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순의 커피인문학④] 커피를 먹고 회춘한 염소
[박영순의 커피인문학④] 커피를 먹고 회춘한 염소
  • 박영순
  • 승인 2019.05.06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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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기원은 구전에 따르면 창세기 에덴동산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구약 성경의 시대에 커피가 언급된 곳은 적지 않다. 다윗왕에 에비가일에게서 받은 ‘볶은 곡식’이 커피였다는 주장도 있다. 커피는 이어 3000년 전쯤 솔로몬왕과 시바 여왕의 시대를 거쳐 에티오피아 시대를 맞게 된다. 솔로몬왕과 시바의 여왕 사이에 낳은 메넬리크 1세가 에티오피아 초대 국왕이 됐으니, 그 시기는 기원전 10세기경이다.

시바 왕국은 점차 아라비아반도의 남부지역 즉, 예멘을 의미하게 된다. 반면 시바 왕국 중에서 아프리카 동북부 지역은 에티오피아로 구별해 불리게 된다. 그러다가 기원전 2세기경 예멘에 힘야르 왕국이 등장해 에티오피아와 경쟁관계에 놓이게 된다. 기원후 6세기 에티오피아가 힘야르 왕국을 공격해 지배하는데, 커피가 이때 예멘으로 전해졌다는 관측도 있다.

이 말은 에티오피아가 예멘보다 먼저 커피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에티오피아에는 어떤 커피의 기원설이 전해지고 있는 것일까? 따라서 6세기 이전을 언급하면서, 커피의 기원지가 에티오피아냐 예멘이냐를 따지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다만, 예멘은 인류가 처음으로 커피를 재배한 곳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염소가 커피열매를 먹고 힘을 내는 모습을 간파한 칼디는 목동이라기보다는 경험이 많은 노회한 염소지기였을 가능성이 높다. 유사랑 화백이 에스프레소 커피를 물감으로 사용해 그린 칼디와 커피열매를 먹는 염소.

커피의 기원설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염소지기 칼디(Kaldi)의 전설’이다. 칼디가 에티오피아 사람이었는지, 예멘 사람이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리고 그 시기도 말하는 사람에 따라 기원전 2~3세기라고도 하고 기원후 2~3세기라고도 한다. 이런 사정 때문에 칼디의 전설은 “아주 먼 옛날, 칼디라는 목동이 살고 있었다”는 식으로 시작된다.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목동 칼디는 늘 그랬던 것처럼 그날도 염소를 고산 계곡에 풀어놓고 있었다. 그런데 늙은 염소가 힘이 솟구치는 듯 활발히 움직이며 젊은 염소들을 제압하는 게 보였다. 칼디가 가만히 살펴보니, 늙은 염소가 체리처럼 빨갛게 생긴 열매를 먹기만 하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었다. 그 염소는 우리로 돌아와서도 좀처럼 잠들지 못하고 왕성하게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시간이 갈수록 이 열매를 먹는 염소들이 늘어났다. 염소들이 빨간 열매를 자주 먹는 것은 아니었다. 칼디의 눈에는 힘이 필요할 때 이 열매를 이용하는 것처럼 보였다.

칼디는 빨간 열매의 정체가 궁금해 열매가 달린 가지를 꺾어 마을에 사는 지혜로운 사람에게 가져갔다. “어르신! 힘이 없는 염소가 이 열매만 먹기만 하면 기운차게 날뜁니다. 왜 그런 거지요”라고 칼디가 물었다. 지혜로운 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거기에 두고 가거라”고 시큰둥거렸다.

며칠이 지나 칼디가 다시 찾아갔다. 지혜로운 자는 칼디를 보자마자 버선발로 뛰어나와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는 ‘열매를 더 갖다 달라’고 애원했다. 지혜로운 자는 그 열매를 먹고 밤새 졸지 않고 기도를 잘 올렸으며, 젊을 때처럼 힘이 솟구치는 듯 했다며 열매에 잔뜩 매료된 표정을 지었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된 절벽을 타는 염소의 모형. 커피나무는 자연에서 8~10m까지 자란다. 염소의 발굽은 가파른 절벽이나 높은 나무를 잘 타도록 진화했다.

