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거인들] 무학대사와 내암 정인홍
[경남의 거인들] 무학대사와 내암 정인홍
  • 김성대 기자
  • 승인 2019.03.12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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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도읍지를 서울로 정한 왕사(王師), 무학대사

조선 태조 왕사(王師) 무학대사는 합천군 대병면(당시 삼기군) 출신이다. 고려 충숙왕 14년(서기1327년) 아버지 박인일과 어머니 공성채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성은 박씨, 이름은 자초, 호는 무학이다.

<오사설림초기>에 따르면 이성계가 왕에 오르기 전 무너지는 집에서 서까래 세 개를 등에 걸머지고 나오는 꿈을 꾸었는데, 다음날 산중에서 수도 중이었던 무학을 우연히 만나 간밤의 꿈 이야기를 하니 무학이 장차 왕위에 오를 꿈이라면서 절대 다른 사람에게 발설하지 말 것을 권했다고 한다. 그 후 얼마 뒤 이성계는 진짜 왕이 되었다.

무학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재주가 많았으며, 효행도 발랐다 전해진다. 또한 무학은 조선 도읍지를 서울로 정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산수비기>에 의하면 신라 의상대사가 “중의 말을 듣고 도읍을 정하면 오래갈 것이고 정씨 성을 가진 사람 말을 들으면 5대를 지내지 못하고 화가 생겨 200년을 못 넘길 것”이라 했다. 여기서 중이란 무학이요, 정씨란 정도전을 이른 것이다. <무학연대록>, <무학전>등 많은 기록을 남긴 무학대사는 조선 태종 5년, 79세 되던 해 타계했다.

 

문무에 능했던 남명 조식의 수제자내암 정인홍

정인홍은 조선중·후기 문신이자 성리학자이며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다. 선조·광해군 대에 북인을 이끌며 정국을 주도한 그는 남명 조식의 수제자이자 남명학파의 지도자이기도 했다. 자는 덕원, 호는 내암, 본관은 서산이다.

1573년(선조 6년) 학문과 덕행을 인정받아 황간현감으로 발탁된 정인홍은 제용감정 등을 지내고 임진왜란 때 합천에서 의병을 모아 합천, 성주, 대구 등지에서 활동하며 왜병을 격퇴, 영남 의병장 호를 받았다.

정인홍은 왜란이 끝나고 북인과 함께 정권을 잡았다. 북인이 분열한 뒤엔 이산해와 함께 대북 영수가 되었다. 그는 전란이 종결되고 대사헌과 중추부동지사, 공조참판, 우의정과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고 서령부원군에 봉군되었다. 정인홍은 이언적, 이황 등의 문묘종사를 반대하다 유생들에게 탄핵받고 <청금록>에서 삭제되는 등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1623년 능양군 등은 80세 이상 재상은 처형하지 않는 관례를 어기고 결국 정인홍을 참형에 처했다. 서인과 노론으로부터 광해군 실정의 책임자 중 한사람으로 비판을 받아온 내암 정인홍은 1908년 순종 때 가서 복권되었다.

정리 김성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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