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순의 커피인문학] 커피를 언급한 최초 기록
[박영순의 커피인문학] 커피를 언급한 최초 기록
  • 박영순
  • 승인 2019.06.18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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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기원과 관련한 많은 이야기들이 구전에 의한 것이다. 할머니의 옛날이야기처럼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종종 받는데, 커피를 언급한 최초 기록은 기원후 900년쯤 페르시아에서 나온다.

라제스는 "커피는 뜨거우면서도 몸을 마르게 하지만 위장에 매우 유익하다"고 적었다. 그는 커피를 번컴(Bunchum)이라 불렀다. 라제스는 <천연두와 홍역에 관한 고찰>이라는 책을 집필했는데, 그는 당시 의학 수준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로 유발되는 천연두와 홍역을 명확하게 구별한 위대한 의학자였다. 제자들이 스승의 자료를 모아 <의학보고>라는 일종의 의학백과사전을 발간했고, 그 안에 커피를 위장 치료에 처방한 기록이 남은 것이다.

라제스가 세상을 떠난 지 반세기가 지날 즈음 이슬람권에서 이븐 시나라는 걸출한 의학자 겸 철학자가 나온다. 그가 쓴 <의학전범>은 당시 알려진 의학정보를 집대성한 것으로 17세기까지 유럽 의학의 기본서로 사용됐다. 이븐 시나는 커피의 의학적 성질과 활용에 대해 서술했는데, 그 역시 커피를 '번컴'이라고 적었다. 그는 커피 생두에 대해 "레몬 같은 밝은 빛을 띠는 생두가 향기가 좋고 품질이 좋은 것이다. 흰빛이 돌며 탁한 것은 좋지 않다. 커피는 몸을 뜨겁게 하고 건조하게 만든다. 커피를 마시면 몸이 차가워진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커피는 피부를 맑게 하고 몸 속 습한 기운을 없애 주며 신체에 좋은 향기를 제공한다"는 기록을 남겼다.

타지키스탄 지폐에 그려진 이븐 시나의 초상화. 페르시아 제국의 철학자이자 의학자로서, 당시 의학정보를 5권으로 집대성한 <의학 전범>은 17세기에 이르기까지 유럽 의학의 기본서로 사용됐다.

라제스와 이븐 시나는 모두 커피를 번컴이라고 썼다. 지구상에서 커피를 번컴이라 부르는 나라는 에티오피아 밖에 없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지역에 따라 약간 차이가 나지만 지금도 커피를 번컴, 분나(Bunna), 부나(Buna), 분(Bunn)이라 부른다.

커피라는 용어는 에티오피아의 지명 카파(Kappa)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아랍어 카웨(Kaweh)에서 비롯됐다는 2가지 견해가 있다. 카웨는 '힘을 속게 하는'이란 뜻이 있어 커피를 마시면 나타나는 효과를 경험하고 무슬림들이 붙인 것으로 전해진다.

아랍어 중에는 카웨와 비슷하게 들리는 '카와(qahwa)'라는 말이 있는데, 술(wine)을 뜻한다. 또 힘이나 강력함을 뜻하는 '쿠와(quwwa)'란 단어는 기운을 돋게 한다는 의미에서 커피를 연상케 한다. 이런 개념의 혼란 속에서 유럽인들은 커피를 '아라비아의 와인'이라 불렀고, 터키에서 커피 팔던 장소를 일컫는 '카베'(kahve)가 유럽에 건너가서는 카페(cafe)로 불렸다. '커피(Coffee)'는 영국에 커피가 전해진 1650년경 커피애호가이던 헨리 블런트 경이 처음으로 부르고 쓴 말이다.

오로모족을 통해 전해지는 전통 커피추출법 '부나 칼라'. 동물기름과 말린 커피체리를 섞어 끓이다시피 볶는다.

에티오피아가 커피의 시원지라면 지금도 커피를 마시던 초창기 모습이 남아있지 않을까. 에티오피아의 오로모족은 무형문화재처럼 커피 문화의 전통을 잇고 있다.

에티오피아엔 소를 키우며 사는 오로모(Oromo)족이 있었다. '힘이 있는 자'를 뜻하는데 오로모족은 에티오피아 인구의 35% 정도를 차지하는 최다 민족이다. 갈라(Galla)족이라고도 불렸는데, 갈라는 '미지의 사람들'이라는 부정적인 느낌을 줘 점차 사라졌다. 에티오피아의 수도인 아디스아바바가 오로미아 주의 법률상 주도이다.