당시 칼디와 지혜로운 자는 카페인의 존재를 알지 못했지만, 그 효능을 목격하고 경험했던 것이다. 커피는 씨앗 뿐 아니라 열매에도 카페인과 항산화물질이 들어 있어 각성과 함께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효과를 낸다.

칼디의 전설은 마치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우리네 구전동화처럼 들리지만, 제법 오랜 기간 커피애호가들 사이에 회자되면서 커피의 기원을 설명하는 정설처럼 굳어졌다. ‘칼디’라는 이름을 내건 카페나 원두 상표를 세계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왜 염소가 커피열매를 발견한 동물로 등장했을까?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자연 상태에서 커피나무는 8미터에서 10미터까지 자란다. 산지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키보다 조금 더 큰 커피나무에서 손으로 열매를 수확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수확하기 좋도록 가지치기를 해 키를 낮추었기 때문이다.

나무 높이 달린 커피열매를 칼디의 염소들이 따 먹을 수 있는 것은 타고난 능력 덕분이다. 염소는 나무를 잘 탄다. 균형을 잘 잡아 깎아 내릴 듯한 절벽도 거침없이 타고 오르내린다. 염소 수십 마리가 나무에 올라 가지마다 서서 열매나 잎사귀를 먹는 사진들을 이젠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들 사진만으로 만든 달력은 커피애호가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인터넷에서 ‘염소가 열리는 나무’를 검색하면, 염소들이 열매처럼 나무에 널려 있는 사진들이 즐비하다.

사진들은 대체로 모로코의 사하라 사막지대에 사는 염소들이다. 염소들은 아르간(argan)이라고 불리는 이들 나무에 올라 열매를 따 먹는다. 올리브나무만큼이나 아르간 열매의 오일이 유용하게 쓰인다. 염소들은 물이 메말라 먹이가 부족할 때면 나무에 올라가 잎과 열매를 먹으며 수분과 영양분을 보충한다. 칼디의 전설은 염소가 목 마름을 견디다 못해 나무에 올라가 열매를 먹는 것을 보고 누군가 만들어 낸 이야기일 수 있다.

커피 열매는 모양이 체리나 크렌베리와 비슷하다. 겉보기에는 먹음직스럽지만 과육이 거의 없어 과일로서는 매력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카페인 성분이 있어 각성효과로 인류를 매료시켰다.

칼디가 에티오피아 사람이었는지는 사실 명확히 알 수 없다. 예멘에서는 칼디를 예멘의 목동, 지혜로운 자를 이슬람 수도승이라고 주장한다. 칼디가 살던 시기는 명확하지 않아 그저 ‘아주 먼 옛날’이라고만 말한다.

커피애호가들은 칼디가 실존인물이 아니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는 눈치다. 칼디의 이야기는 사실여부를 떠나 재미있는 사연이 커피를 마시는 자리를 더욱 즐겁게 만든다. ‘이야기의 힘’이란 이런 것이다. 이야기 꽃을 피우는 것은 그윽한 커피 향만큼이나 우리 삶에 소중한 경험이요, 축복이다.

사연은 오랜 기간 구전되면서 여러 버전이 만들어졌는데, 내용을 세심하게 따져보면 적잖은 허점이 발견된다. 칼디를 ‘양치기’라 해놓고는 정작 커피 체리를 먹고 춤추는 동물을 ‘염소’라 말하는 대목부터 아쉽다. 아마도 ‘산양’을 혼동했기 때문일 수 있다. 산양은 양이 아니라 염소에 속한다. 또 기원후 2~3세기에 벌어진 일이라며 말문을 터 놓고는, 칼디가 이슬람 수도승에게 커피를 가져다 주었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 마호메트가 이슬람교를 창시한 것이 610년이기 때문에 그 전이라면 이슬람 수도승이란 있을 수 없다.

커피의 시원지를 밝혀둔 기록이 없다 보니 여러 이야기들이 나돈다. 인류가 언제 어디에서 커피를 먹기 시작했는지를 명확하게 밝힌 기록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커피에 대한 언급은 9세기가 돼서야 기록으로 남겨져 전해진다.

글/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CCA)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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