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 권유로 농사 시작...교육과 소통, 인간관계 중시
"사람들과 어울리고 베푸는 노후를 보내고 싶어..."
농산물 무인 판매 시스템 궁리, 현실화 가능성 90%
진주시 금산면 월아산로에 있는 금월농장. 1929년생인 고 고우석 선생은 금월농장 대표 고영오씨의 부친이다. 1만 2천 평 금월농장 부지는 처음엔 야산이었다. 경상대학교 농과대 1회 졸업생인 고 선생이 그 땅에서 양계와 양잠을 시작하며 산을 개간했고, 그는 지역 새마을 지도자로서 또 농업의 선구자로서 마을 농민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마을에는 아직 고 선생의 공적비가 있을 정도로 그의 농업에 대한 애정과 혜안은 남다른 것이었다.
고영오 대표는 군 제대 후 아버지의 권유로 농사를 짓게 된다. 그는 진주농림전문학교 원예학과를 다니며 체계적인 준비를 했다. 만학도로서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원예학과를 졸업한 것도 배움을 향한 그의 열정이 아직 덜 식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저는 귀농이 아니라 아버님께 물려받은 겁니다. 78년도 즈음 학교를 다니며 본격적으로 과수목으로 전환했죠. 그리고 남들보다 10년 앞서 신고배를 도입했어요. 80~90년대만 해도 배가 고가였습니다. 배 1박스에 20만 원 정도 나갔으니까요. 그래서 90년대엔 한해 농사를 지으면 논 몇 마지기 정도는 살 정도로 벌었죠.”
하지만 지금은 옛날과 달라 고 대표는 품종에 따른 다른 농사법으로 복합 영농을 하고 있다. 배, 복숭아, 매실, 자두 등을 수확해 1년 내내 자금이 흐르도록 해야 생활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인력이다. 과거엔 1열 종대로 산꼭대기까지 제초 작업을 할 정도로 인력이 많았지만 지금은 외국인 노동자 외 국내 인력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요즘 가장 애로사항은 인력입니다. 힘든 인력 수급은 기계화 영농 전환의 계기가 됐죠. 저희는 1991년부터 관내서 기계화 영농을 처음으로 도입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짐을 가득 싣고 산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는 경운기도 개발을 했는데, 군용 지프차 미션을 넣어 4륜 구동으로 개조한 겁니다. 지금은 대동공업이나 국제경운기에서도 다 개발된 거지만 당시엔 없었죠. 여튼 복합 영농을 하다 보니 복숭아와 배, 감 등 인력을 풀로 돌려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입니다. 봉지 씌우기와 수확 때 빼고 나머진 아내와 둘이서 다 한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금월농장 뿐 아니라 대한민국 많은 농가들은 지금 위기를 맞고 있다. 수요보다 공급이 많기 때문이다. 계획보단 의지만 앞선 귀농 인구들이 계속 늘고 있고, 그 인구들이 생산해내는 수확물로 공급은 과잉으로 치닫고 있다. FTA 개방 이후 수입 과일이 범람하는 건 농민들의 한숨을 더 깊게 만든다. 농협이 주관하는 공판장엔 우리 농민들 것이 아닌 외국산이 판을 치고, 90년대 초반 시세에 비해 현재 농산물가는 그 1/3에도 못 미친다. 물자, 자재, 경영, 인건비 등은 10배 이상 올랐지만 농산물 가격은 제자리에서 더 뒷걸음질 쳤다. 소비자들 입맛도 바뀌었고 바뀐 입맛은 수입 농산물을 요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출하 시기 홍수라도 나면 농민들은 무엇 하나 건지지도 못한 채 망연자실해야 한다. 금월농장의 고 대표는 저온창고를 통한 분산 판매로 이 난관을 헤쳐나가고 있다.
“작물 재배 면적을 줄이고 있습니다. 내 힘에 맞는 만큼만 농사를 짓자는 생각으로 요즘은 매실나무도 거의 다 없앴어요. 계속 수확을 줄이는 쪽으로 전환해 지인들을 활용한 유통, 가공 등 노동보단 경영에 사업의 무게추를 두려는 것이죠. 이런 생각에 탄력을 준 것이 바로 에나파머스입니다. 내 기존 고객들에게 주변 농산물까지 함께 공급하는 형태 즉, 꾸러미로 판매를 하려는 게 바로 에나파머스의 전략이거든요. 평소엔 평소 식생활에 맞게, 명절 때는 선물용으로 하는 식이죠.”
고 대표는 진주 강소농(아이디어와 기술력을 토대로 고수익을 올리는 작지만 강한 농가나 농민-편집자주)을 처음부터 지켜봐온 사람이다. 그는 "요즘 농업은 독불장군으론 안 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생각하고 협력해야만 더불어 잘 살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한결같은 생각이다. 그래서 바쁜 시간을 쪼개 그는 교육도 많이 받고 사람도 많이 만났다. 교육은 길게는 80시간을 받은 적도 있다. 그러면서 사람들을 사귀고 소통하고 정보 교류도 하고, 부족한 게 있으면 살아온 경험도 공유했다. 그렇게 강소농이라는 큰 덩어리에서 조직들이 하나둘 이뤄져 나오는 걸 지켜보다 에나파머스를 선택했다. 에나파머스는 다른 강소농보다 사람 수도 많고 품목도 다양했다. 무엇보다 회원들의 무난한 성품이 고 대표는 제일 좋았다.
"비록 에나파머스 나이는 많지 않지만 페스티벌도 한 번 했고, 매년 새로운 아이템을 내서 '선도하는 강소농 모임'이 되려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전 돈을 많이 벌어 모아야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그저 사람을 알아서 사람들끼리 나누고,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방향으로 소통하고 공유하는 것. 그거면 족하죠. 에나파머스는 젊은 새댁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두루 있다는 게 참 좋은 것 같습니다. 또래끼리 있으면 같은 얘기만 하거든요. 모쪼록 내년 정도엔 에나파머스 회원들이 피로를 풀 수 있는 황토방과 부담없이 쉴 수 있는 차실이라도 하나 꾸며볼 생각입니다. 그렇게 사람들과 어울리고 베푸는 노후를 보내고 싶네요."
'금월농장'이라는 이름은 중의적이다. '금'은 금산면의 '금'이기도 하고 과거 월아산 동굴에서 사람들이 캤다는 '금'이기도 하다. 배 자체가 황금색이어서 '금'인 것도 있다. '월'은 월아산에 뜨는 달의 절경을 뜻한다. 금산면에서 나는 황금빛 배, 월아산 언저리에 뜨는 금빛 달. 금월농장의 낭만적인 정체는 이렇게 드러났다. 그리고, 금월농장의 대표는 현재 '금' 하나를 더 캐려 준비 중이다. 바로 농산물 무인 판매다.
"농장 앞 도로변에서 무인 판매를 해본 적이 있습니다. 되더군요. 실제 산청 쪽 농부 한 명이 콘테이너 박스로 무인 판매를 하고 있기도 한데요. 저는 더 업그레이드 된 시스템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갖다 대면 문이 열리고 물건이 떨어지면 채워 넣으라는 신호가 오도록 하며, 소비자 문의사항이 있으면 콜 버튼을 눌러 판매자와 직접 통화해 A/S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90% 정도 실현 가능한 시스템으로, 제가 현실화 시켜볼 생각입니다."
김성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