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거인들] 조선의 성웅(聖雄), 충무공 이순신
[경남의 거인들] 조선의 성웅(聖雄), 충무공 이순신
  • 김성대 기자
  • 승인 2019.08.14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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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 그와 통영의 깊은 인연은 한산도대첩을 통해서였다.
충무공 이순신. 그와 통영의 깊은 인연은 한산도대첩을 통해서였다.

이순신은 조선 중기 무신으로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忠武)다. 

1545년 4월 28일 한성 건천동에서 이정과 초계 변씨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이순신은 어린 시절 대부분을 건천동에서 보냈고, 소년기는 외가인 아산에서 보냈다. 한성 건천동은 충무로가 속한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인현동 일대로, 충무로는 다름아닌 이순신의 호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문반 가문 출신인 이순신은 1576년(선조 9년) 무과에 급제했다. 1581년 발포 수군만호가 된 그는 2년 뒤 남병사 군관과 건원보권관, 훈련원참군을 거쳐 1586년 사복시주부를 지냈다.

이후 조산보만호 겸 녹도둔전사의로 부임한 이순신은 재직 중 여진족과 벌인 녹둔도전투에서 패해 북병사 이일의 탄핵을 받고 백의종군 하기도 했다. 전라관찰사 이광에게 발탁돼 전라도 조방장, 선전관을 역임한 이순신은 1589년 정읍현감 재직 중 유성룡의 추천으로 고사리첨사가 됐고, 이어 절충장군과 만포진첨사, 진도군수를 거쳐 전라좌도수사까지 올랐다. 이순신이 임진왜란을 만난 건 이 즈음이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은 조선 삼도수군통제사로서 뛰어난 지도력과 지략, 탁월한 전략과 전술로 일본 수군과 해전에서 연전연승해 나라를 구했다. 이 공로로 그는 지금까지도 성웅(聖雄)으로 추앙받고 있다. 

1598년 11월 18일, 이순신은 조선 수군 70척과 명나라 수군 400척이 동원된 노량해전에서 왜군의 총탄을 맞고 전사했다. 이순신은 사후 선무공신 1등관에 추록, 광해군 땐 증 의정부좌의정에 추증됐고 정조 때엔 증 의정부영의정으로 가증됐다. 그의 묘는 충남 아산시에 있다.

통영을 이야기 하면서 이순신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는 한산도대첩 때문이다. 1592년(선조 25년) 8월 14일 한산도 앞바다에서 벌어진 한산도대첩은 진주대첩, 행주대첩과 더불어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로 꼽힌다. 한산도는 통영시 한산면에 있는 섬으로 면적 14.785km2의 유인도다.

이순신은 한산도대첩에서 육전 포위 섬멸 전술인 학익진을 처음으로 펼쳐 왜선 59척을 침몰시켰다. 구한말 고종의 미국인 고문이었던 헐버트(Hulbert.H.G)는 한산도대첩을 일컬어 “조선의 살라미스(Salamis) 해전"이라며 "이 해전이야말로 도요토미의 조선 침략에 사형 선고를 내린 것이다"고 평가했다.

必死則生 必生則死(필사즉생 필생즉사).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 해전 전날인 1597년 9월 15일 <난중일기>에 쓴 말이다.

김성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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