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순의 커피인문학②] 커피의 기원을 따라 에덴동산에서 중동까지
[박영순의 커피인문학②] 커피의 기원을 따라 에덴동산에서 중동까지
  • 박영순
  • 승인 2019.02.25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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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커피를 언제부터 먹었는지에 대한 가장 오래된 이야기는 '에덴동산의 기원설'이다. 모세가 기원전 1440년대에 적은 구약성서의 창세기를 기반으로 하는 내용이다. 성경이 아니라 기록과 유물, 유적이 뒷받침되는 역사 속에서도 커피의 기원을 추적할 수 있다.

커피의 기원과 관련해 자주 등장하는 나라가 에티오피아, 예멘, 사우디아라비아 등이다. 범위를 확장해 커피를 볶아 먹기 시작하고 인류 최초의 카페가 등장하는 지역까지 고려하면 커피의 무대는 북동부 아프리카와 아라비아 반도, 서남아시아를 아우르게 된다. 다름 아닌 중동 (Middle East) 이다. 따라서 “커피는 중동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커피열매와 씨앗. 유사랑 화백이 에스프레소로 그린 커피그림.
커피열매와 씨앗. 유사랑 화백이 에스프레소로 그린 커피그림.

중동은 유럽인들이 자신들 입장에서 동쪽을 가리켰던 용어로, 서아시아와 아라비아 반도 뿐 아니라 아프리카 북동부 지역까지 일컫는다. 고대 문명의 발상지이자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3대 유일신교가 탄생한 지역도 중동인데, 사실 이들 나라 사람들의 핏줄은 하나다. 노아의 아들, 셈을 공동 조상으로 하고 있다. 홍해를 두고 대륙이 나뉜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와 서남 아시아의 예멘은 3천 년 전에는 한 왕국이었다.

중동은 또한 에덴동산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이기도 하다. 커피의 기원설은 에덴동산과 어떻게든 연결이 돼 있다. 성경의 기록을 토대로 에덴동산을 찾는 노력이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다. ‘에덴’은 수메르어로 ‘초원’ 또는 ‘평원’을 뜻하는 ‘에딘’에서 나왔다. 에덴동산을 구름이 걸린 고산지대로 생각하는 것은 ‘진실’과 거리가 멀다. 강이 흘렀다는 대목에서 힌트를 얻어야 한다.

창세기에 따르면 에덴동산엔 4개의 강이 흘렀다. 창세기 2장 10절은 이렇게 시작된다.

“에덴에서 강 하나가 흘러나와 그 동산을 적신 다음 네 줄기로 갈라졌다. 첫째 강줄기의 이름은 ‘비손’이라 하는데, 은과 금이 나는 ‘하윌라’ 땅을 돌아 흐르고 있었다. 둘째 강줄기의 이름은 ‘기혼’이라 하는데, ‘구스 온’ 땅을 돌아 흐르고 있었다. 셋째 강줄기의 이름은 ‘티그리스’라 하는데, 아시리아 동쪽으로 흐르고 있었고, 넷째 강줄기의 이름은 ‘유프라테스’라고 하였다.”

 

영국-캐나다-미국의 발굴팀은 시바 여왕의 신전 등을 발굴해서 실존한 역사임을 입증했다. 마리브는 현재 예멘의 수도인 사나에서 동쪽으로 100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 예멘의 수도인 사나의 전경. 출처: 커피인문학(인물과 사상사)
영국-캐나다-미국의 발굴팀은 시바 여왕의 신전 등을 발굴해서 실존한 역사임을 입증했다. 마리브는 현재 예멘의 수도인 사나에서 동쪽으로 100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 예멘의 수도인 사나의 전경. 출처: 커피인문학(인물과 사상사)

에덴의 강물은 일단 땅속으로 들어간 다음 다시 지상에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상류의 위치를 알아내기 힘들다. 에덴동산의 가장 강력한 후보지는 페르시아만 깊숙한 곳에 위치한 쿠웨이트나 이라크 남부지역이다. 팔레스타인에서 볼 때 동쪽에 있는 바빌로니아 평원도 유력 후보지이다. 에덴동산의 범위를 넓게 보는 학자들은 비손강을 갠지스강으로 해석해 인도까지 포함시킨다. 서쪽으로는 기혼강을 나일강으로 보고 에티오피아를 에덴동산에 집어 넣기도 한다.

이를 토대로 하나의 가설을 세울 수 있다.

“에덴동산에는 모든 생명체가 살고 있었다. 커피나무도 생명체이므로 에덴동산에 자라고 있었다. 에덴동산은 에티오피아, 예멘, 사우디아라비아를 아우르는 중동지역이다. 고로, 커피는 에티오피아 또는 예멘 또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유래했다.”

