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대의 단성소] 서부시장에서 본 마르크스의 유령
[김성대의 단성소] 서부시장에서 본 마르크스의 유령
  • 김성대 편집장
  • 승인 2019.05.22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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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서부시장 재건축 관련 취재를 하며 기자는 우리 생활에서 꿈틀거리는 자본주의라는 괴물을 보았다. 자기들 이익에 관한 논리를 앞세워 계산기만 두드리는 '가진 자'들과, 벌어진 일에 대한 대응전략은 고사하고 자신들에게 닥친 상황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없는 자’들의 안타까운 내분. 힘없는 자의 적은 힘없는 자라는 슬픈 자조는 이번 서부시장 보상대책 문제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이 일은 재건축 개발과 관련해 세입자를 내보내야 하는 점포주 법인체 ㈜진주서부시장상사(이하 ‘상사’)와 점포에서 나가야 하는 세입자 대책위원회(이하 ‘위원회’) 사이 갈등 골이 깊어지면서 불거졌다. 세입자 중 한 사람인 A씨는 청와대 홈페이지에 “세입자를 몰아내려는 상사의 반강압적인 행태”라는 글까지 올리며 자신들의 입장을 세상에 알렸다. 적어도 이 일은 겉으로 봤을 땐 상사와 세입자간 갈등으로 보였다.

하지만 기자가 취재를 한 결과 갈등의 본질은 다른 데 있었다. 바로 세입자들 간 내분이었다. 내분의 원인 제공자는 다름 아닌 위원회 대표를 맡고 있던 정모 씨. A씨와 몇몇 상인들에 따르면 정모 씨는 상사 측과 협상 과정에서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거나 이견이 있는 사람들에겐 “나가서 따로 하라!”며 윽박지르거나 화를 냈다고 한다. 그는 상사 측과 협상하는 자리에 동석 하겠다는 A씨에게 술잔을 집어던지는 등 분노를 표하기도 했고, A씨 모친에겐 욕설을 퍼붓기까지 했다. 기자 역시 취재 과정에서 그로부터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반협박을 감당해야 했다. 힘을 합해 대처해도 모자랄 판에 한 개인, 그것도 집단을 대표하는 사람이 독단과 아집을 꺾지 않아 재건축과 관련된 서부시장 상인들은 깊은 모멸감과 상처를 떠안고 말았다. 

서부시장 점포에서 20년 이상 장사를 해온 B씨는 기자에게 “상사 사무실에 올라가 따졌다. 상근 중인 직원은 저보고 앉으라는 말도 없고, 아예 나가라고 하더라. 억울했다. ‘주주가 있으니 당신들(상사)이 있는 것 아니냐! 20여 평 되는 내 가게 보상금 내놔라. 안 주면 죽어서 나가겠다!’ 말하고 나왔다”고 했다. 돈이 죽음을 부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기자는 치를 떨었고, 죽음으로써 돈을 받아내겠다는 B씨의 으름장에 기자의 간은 쪼그라들었다.

<자본>을 쓴 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비판하지 않았다. 되레 그는 돈이라는 심줄을 장착한 자본주의의 근력을 경외했다. 그가 공격한 지점은 돈 앞에서 차별받거나 돈으로 타인을 차별하는 인간, 돈 앞에서 무기력한 나머지 돈에 지배되는 인간이었다. 돈은 죄가 없다. 죄는 돈 때문에 비인간적인 인간의 몫이다. 서부시장 취재 현장에서 나는 마르크스의 유령을 보았다. 돈이 사람 위에 군림하고 사람들은 돈 앞에서 분열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돈으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됐다.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서부시장 세입자들은 이제 자신들의 적이 누구인지조차 잊은 듯 보였다.

김성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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