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순의 커피인문학 ③] 시바의 여왕, 커피 향미로 솔로몬 왕을 홀리다?
[박영순의 커피인문학 ③] 시바의 여왕, 커피 향미로 솔로몬 왕을 홀리다?
  • 박영순
  • 승인 2019.04.15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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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기원과 관련해 '시바의 여왕'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다. 기원전 10세기경 활약한 시바의 여왕에 대해 구약성서와 코란이 일부 언급하고 있다.

구약성서의 <열왕기 상>에 시바 여왕이 솔로몬왕의 명성을 듣고 그를 시험해보려고 예루살렘을 찾아간 대목이 나온다. 솔로몬왕의 재위 기간이 기원전 961~922년이므로 시바 여왕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구약성서에 따르면, 시바의 여왕은 솔로몬왕의 지혜에 탄복하고 황금과 보석, 몰약, 향유 등 값진 물건을 바쳤다.

이를 둘러싸고 기록은 없지만 몇몇 흥미를 끄는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그 중 하나를 소개하면 이렇다. 시바 여왕을 만난 솔로몬왕은 미모와 현명함에 매료돼 묘책을 쓴다. 성대한 파티를 열어주고 시바 여왕에게 “나의 허락 없이 음식을 먹는다면 나의 요구에 응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시바의 여왕은 기꺼이 수용했지만, 그날 밤 잠을 자던 중 너무나 목이 말라 물을 마시게 된다. 솔로몬왕이 파티 음식에 향신료를 많이 넣도록 미리 꾸민 탓이다. 시바 여왕이 약속을 깨고 허락도 없이 물을 마신 것을 빌미로 솔로몬왕은 그녀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을 허락 받는다. 이날 밤 둘 사이에 남자 아이가 잉태되는데, 그가 훗날 에티오피아의 초대 황제에 오르는 메넬리크 1세이다. 솔로몬왕과 시바 여왕의 러브스토리가 곧 에티오피아의 건국신화가 되는 것이다.

솔로몬왕은 시바 여왕의 미모와 현명함에 매료되어 파티 음식에 향신료를 넣도록 책략을 부린다. 그 둘 사이에 태어난 이가 에티오피아의 초대 황제인 메넬리크 1세다. 이탈리아 화가 지오바니 데민(1789~1859)이 그린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

그렇다면, 커피는 이 러브스토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솔로몬왕이 꾀를 내었다는 설 못지않게 회자되는 게 또 있다. 시바 여왕이 육감적인 커피 향과 뇌색적인 커피의 맛으로 솔로몬왕을 유혹했다는 이야기다. 솔로몬왕이 세력을 뻗어 아라비아 남단과 북동 아프리카 일대에 형성돼 있던 시바 왕국을 침략하려고 하자 시바 여왕이 온갖 귀한 물건을 직접 솔로몬왕에게 가지고 가 바쳤다는 내용이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그녀가 솔로몬왕에게 바친 금, 유향과 몰약 등의 향료, 보석 등 진상품들을 보고 시바 여왕이 오늘날 예멘과 에티오피아 지역을 지배했음을 알아냈다.  시바 여왕이 솔로몬에게 바친 물품이 얼마나 많았던지 첫 낙타가 떠나고 마지막 낙타가 떠날 때까지 3일이 걸렸다고 전해진다.

이 이야기에서는 솔로몬왕을 달래기 위해 시바 여왕이 계책을 꾸민다. 커피의 매혹적인 향미를 최음제로 삼아 솔로몬왕을 유혹해 아들을 가졌다는 것이 골자이다. 이를 근거로 초콜릿이나 사향보다 커피를 인류 최초의 최음제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최음제란 한마디로 남녀의 생식기능에 작용해 성적욕구를 자극하는 약이다. ‘아프로디지액스(Aphrodisiacs)’라는 영어표기는 그리스 신화의 아프로디테(Aphrodite)에서 따왔다. 여성의 성적 아름다움과 사랑의 욕망을 관장하는 여신으로, 로마 신화의 비너스와 동일시된다. 제우스의 아버지인 크로노스가 태초의 신 우라노스의 남근을 잘라 바다에 버렸는데, 그 때 정액이 바닷물과 섞이면서 생긴 거품 속에서 아프로디테가 태어났다고 한다. 최음제를 뜻하는 용어가 될만한 기이한 사연이 아닐 수 없다.

잘 익은 커피 열매는 크랜베리나 체리와 비슷하고 단맛도 좋다. 그러나 그 속에는 인류의 정신과 신체를 각성시키는 카페인이 들어 있다.

