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파머스 조합원 인터뷰 3] “합천의 산초 지킴이” 고품산초농장 김인근 대표
[합천파머스 조합원 인터뷰 3] “합천의 산초 지킴이” 고품산초농장 김인근 대표
  • 김성대 기자
  • 승인 2019.09.16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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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역서 소방관, 교사 생활하다 귀향
2003년 첫 산초나무 심어...3천평 재배
“젊은사람들 산초농사에 관심 가져주길”

산초는 운향과의 낙엽 지는 관목으로 산이나 들에서 큰다. 다 자라면 3미터에 이르고 꽃은 8~9월에 피는데, 다 자란 녹갈색 열매가 터지면 까만 씨앗이 밖으로 튀어 나온다. 산초는 보통 기름을 짜서 먹거나 빻아 향미료로 주로 쓴다. 물론 애주가들에겐 좋은 술 재료가 되는 것 또한 산초다.

<동의보감>에 이르길 산초는 이빨을 튼튼하게 하고 머리털을 빠지지 않게 한다 했다. 또한 눈을 밝게 하고 복통과 이질을 낫게 하는 것도 산초의 주요 효능이라 <동의보감>은 적고 있는데, 폐와 기관지를 보호하고 면역력을 증진시키며 소화·변비 해소를 돕는 것 역시 산초가 가진 재능이라 세간엔 알려져 있다. 이런 귀한 약초를 재배하는 곳이 합천군에 있다고 해 미디어팜이 직접 찾아가 보았다.

합천 고품산초농장 김인근 대표. 그는 현재 산초 3천평, 밤나무 5천평 규모 농장을 가꾸고 있다.

산초 농사만 16년째 ‘베테랑’

고품산초농장. 합천군 고품리 합천호수로에 있는 이곳은 지난 2003년부터 김인근 대표가 터를 잡고 산초를 키워온 곳이다. 김 대표는 과거 거제와 창원에서 3년 이상 소방관 생활을 했고, 임용고시를 7년 준비해 학교 기간제 교사 생활도 했지만 나이 드신 부모님을 이어 농사를 지어야 했던 탓에 다 접고 결국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의 나이 37살 때였다.

산초를 재배하는 농가는 전국에 흔치 않다. 경남에선 밀양 우보산초, 의령 산애산초 정도가 있고 비교적 인접한 전북 진안(산초나라)과 전남 영광에서도 산초를 키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가 산초를 안 건 합천 농업기술원 교육 시간을 통해서였다. 처음엔 무작정, 밤나무 가꾸듯 산초나무도 같은 재배법으로 하면 되지 않겠나 싶어 뛰어들었다. 마침 가지고 있던 종중산(宗中山)을 활용하기에도 산초는 알맞아 보였다. 그렇게 16년을 김 대표는 산초와 함께 달려 왔다.

고품산초농장의 산초 모습. 산초는 열매 자체에 영양소가 더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포대로 1병...산초 가격 10년 전과 같아”

물론 산초 농사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주위에서도 약초 재배는 ‘먹고 살만 할 때 하는 것’이라는 조언들을 해왔다. 약초는 일반 작물들과 달리 사람에게 직접 가해지는 것이라 기본적인 벌이가 안 되는 상태에선 무리하게 팔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산초는 사계절을 돌봐야 하는 작물이어서 어르신들이 손대기엔 부담스러운 것이기도 했다. 요즘 농촌에서 50대는 젊은 축. 겨울에 거름 주고 봄에 가지치고, 여름에 풀 벤 뒤 가을에 수확하는 산초 농사는 비교적 ‘젊은’ 김 대표 같은 사람이 달려들지 않고선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산초 가격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중국산이 들어오면서 사실상 동결 상태인 거죠. 그리고 산초 생산이 생각만큼 많이 안 됩니다. 1포대 해야 겨우 기름 1병 정도가 나와요. 그나마 익은 걸 땄을 때고 그마저 못 미치면 1병도 제대로 안 나옵니다.” - 김인근 대표

합천 고품산초는 인터넷으로 70~80%를 판매한다. 가끔은 농가 옆 도로에 진열해놓은 걸 보고 사람들이 사갈 때도 있고, 15년 이상을 해오다보니 알음으로 찾아오는 합천 군민들도 제법 있다. 이들 구매자들 중 맛의 호불호에서 갈린 경우는 있어도 ‘효과가 없다’는 사람은 없었다. 한때 산초기름을 못 먹는 사람들을 위해 김 대표는 산초 술도 생각해봤지만 주조 허가부터 장소 문제까지 준비 과정이 너무 복잡해 결국 포기했다.

