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첫 산초나무 심어...3천평 재배
“젊은사람들 산초농사에 관심 가져주길”
산초는 운향과의 낙엽 지는 관목으로 산이나 들에서 큰다. 다 자라면 3미터에 이르고 꽃은 8~9월에 피는데, 다 자란 녹갈색 열매가 터지면 까만 씨앗이 밖으로 튀어 나온다. 산초는 보통 기름을 짜서 먹거나 빻아 향미료로 주로 쓴다. 물론 애주가들에겐 좋은 술 재료가 되는 것 또한 산초다.
<동의보감>에 이르길 산초는 이빨을 튼튼하게 하고 머리털을 빠지지 않게 한다 했다. 또한 눈을 밝게 하고 복통과 이질을 낫게 하는 것도 산초의 주요 효능이라 <동의보감>은 적고 있는데, 폐와 기관지를 보호하고 면역력을 증진시키며 소화·변비 해소를 돕는 것 역시 산초가 가진 재능이라 세간엔 알려져 있다. 이런 귀한 약초를 재배하는 곳이 합천군에 있다고 해 미디어팜이 직접 찾아가 보았다.
산초 농사만 16년째 ‘베테랑’
고품산초농장. 합천군 고품리 합천호수로에 있는 이곳은 지난 2003년부터 김인근 대표가 터를 잡고 산초를 키워온 곳이다. 김 대표는 과거 거제와 창원에서 3년 이상 소방관 생활을 했고, 임용고시를 7년 준비해 학교 기간제 교사 생활도 했지만 나이 드신 부모님을 이어 농사를 지어야 했던 탓에 다 접고 결국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의 나이 37살 때였다.
산초를 재배하는 농가는 전국에 흔치 않다. 경남에선 밀양 우보산초, 의령 산애산초 정도가 있고 비교적 인접한 전북 진안(산초나라)과 전남 영광에서도 산초를 키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가 산초를 안 건 합천 농업기술원 교육 시간을 통해서였다. 처음엔 무작정, 밤나무 가꾸듯 산초나무도 같은 재배법으로 하면 되지 않겠나 싶어 뛰어들었다. 마침 가지고 있던 종중산(宗中山)을 활용하기에도 산초는 알맞아 보였다. 그렇게 16년을 김 대표는 산초와 함께 달려 왔다.
“1포대로 1병...산초 가격 10년 전과 같아”
물론 산초 농사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주위에서도 약초 재배는 ‘먹고 살만 할 때 하는 것’이라는 조언들을 해왔다. 약초는 일반 작물들과 달리 사람에게 직접 가해지는 것이라 기본적인 벌이가 안 되는 상태에선 무리하게 팔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산초는 사계절을 돌봐야 하는 작물이어서 어르신들이 손대기엔 부담스러운 것이기도 했다. 요즘 농촌에서 50대는 젊은 축. 겨울에 거름 주고 봄에 가지치고, 여름에 풀 벤 뒤 가을에 수확하는 산초 농사는 비교적 ‘젊은’ 김 대표 같은 사람이 달려들지 않고선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산초 가격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중국산이 들어오면서 사실상 동결 상태인 거죠. 그리고 산초 생산이 생각만큼 많이 안 됩니다. 1포대 해야 겨우 기름 1병 정도가 나와요. 그나마 익은 걸 땄을 때고 그마저 못 미치면 1병도 제대로 안 나옵니다.” - 김인근 대표
합천 고품산초는 인터넷으로 70~80%를 판매한다. 가끔은 농가 옆 도로에 진열해놓은 걸 보고 사람들이 사갈 때도 있고, 15년 이상을 해오다보니 알음으로 찾아오는 합천 군민들도 제법 있다. 이들 구매자들 중 맛의 호불호에서 갈린 경우는 있어도 ‘효과가 없다’는 사람은 없었다. 한때 산초기름을 못 먹는 사람들을 위해 김 대표는 산초 술도 생각해봤지만 주조 허가부터 장소 문제까지 준비 과정이 너무 복잡해 결국 포기했다.
“작년에 비해 올해는 산초 농사가 잘 됐습니다. 그런데 4년 정도 지나니 나무도 아파하네요. 뿌리가 깊어봐야 30cm 밖에 들어가지 않는 산초라는 식물이 그렇습니다. 생산이 잘 되면 수명이 짧아지죠. 산초기름 가공은 기존 하동군 업체를 통해 만들어 둔 제품 스티커가 다 소모되면 내년부턴 합천농업기술원과 함께 해나갈 것 같습니다.” - 김인근 대표
인력 부족...“산초가 사라질까봐 걱정”
‘인력난’은 대한민국 어느 농가든 마찬가지다. 거의 혼자 하다시피 하는 김 대표 역시 인력 수급이 가장 골치다. 산초를 수확하다 여의치 않으면 일꾼을 대고 일꾼을 댈 수 없을 땐 그냥 내버려둬야 할지도 모르는 현실이 김 대표의 주름살을 늘게 만든다.
“함께 일할 사람이 없어 힘든 상황입니다. 그나마 경남도가 내년부터 몇몇 농가를 지정해 250만 원 이상 2달치 월급을 자체 부담하면 이후 급여를 지원해주는 제도를 마련한다고 들었어요. 한 해 몇 십 명 정도를 지원해준다더군요. 그래서 저도 한 번 신청해보려고 합니다. 현재로선 저 혼자 해나가기엔 벅찬 면이 있거든요.” - 김인근 대표
끝으로 김 대표는 구매자들로부터 직접 들은 산초 효능들을 얘기했다. 죽도 소화 못 시키던 사람이 산초 술로 나아진 경우, 몇 년 동안 애 먹이던 두통을 산초를 통해 벗어난 사람, 대상포진·아토피에 효과를 본 사람 등 산초는 <동의보감>에 소개된 약초로서 효과를 현대 사회에서 톡톡히 발휘하고 있었다.
혈액순환에도 좋은 산초는 사실 기름보다 열매 자체에 영양분이 더 많다고 김 대표는 덧붙였다. 그 열매로 장아찌나 술을 담가 하루 반 잔 씩 먹으면 좋다고 그는 말했다. 고품산초 열매는 올해부터 판매 중이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은 1kg이 3만원에 거래된다.
김 대표의 ‘산초 예찬’은 이어졌다. 산초는 닭백숙 요리에 넣어도 좋고, 라면 끓일 때 한 스푼 넣으면 ‘옛날 라면’ 맛도 즐길 수 있단다. 산초 기름 한 숟갈이면 밥 한 그릇도 뚝딱 비벼 먹을 수 있다는 게 김 대표의 주장이다. 물론 시래기 국에도 산초기름 반 스푼을 넣으면 향미는 배가 된다. 꼭 약초로 산초를 즐길 필요는 없다. 김 대표는 ‘생활 속의 산초’를 꿈꾼다.
“요즘 들어선 일손이 부족한 만큼 산초가 사라질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어 마음이 무겁습니다. 50대 이상 사람들은 산초의 맛과 효능을 알지만 이후 세대는 그걸 잘 모르거든요. 귀한 걸 모르면 방치하게 마련이고, 산초 농사가 방치되면 산초는 자연스레 우리 곁을 떠날 수 있는 거지요. 부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 김인근 대표
김성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