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대의 단성소] 진주시 아파트 방화살인, 정말 막을 수 없었나?
[김성대의 단성소] 진주시 아파트 방화살인, 정말 막을 수 없었나?
  • 김성대 기자
  • 승인 2019.04.19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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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진주시 충무공동 한일병원장례식장에 마련됐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대한민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진주 가좌동 아파트 방화살인 사건은 어쩔 수 없이 당해야만 했던 ‘천재’가 아닌 막을 수도 있었을 ‘인재’였다는 점에서 더 참담하다. 속속 드러나고 있는 정황상 이번 범행은 이전부터 예고돼왔고 또 계획적이었다는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은 얘기하고 있다. 범인의 범행은 특정 증상이 빚어낸 ‘우발’이 아닌 이성적으로 ‘계획’된 것이었다는 얘기다.

범인 A씨(42)는 4월 17일 새벽 자신의 방에 불을 질렀다. 그는 화재경보에 놀라 뛰쳐나오는 주민들을 2층 계단에서 기다리다 흉기를 휘둘렀다. 불과 10분여 사이 일어난 이 일로 5명이 사망했고 15명이 중경상을 입었거나 병원에 이송됐다. 사망자들은 74세 남성을 비롯해 대부분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노인, 여성, 아이들이었다. 그 중엔 18세 최모 양과 11세 금모 양 등 세상을 등지기엔 너무 이른 십대들도 있었다. 특히 금모 양의 경우 일가족 2명이 사망하는 청천벽력의 현실을 맞아 더 큰 안타까움을 샀다.

전문가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A씨의 ‘정신질환’을 의심한다. A씨는 2층 계단에서 마구잡이로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제압할 수 있는 사람들을 ‘취사선택’해 살해했다. 가령 덩치 큰 성인 남성은 노려만 봤을 뿐 공격하지 않았다는 한 주민의 증언은 범인 A씨가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있었다는 증거다. 조현병을 핑계로 법정에서 심신미약을 주장하기엔 그의 범행은 너무 치밀했다.

A씨는 뜬금없이 범행을 저지른 게 아니다. 그는 평소 자신의 범행을 조금씩 예고해왔다. A씨는 2018년 12월부터 지난 1월까지 경남의 모 기관에서 근무했다. 하지만 그는 두 달 동안 10일 여만 출근했고, 불성실한 근태를 이유로 사측은 40만원을 A씨에게 건넨 뒤 퇴사 조치했다. 같은 달 중순 A씨는 자신이 다녔던 회사로 찾아가 여직원을 폭행, 벌금 300만원 형을 받는다.

뿐만이 아니다. A씨는 지난해 9월 이번 사건이 터진 아파트 5층 승강기에 오물을 투척했는가 하면, 지난 1월엔 주민 2명을 폭행하고 그 다음 달엔 피해자 최모 양(18·사망)의 집에도 오물을 투척했다. A씨는 학교에서 돌아온 최모 양을 두 차례 위협하기도 했는데, 주민들은 자비로 CCTV까지 설치해 확보한 증거를 들고 경찰에 민원을 넣었지만 경찰은 ‘도저히 피의자와 대화가 안 된다’ ‘신고자가 사는 아파트는 도대체 어떤 아파트이기에 그런 사람이 사느냐’는 등 소극적인 대처를 해 이번 범행의 싹을 키웠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의 지적대로 오물 투척은 손괴죄(재물에 대한 소유권의 이용가치를 침해하는 것)에 해당해 협박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었고, 때문에 경찰의 좀 더 적극적인 조치가 있었어야 했음에도 경찰은 그러질 못했다. 결국 A씨가 보여 온 범행 징조들은 그런 식으로 켜켜이 방치됐고 급기야 4월 17일 새벽, 황망하고 끔찍한 사건은 현실로 드러나고 말았다.

피해자 최모 양의 오빠로 보이는 최모 씨는 최근 ‘진주 방화 및 살인 범죄자에 대해서 무관용 원칙이 필요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청원을 올렸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그 전부터 몇 번이나 집에 찾아오고 오물 뿌리고, 그래서 제 동생 미행하고, 신고해도 경찰들이 와서 한다는 소리가 ‘피해본 거 있냐’ 그랬다고 한다. 그래서 CCTV를 달았는데 그럼에도 (경찰은)처리해준 거 하나도 없고, 이제는 기사까지 못나가게 막고 있다고 한다”며 울분을 토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조현병과 범죄 연관성이 입증된 경우는 극히 드물다. 지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51만 건이 넘는 주요 형사재판 중 조현병에 의한 범죄는 단 76건(0.01%)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실제 전문가들은 A씨가 과거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고 해서 섣불리 이번 범죄와 조현병을 연관 짓는 건 잘못 됐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조현병 환자들은 대부분 타인이 자신을 해칠지 모르기 때문에 생활상 제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게 저들의 설명이다. 이번 사건의 원인이 조현병이라 속단하다는 건 때문에 사건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

18일 진주경찰서는 현주건조물방화, 살인 혐의로 A씨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A씨가 범행 동기에 관해 횡설수설해 프로파일러 3명을 투입했다고 한다. 진실이 무엇이고 형량이 어떻게 결정나든 아무 죄없는 사람들의 너무 많은 희생이 있었다. 이번 사건, 정말 막을 순 없었을까? 3일 전 5주기를 맞은 세월호 사건이 문득 떠오른다.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김성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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