어먹었죠. 그런데 약값이 2년 지어 내다판 시호값과 같더라고요.(웃음) 아, 농사라는 게 무작정 짓는다고 되는 게 아니구나 싶어 그 길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 최창율 대표

최 대표는 이후 합천 군유지 2만평을 빌려 개간해 도라지 농사도 지어봤지만 결과는 좋질 못했다. 농사라는 것이 비록 지식만으로 좌우되는 건 아니어도, 그나마 최소한 지식은 갖추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그는 합천군 미래농업대학, 경남농업마이스터대학 2년 과정, 경상대학교 농업 최고경영자 관리 과정을 졸업해 지난해엔 농촌진흥청장 상까지 받았다. 몰랐을 땐 막연했던 것이 알고 나니 길이 보였다. 모름지기 알고 나면 행해야 하는 법. 실천을 강조한 남명 선생의 뜻은 그렇게 최 대표의 생활 속에서 조용히, 그리고 자연스레 응용됐다.

본초농원에서 재배한 토마토. 메론과 애플수박까지, 이곳에서 수확한 작물들은 100% 아이쿱생협 '자연드림'을 통해 유통된다. 사진=김성대 기자.

판로는 '자연드림' 100%

본초농원의 농지 규모는 1600평 정도다. 토마토와 메론, 애플수박 등을 주로 재배하고 합천읍에 있는 하우스 5동(700평)에선 현재 대파를 시험재배하고 있다.

대파를 뺀 본초농원 재배 작물들은 모두 아이쿱생협 프리미엄 상품 브랜드인 자연드림을 통해 유통된다. 자연드림과의 인연은 최 대표가 '친환경'에 눈을 뜨면서 시작됐다.

"이 농장을 샀을 당시 7, 8년 된 진지향 귤나무가 있었어요. 하루는 작물에 농약을 치고 나오는데 마치 제가 농약에 목욕을 하고 나온 느낌이더라구요. 이러다간 농약에 중독되겠다 생각이 들면서 친환경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그렇게 친환경 쪽으로 판로를 알아보다 자연드림을 알게 됐고, 자연드림 토마토 수급자 역할을 몇 년간 하면서 정회원 될 기회가 닿아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 최창율 대표

최 대표에겐 4개국어를 구사하는 아들이 있다. 아들은 인터뷰 당일에도 번역 일로 다른 지역에 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아들은 농장 일을 이어 받을 본초농원 차기 대표이기도 하다. 현재 본초농원은 최 대표 부부와 최 대표의 아들 부부가 함께 운영하고 있다. 아들은 콜럼비아에서 법학 공부를 하다 만난 현지 간호사 아내와 결혼해 지금 부친의 고향에 머물고 있다. 아들은 청년농으로서 이미 지역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상황. 본초농원은 내년부터 유기농 재배를 시작한다.

"우선은 이 농원을 키워나갈 아들이 시행착오를 덜 겪을 수 있도록 도울 겁니다. 그리고 조금 있는 제 빚 다 갚고 70살 정도까지만 농장 운영에 관여하다 완전히 손을 떼려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 뒤 다시 내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관해 공부해나갈 생각입니다. 요즘엔 매주 화요일 퇴직한 대학교수님들과 경상대학교 명상반에서 공부하는 중이고요." - 최창율 대표

인터뷰를 끝내고 기자는 최 대표와 함께 남명 조식 선생을 추모하는 용암서원을 찾아 갔다. 용암서원 옆 양천강 방죽길에 애처롭게 선 다 죽은 나무에서 버섯이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고 최 대표는 "생명을 다한 나무에서 또 다른 생명이 자라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 그 말은 과연 삶의 덧없음, 삶의 본질을 찾아나설 예비 행자다운 감탄이었다. 

김성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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