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류 씨네필의 인생영화] 198위: 렛 미 인
[이류 씨네필의 인생영화] 198위: 렛 미 인
  • 윤호준
  • 승인 2019.05.14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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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 미 인(2008)

감독: 토마스 알프레드슨

촬영: 호이트 반 호이테마

주연: 카레 헤레브란트, 리나 레안데르손, 카린 베그퀴스트, 피터 칼버그

10년 넘게 <블레이드>(1998)와 <언더월드>(2003) 시리즈를 봐왔던 우리들 앞에 문득 나타난 영화가 바로 <렛 미 인>이다. 뱀파이어의 신체 능력을 과시하는 장면이 건물과 나무를 기어오르는 기초적인 와이어 액션 뿐인(그 밖에 소소한 음향 효과와 입가에 묻은 피가 있고, 수영장에서는 물 속에 잠긴 채 액션을 상상해야 한다), 차갑게 절제된 북구의 눈밭 드라마는 그저 삶의 이야기를 보여줌으로써 거꾸로 비범한 뱀파이어 영화가 되었다.

감독은 이엘리의 말마따나 "마음 속으로만 죽이는" 자와 "살기 위해 죽이는" 자의 만남과 서로의 처지에 대한 교차 응시로 영화를 가득 채운다. 관객은 시작 10분 만에 작품이 선택한 영화적 태도 앞에 굴복당한다. 배관공처럼 묵묵히 이런저런 도구를 챙기던 남자가 다음 장면에서 한 청년의 목을 딸 때, 그 남자의 차분한 살인에 할애된 컷이 딱 2개 뿐일 때, 영화는 일찌감치 호러의 틀에서 벗어나 버린다.

그 뒤로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피의 많고 적음에 구애받지 않는 사회적 소수자 한 쌍의 체념과 연대다. 오스칼은 과연 어떻게 될까? 그도 40년 정도 대리 사냥을 하다가 자기 얼굴에 염산을 들이붓게 될까? 그렇게 상상하더라도 이 영화처럼 차분해야 한다. 망설임 없는 관조라 불릴 그것을 알프레드슨 감독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2011)에서 한 번 더 보여준다. 콜린 퍼스가 죽는 바로 그 장면의 힘은 <렛 미 인>의 뿌리에서 나온 것이다.    

 

★ Only One Cut

공교롭게도 같은 해에 하비 덴트(<다크나이트>, 크리스토퍼 놀란(2008))의 얼굴도 타 들어갔다. 하지만 얼굴이 말해주는 풍부함에서 <렛 미 인>이 한 수 위다. 염산을 들이붓기 직전 내뱉은 나지막한 "이엘리!" 이 한 마디의 슬픔이 무척 컸다. 그리고 그 다음, 따뜻한 병문안을 받는가 싶더니 이 남자는 돌연 한 마리의 숫 사마귀가 되어 자신의 마지막을 내어준다. 그리고 또 추락.  

글/윤호준 (영화애호가,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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