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충절의 고장' 의령을 대표하는 절경들
[여행] '충절의 고장' 의령을 대표하는 절경들
  • 조현웅 기자
  • 승인 2019.04.11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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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경 충익사

임진왜란 때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켰던 곽재우 홍의장군과 17장령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때문에 매년 4월22일 이곳에서는 추모제향이 봉행된다. 사당 서쪽으로 위치한 다포팔작식 목조건물 충의각은 곽재우 장군과 17장령의 증직명과 관향 등이 적힌 명판이 보관되어 있다. 이외에도 곽재우장군 유적 정화 기념비 및 기념관에는 그들의 유물, 기마도, 전투도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제2경 자굴산

경남의 중심부에 위치한 의령의 진산으로 산맥의 형상이 마치 황소를 닮았다. 경사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어 등산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해발 600m 지점까지는 자동차로도 올라갈 수 있다. 또한 꽃길, 숲길, 오솔길 등 수려한 산책로 조성으로 매년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특히 옛 신선이 놀고 갔다는 강선암과 갑을사지 등 사찰 터, 약 3m 깊이의 동굴과 천연 동굴샘, 조선시대 남명 조식이 그 경관에 홀려 세월 가는 줄 모르고 노닐었다는 명경대 등 볼거리가 많다.

 

제3경 봉황대

'천하절경'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곳이다. 봉황대는 기암괴석이 연출하는 일대장관을 뜻하는데, 벽계저수지를 향해 꺾어드는 길 초입부터 산과 바위 그리고 정자이름까지 모두 봉황대다. 봉황대 돌계단을 따라 오르면 암벽사이로 자연 동굴이 하나 있다. 이 동굴을 지나 좁은 석문을 통과하면 또 다시 동굴이 나오는데, 이곳에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약수터가 있다. 봉황대를 찾은 이라면 꼭 이곳에 들러 목을 축여보길 권한다.

 

제4경 벽계관광지

벽계저수지, 봉황대, 벽계계곡 등이 포함된 28만 7천㎡ 규모의 관광지다. 벽계저수지는 봄에 저수지를 따라 만개한 벚꽃이 수려한 장관을 이룬다. 또 물이 맑고 수심이 깊어 낚시터로도 유명하다. 봉황대는 의령9경에 선정될 만큼 기암절벽이 절경을 이룬다. 특히 벽계계곡은 얕은 웅덩이가 많아 어린이들의 물놀이 장소로 적합해 매년 여름 가족단위 피서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곳이다. 주차장, 야영장, 방갈로, 물놀이시설, 산책로, 캠프파이어장 등이 마련돼 있다.

 

제5경 정암루

남해고속도로 군북IC에서 내려 79번 국도로 10분가량 달리면 의령 관문이 나온다. 그 무렵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정암루다. 정암루는 임진왜란 때 전라도 침탈을 위해 의령으로 진격한 왜적을 곽재우 장군이 물리친 승전지로 역사가 있는 장소다. 옛 선인들이 나룻배를 타고 왕래했던 나루터이기도 했다. 정암루 옆 가마솥을 닮은 솥바위는 부자바위라 불리며, 솥바위 반경 8km에는 부귀가 끊이질 않는다는 전설이 있다. 이를 증명하듯 인근 마을에서 삼성·엘지·효성 창업주가 태어나기도 했다.

 

제6경 탑바위

호미산 절벽 위에 있는 바위다. 얇고 평평한 돌들이 탑처럼 층층이 쌓여 있어 탑바위라 이름 붙었다. 약 20톤의 커다란 바위가 아랫부분을 받치고 있으며, 그 위로 높이 8m 가량의 작은 바위들이 천연적으로 층을 이루고 있다. 가운데 허리부분이 잘록하게 들어가 있어 장구를 세워 놓은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제7경 수도사

신덕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전통사찰이다. 662년 신라시대 문무왕 2년에 고승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하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나 송운대사 유정이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이곳 뒷산에서 원효대사가 백여명 불제자와 함께 수도를 하여 절 이름도 수도사(修道寺)라 불리게 됐다고 한다. 의령군에 고찰이 더러 있었다는 기록은 있으나 현재 수도사만이 유일하게 옛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제8경 백산 안희제 생가

백산 안희제 선생은 의령군 부림면 입산리의 속칭 설뫼마을에서 태어나 독립운동에 헌신한 민족지도자이다. 민족교육과 민족언론 육성에도 선구적 역할을 하였고 만주를 무대로 독립운동을 하다 광복 2년 전에 일생을 마쳤다. 특히 창남학교·의신학교·동래 구명학교·대구 교남학교를 건립하는 등 신학문 보급에 힘썼다. 그의 생가는 1993년 1월 8일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193호로 지정돼 독립운동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제9경 호암 이병철 생가

호암 이병철 선생은 1938년 삼성상회를 설립, 오늘날 삼성그룹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1968년 삼성전자공업을 세웠고, 1980년대에는 반도체 산업에 진출해 국가경제 발전에 이바지했다. 고인은 한국경제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큰 업적과 교훈을 남기고 지난 1987년 11월19일 사망했다. 현재 그의 생가에선 그가 좋아했던 오동나무, 우물, 유품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정리 조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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