예멘의 기원설을 추적하면 아랍(Arab)이 등장한다. 아랍은 페르시아만, 인도양, 아덴만, 홍해에 둘러싸여 있는 아시아 서남부를 일컫는다. 아라비아반도가 곧 아랍을 의미한다. 고대 페르시아어에 ‘아라비아(Arabya)’라는 말이 있는데, 메소포타미아의 서쪽과 남쪽 땅을 가리키는 지명이다. 4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유프라테스강 너머 서쪽에 거주하는 민족’을 아랍인이라고 불렀다.

메소포타미아는 기원전 5000년경에 문자를 사용하고 기록을 남겨 ‘역사시대’를 열었는데, 기원전 3500년경 수메르인들이 도시를 형성했다. 수메르인들은 기원전 1000년경부터 아라비아반도의 남부, 지금의 예멘에 거대한 무리가 살고 있음을 기록으로 남겼다. 예멘지역에 살던 이들은 셈족 언어를 구사했는데, 아라비아 중북부 사막지대의 유목민들과 달리 정착생활을 하며 도시국가 성격의 왕국을 형성했다. 이 왕국이 바로 기원전 955년부터 840여 년간 부유함을 자랑하며 번영한 ‘시바(Sheba) 왕국’이다. ‘사바(Saba)’라고도 불리기도 하는 이 왕국은 여왕이 군림하고 있었다.

기원전 7~8세기에 건설된 그레이트 마리브댐은 주변 100제곱킬로미터 면적에 사는 수만 명에게 물을 공급했다. 그레이트 마리브댐 유적. 출처: 커피인문학(인물과 사상사)
기원전 7~8세기에 건설된 그레이트 마리브댐은 주변 100제곱킬로미터 면적에 사는 수만 명에게 물을 공급했다. 그레이트 마리브댐 유적. 출처: 커피인문학(인물과 사상사)

이 여왕은 구체적인 이름은 잘 알려지지 않고 ‘시바의 여왕(Queen of Sheba)’이라 불렸다. 여왕의 존재는 구약성서에 일부 언급되긴 하지만, 구전을 통해 전설처럼 전해져 왔다. 그러다가 2000년도에 영국-캐나다-미국의 발굴팀이 예멘 북부 루브 알 칼리 사막의 마리브(Marib)에서 시바 여왕의 신전 등 당시 왕국의 유적들을 발굴함으로써 실존한 역사임이 입증되었다.

마리브는 현재 예멘의 수도인 사나(Sanaa)에서 동쪽으로 100킬로미터 떨어져 있으며 해발고도 1,200미터 고지대에 조성된 고대 도시로 시바 왕국의 수도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마리브의 규모는 인근에 있는 ‘그레이트 마리브댐(Great Dam of Marib)’을 통해 추정해 볼 수 있는데, 기원전 7~8세기에 건설된 이 댐은 길이 580미터에 높이는 4미터에 달했다. 기원전 2세기경에는 높이가 14미터로 증축되어 사방 100제곱킬로미터 면적에 사는 수 만 명에게 물을 공급했다.

1959년 개봉한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Solomon and Sheba) 한 장면. 시바의 여왕을 연기한 이탈리아 배우 지나 롤로브리지다가 솔로몬 왕 앞에서 매혹적인 춤을 추는 장면.
1959년 개봉한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Solomon and Sheba) 한 장면. 시바의 여왕을 연기한 이탈리아 배우 지나 롤로브리지다가 솔로몬 왕 앞에서 매혹적인 춤을 추고 있다.

시바의 여왕이 이끈 아랍인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언어인 셈어족(Semitic languages)을 사용했다. 셈은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세 아들 중 한 명이다. 이들 중 누가 장남인지는 논란이 있지만, 셈은 일반적으로 장남으로 알려져 있다. 아랍인은 셈의 후손으로서 셈어족를 구사하는 민족들 중의 하나였다. 아라비아반도에 살던 셈족의 일부가 기원전 3500년경 북상해 나일강 인근에 살던 함족(함은 노아의 아들로 아프리카인의 조상)과 어우러지면서 이집트인이 되었다. 기원전 3000년경 아라비아사막을 횡단해 메소포타미아로 진출한 셈족의 한 분파가 바빌로니아인의 조상이 되었다. 또 기원전 2500년경 팔레스타인에서 북부 메소포타미아를 거쳐 이란 고원에 이르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Fertile Crescent)’에 정착한 셈족 가운데 아무르인, 레바논과 시리아 등 지중해 동부 연안으로 이동한 무리들은 페니키아인이 되었다. 셈족의 이동은 계속되었다. 기원전 1400년경에는 시리아 남부 지역에 거처를 정해 아람인(Aram)이 되었으며, 시리아 남부와 팔레스타인 지역에 정착한 분파는 유대인(Jewish)의 조상이 되었다.

시바의 여왕이 등장하는 시점은 기원전 1000년경이다. 그녀가 없었으면 커피의 고향인 에티오피아라는 나라도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글/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CCA)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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