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순의 커피인문학] 태초에 커피가 있었다
[박영순의 커피인문학] 태초에 커피가 있었다
  • 박영순
  • 승인 2019.01.13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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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가 1509년 그린 '타락과 낙원에서의 추방(The Fall and Expulsion from Paradise)'을 보면 선악과가 표현되지 못하고 있다. 존 밀턴이 17세기 실락원을 쓴 뒤에야 선악과는 사과로 묘사됐다.
미켈란젤로가 1509년 그린 '타락과 낙원에서의 추방(The Fall and Expulsion from Paradise)'을 보면 선악과가 표현되지 못하고 있다. 존 밀턴이 17세기 실락원을 쓴 뒤에야 선악과는 사과로 묘사됐다.

한국인에게 커피는 어느새 물처럼 즐기는 음료가 됐다. 지난해 말 전국 19세 이상 70세 미만의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한국인들은 일주일에 커피 9.3잔을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일 한 잔 이상을, 어떤 분들은 물보다 자주 찾는다고 하는 커피. 우리는 과연 커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커피가 주는 행복은 맛과 향 뿐만이 아니다. 커피는 뛰어난 향미만큼이나 풍성한 이야기를 피워내는 묘한 마력을 지녔다.

커피는 일단 마시기 시작하면 후퇴란 모른다.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나라에서 커피의 소비량이 다시 줄어든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인류를 빠져들게 만드는 커피. 이러한 커피의 유혹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우리는 머나먼 과거로 시간 여행을 가야 한다. 인류가 처음으로 커피를 만난 시점으로 가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커피열매를 따 단맛을 체크하고 있는 필자. 커피는 씨앗 뿐만 아니라 열매의 껍질과 씨앗을 감싼 점액질에도 상대적으로 미약하지만 카페인이 들어 있어 병충해의 침입에 저항력을 갖는다.
커피열매를 따 단맛을 체크하고 있는 필자. 커피는 씨앗 뿐만 아니라 열매의 껍질과 씨앗을 감싼 점액질에도 상대적으로 미약하지만 카페인이 들어 있어 병충해의 침입에 저항력을 갖는다.

커피의 기원과 관련해 커피애호가들 사이에서는 대체로 4가지 이야기가 회자된다. 에티오피아 전사의 전설, 염소지기 칼디의 전설, 이슬람학자 셰이크 오마르의 전설, 그리고 마호메트의 전설이다. 커피전문가가 되겠다고 하면 실기와 함께 이론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는데, 커피의 기원설은 사실 커피애호가라면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할 내용으로 통한다. 커피가 어디에서 온 것인가를 아는 것은 마땅히 커피 탐구의 출발점이 돼야 할 것이다.

꽤 오랫동안 대표적인 것으로 꼽히던 이들 4대 이야기와 함께 비교적 최근 거론되는 기원설이 있다. 바로 ‘에덴동산의 기원설’과 ‘시바의 여왕 기원설’이다.

에티오피아, 예멘, 콜롬비아,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은 유명한 커피 산지들이다. 그런데 이들 국가에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구약성서를 믿는 나라들이라는 점이다. 로마가톨릭, 개신교, 그리스 정교, 이슬람교는 공통적으로 구약성서를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따르는 종교들이다. 산지에서 재배자들과 커피의 유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종종 흥미로운 말이 나오는데, 그 중 하나가 ‘에덴동산의 커피나무 이야기’다. 요지는 이렇다.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할 때 세상 만물이 모두 만들어졌으므로, 커피나무도 태초부터 있었다”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하느님이 태초에 창조한 것이며 그것은 모두 에덴동산에 있었으니, 당연히 커피나무도 그곳에 있었어야 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커피 씨앗에서 잠들어 있던 생명이 움터 나오기 시작하는 장면이다.
커피 씨앗에서 잠들어 있던 생명이 움터 나오기 시작하는 장면이다.

그렇다면 커피나무는 에덴동산의 어디에 있었을까? 창세기가 적혀 있는 구약성서 어디에도 커피나무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럼에도 에덴동산 커피기원설이 거론되는 이유는 ‘선악과’ 때문이다.

창세기에서 에덴동산에 관한 부분은 2장 8절과 9절에 나온다.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더라”는 내용이다. 

여기서 생명나무의 열매는 아담과 이브가 뱀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따 먹음에 따라 먹을 수 없게 된다.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인데,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가 먹지 못하게 되면서 인류는 영원히 살 수 없고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됐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커피와 관련해 우리의 관심사는 생명나무 옆에 심겨져 있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Tree of Knowledge of Good and Evil)’이다.

창세기 2장 16절과 17절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고 적혀 있다.

커피의 기원지인 에티오피아에서는 커피에 ‘테나 아담(Tena Adam)’으로 불리는 허브를 커피에 넣어 마신다. ‘테나’는 ‘건강한’을 의미한다. 건강한 아담을 뜻하는 이 식물은 커피의 향미에 생동감을 불어 넣어준다. 커피와 에덴동산의 아담을 연결 짓는 단서일 수 있다.
커피의 기원지인 에티오피아에서는 커피에 ‘테나 아담(Tena Adam)’으로 불리는 허브를 커피에 넣어 마신다. ‘테나’는 ‘건강한’을 의미한다. 건강한 아담을 뜻하는 이 식물은 커피의 향미에 생동감을 불어 넣어준다. 커피와 에덴동산의 아담을 연결 짓는 단서일 수 있다.

성경은 하나님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주신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맹목적인 존재가 아닌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결정할 수 있는 책임 있는 존재로 만들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가르친다.

‘선악과’ 또는 ‘지식의 나무’로 일컬어지는 이 나무의 열매를 먹고 아담과 이브는 좋은 것과 나쁜 것, 옳은 것과 그른 것을 알게 된다. 정신적으로 각성을 하는 것이다. 나무의 열매 가운데 인간이 먹음으로 해서 ‘깨어 정신을 차리게 하는’ 각성효과를 유발하는 열매는 커피, 카카오, 과라나 나무 등 몇 종류가 되지 않는다. 적어도 사과는 각성효과를 유발하지 않는다.  

‘에덴동산 기원설’의 핵심은 이브와 아담이 뱀의 유혹에 빠져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원인이 된 선악과가 바로 커피나무였다는 주장인 것이다.

구약성서의 창세기는 기원전 1446년~1406년 모세에 의해 쓰인 것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창세기는 ‘모세 5경(Five books of Moses)의 제1경’이라고도 불리는데, 모세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The Tree of Knowledge of Good and Evil)’로, 그 열매를 ‘선악과’로 표기했을 뿐이다.

선악과가 ‘사과’라고 구체적으로 표기된 것은 창세기가 쓰인 지 3,000년이나 지난 뒤였다. 영국의 시인이자 사상가인 존 밀턴(John Milton)이 1667년 펴낸 대서사시 ‘실락원(Paradise Lost)’에서 창세기의 선악과는 비로소 ‘사과’라고 명기된다. 밀턴 이전까지 선악과는 실체를 알 수 없는 모호한 나무였다. 그가 선악과를 사과라고 적은 이후 수많은 예술가들이 아담과 이브를 다루는 작품에서 선악과를 사과로 그렸다.

글/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CCA)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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