“작년에 비해 올해는 산초 농사가 잘 됐습니다. 그런데 4년 정도 지나니 나무도 아파하네요. 뿌리가 깊어봐야 30cm 밖에 들어가지 않는 산초라는 식물이 그렇습니다. 생산이 잘 되면 수명이 짧아지죠. 산초기름 가공은 기존 하동군 업체를 통해 만들어 둔 제품 스티커가 다 소모되면 내년부턴 합천농업기술원과 함께 해나갈 것 같습니다.” - 김인근 대표

고품산초농장이 만든 산초기름. 현재 360ml 한 병(왼쪽)에 14만원, 200ml짜리(오른쪽)는 8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인력 부족...“산초가 사라질까봐 걱정”

‘인력난’은 대한민국 어느 농가든 마찬가지다. 거의 혼자 하다시피 하는 김 대표 역시 인력 수급이 가장 골치다. 산초를 수확하다 여의치 않으면 일꾼을 대고 일꾼을 댈 수 없을 땐 그냥 내버려둬야 할지도 모르는 현실이 김 대표의 주름살을 늘게 만든다.

“함께 일할 사람이 없어 힘든 상황입니다. 그나마 경남도가 내년부터 몇몇 농가를 지정해 250만 원 이상 2달치 월급을 자체 부담하면 이후 급여를 지원해주는 제도를 마련한다고 들었어요. 한 해 몇 십 명 정도를 지원해준다더군요. 그래서 저도 한 번 신청해보려고 합니다. 현재로선 저 혼자 해나가기엔 벅찬 면이 있거든요.” - 김인근 대표

끝으로 김 대표는 구매자들로부터 직접 들은 산초 효능들을 얘기했다. 죽도 소화 못 시키던 사람이 산초 술로 나아진 경우, 몇 년 동안 애 먹이던 두통을 산초를 통해 벗어난 사람, 대상포진·아토피에 효과를 본 사람 등 산초는 <동의보감>에 소개된 약초로서 효과를 현대 사회에서 톡톡히 발휘하고 있었다.

혈액순환에도 좋은 산초는 사실 기름보다 열매 자체에 영양분이 더 많다고 김 대표는 덧붙였다. 그 열매로 장아찌나 술을 담가 하루 반 잔 씩 먹으면 좋다고 그는 말했다. 고품산초 열매는 올해부터 판매 중이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은 1kg이 3만원에 거래된다.

김 대표의 ‘산초 예찬’은 이어졌다. 산초는 닭백숙 요리에 넣어도 좋고, 라면 끓일 때 한 스푼 넣으면 ‘옛날 라면’ 맛도 즐길 수 있단다. 산초 기름 한 숟갈이면 밥 한 그릇도 뚝딱 비벼 먹을 수 있다는 게 김 대표의 주장이다. 물론 시래기 국에도 산초기름 반 스푼을 넣으면 향미는 배가 된다. 꼭 약초로 산초를 즐길 필요는 없다. 김 대표는 ‘생활 속의 산초’를 꿈꾼다.

“요즘 들어선 일손이 부족한 만큼 산초가 사라질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어 마음이 무겁습니다. 50대 이상 사람들은 산초의 맛과 효능을 알지만 이후 세대는 그걸 잘 모르거든요. 귀한 걸 모르면 방치하게 마련이고, 산초 농사가 방치되면 산초는 자연스레 우리 곁을 떠날 수 있는 거지요. 부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 김인근 대표

김성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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