유목민인 오로모족은 자주 이동해야 했기에 간편하게 지니고 다니며 먹을 수 있는 것을 잘 만들었다. 그러던 중 체리처럼 빨간 열매를 씹으면 힘이 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열매를 통째로 먹다가 그것의 에너지가 씨앗에 농축되어 있음을 깨달은 오로모족은 오랜 세월 열매를 동물성 기름과 섞어 볶아 당구공처럼 뭉쳐 갖고 다니며 힘을 써야 할 때 꺼내 먹었다.

이 방법은 여러 면에서 유용했다. 사냥을 하거나 새 주거지를 찾으려 산속을 헤맬 때 '커피 당구공'은 비상식량으로 제격이었다. 입에 쏙 넣으면 곧 에너지가 불끈 솟아오르고 집중력도 높아지는 등 커피의 놀라운 능력은 다른 부족과의 전투를 앞두었을 때 더욱 요긴했다. 칼디 시절로 언급되는 먼 옛날, 에티오피아 부족들은 대부분 유목민이었다. 먹을 것이 떨어지면 주거지를 옮겨야 했기에 부족 간 마찰이 잦았고 크고 작은 전투는 부족의 생존을 위해선 불가피한 측면이 많았다.

목숨을 건 전투를 앞두고 각 부족은 커피의 각성효과를 높이는 방법을 찾기에 골몰했다. 전투에 앞서 커피를 마시는 성스러운 의식도 생겨났다. 의식은 커피 마시는 방법을 더욱 발전시켰다. 그들은 그 효과가 씨에 농축되어 있음을 깨닫고 씨만 골라내 볶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피어나는 기분 좋은 향기는 승리에 대한 자신감을 키워주었고, 톡톡 터지는 팝핑(Popping) 소리는 그들에게 승리를 약속하는 '신의 응답'과도 같았다.

커피 열매를 통째로 햇볕에 말리기 위해 아래 위로 통풍이 잘 되는 '아프리카 베드'에 열매를 펼치고 있는 아프리카 재배자들.

오로모족은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며 '커피당구공 문화'를 퍼트렸다. 그러다 주거지가 점차 고지대로 옮겨지면서 즐겨 먹던 커피 향미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커피나무는 해발고도가 높을수록 향미가 좋아진다. 오로모족이 더 좋은 커피 열매를 구하게 되면서 커피를 즐기는 문화는 급속히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지금도 오로모족의 주거지에서는 말린 커피 열매를 버터처럼 보이는 동물성 기름을 녹인 그릇에 넣어 함께 끓이다시피 해 내놓는 커피가 관광상품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 이 방식은 커피 열매의 과육을 벗기거나 로스팅을 거치지 않고 말린 채로 동물성 기름과 볶아낸다는 점(사실 동물성 기름을 많이 넣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처럼 보인다)에서, 흔히 에티오피아의 전통 추출법이라고 말하는 '에티오피아 커피 세레머니'와는 다르다. 에티오피아 커피 세리머니는 '분나 마프라트' 또는 '카리오몬(Kariomon)'이라 불리는데, 커피의 씨앗만을 골라내 볶은 뒤 물에 끓이면서 카르다몬이나 정향 등 향신료를 넣어 음료로 마시는 방식이다. 반면 오로모족의 커피 세레머니는 '부나 칼라(Buna Qalaa)'라는 용어로 따로 부른다. 이 말은 '커피를 살육한다'는 뜻이다. 이들에게는 사육제(Carnival)인 셈이다. 의식은 오로모 족의 여인들이 맡는데, 부나 칼라를 하면서 읊조리듯 계속 주문을 외운다. "커피 향기를 신에게 드리니 부족 모두에게 건강과 행복을 내려 달라"는 간곡한 기도이다. 오로모 족은 전통적으로 커피나무는 신의 눈물에서 생겨났다 보고 특별하다 믿고 있다. 오로모족에게서 시작된 '커피 의식'은 시간이 흐르면서 귀한 손님을 대접하는 '분나 마프라트(Bunna Maffrate)'라는 관습으로 뿌리를 내린 것으로 보인다.

글/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CCA)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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