커피의 무엇이 최음효과를 유발하는 것일까? 이 문제는 다른 최음제들의 작용기작을 살펴봄으로써 풀 수 있다. 최음제는 ‘강정제’라고도 불린다. 이탈리아의 도니체티가 쓴 희가극 ‘사랑의 묘약’에서 약장수 둘카마라가 순진한 청년 네모리노에게 여성의 마음을 사로 잡을 수 있다고 속여 판 것이 최음제이기도 하다.

종종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메스암페타민이 바로 최음제이다. 도쿄대학 나가요시 교수가 1888년 천식약으로 사용하기 위해 마황(麻黃)에서 에페드린을 추출하면서 발견했다. 일본의 한 제약회사가 졸음을 쫓고 피로를 없애는 효과를 빗대 ‘노동을 사랑한다’는 뜻의 그리스어 '필로포노스(Philoponos)’에서 이름을 따왔다. 약품명을 ‘필로폰’이라고 지었는데 일본 발음으로 ‘히로뽕’이라 불렀다. 메스암페타민은 중추신경을 강력하게 자극하는 각성효과와 성에 대한 두려움과 수치심을 없애주는 최음효과를 발휘한다. 1960년대 가정상비약으로 재배되기도 했던 양귀비의 즙과 이를 가공한 아편, 그리고 이를 농축한 ‘모르핀’도 대뇌로 이어지는 신경전달에 관여하면서 최음효과를 낸다.

커피 열매를 처음으로 수확한 사람은 언제 어디에 살던 사람일까? 커피의 시원지를 추적하는 것은 인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의미 있는 작업이다. 유사랑 화백이 에스프레소를 물감으로 삼아 그린 커피 그림.

카페인도 이들 무시무시한 마약들과 비슷하게 신경전달에 개입한다. 그럼에도 커피가 환각과 중독을 유발하는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되지 않는 것은 이른바 ‘불법과 합법의 담장을 타는 기막힌 성질’ 때문이다. 카페인은 피곤할 때 대뇌가 신체를 잠재우려고 분비하는 아데노신이라는 물질과 화학구조가 매우 비슷하다. 아데노신은 신경전달물질로서, 동공을 풀리게 하고 심장박동수를 줄이는 등 방식으로 인체를 차분하게 만든다. 그런데 커피를 마셔 카페인의 체내 농도가 높아지면 아데노신이 작용해야 할 곳에 모양이 비슷하게 생긴 카페인이 차고 앉아 신호를 거꾸로 보내 몸을 각성하도록 바꾸는 것이다. 그러나 카페인의 이런 작용은 3~4시간이면 카페인의 절반 가량이 체외로 배출됨으로써 사라진다. 게다가 카페인은 중독현상 뿐 아니라 금단현상마저 없는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따라서 하루 섭취량만 지킨다면 되레 심혈관계 개선을 촉진하는 약으로도 쓰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카페인을 ‘합법적인 마약’이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 회장.

솔로몬왕은 유대교를, 시바의 여왕은 다신교를 숭상했지만 두 사람은 모두 셈족이었다. 셈족끼리 낳은 자식은 마땅히 셈족이므로 이스라엘과 시바(예멘), 에티오피아는 같은 핏줄인 것이다. 메넬리크가 황제에 오른 과정을 보면 에티오피아의 초대 종교가 유대교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2세 청년으로 성장한 메넬리크는 예루살렘을 찾아가 히브리 율법과 유대신앙을 공부하고 유대교식 세례를 받는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당시 메넬리크가왕위를 물려주겠다는 솔로몬왕의 뜻을 정중히 거절하고 에티오피아의 악숨(Axum)으로 돌아와 솔로몬왕의 혈통을 이어가는 왕국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솔로몬왕은 메넬리크가 시바로 돌아갈 때 성직자와 학자, 기술자 등 1만 2천명 유대인을 동행하게 했으며, 모세가 하늘에서 받은 십계명을 보관한 법궤를 준 것으로 전해진다. 이 법궤는 수도인 아디스아바바에서 960킬로미터가량 떨어진 악숨의 ‘성 마리아 시온교회’에 안치되어 보관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법궤를 실제로 보고 확인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커피의 고향 에티오피아는 이처럼 시바 왕국에서 나왔다. 시바가 에티오피아를 품고 있던 것이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무라노 수도원에서 1459년 제작한 세계지도에는 시바의 도시들이 에티오피아에도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 홍해를 사이에 두고 양편으로 나뉘어져 있는 에티오피아와 예멘 지역 모두 시바 왕국의 영토였다. 이 점에서 커피의 고향을 에티오피아라고 하면서도 한때 예멘이라는 주장이 거세게 제기됐던 일을 이해할 만하다.

글/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CCA)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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