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휴식] 잠 안 올 때 - H의 여행
[詩와 휴식] 잠 안 올 때 - H의 여행
  • 임현준
  • 승인 2019.04.01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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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안 올 때

-H의 여행                                                                        임 현 준

 

정교하게 식은 초승달에 하루가 걸려 있다

옷걸이에 걸린 잠바가 칼 찔린 형상으로 등 굽어 있다

모니터 앞에서 거북목을 하고 갑골문자를 쓴다

불덩이 속 거북이 등껍질이 엄마의 발뒤꿈치로 걸어와서 점친다

각막분리증으로 세상이 벌어지듯 아픈 엄마는 맨날 준비한다 망막전막인가

천안 골목에는 웅크린 채로 낡은 고양이처럼 한쪽 눈이 멀어버린 점집이 많다

투항인가 저항인가 바람을 휘젓는 깃발

어차피 내일도 모레도 어지럽게 흩어지는 미세먼지일 것이다

끝끝내 사막으로 돌아갈

과연 희망의 바깥은 현실의 속살,

목마른 회전초가 구르다구르다 낙타 뒷발에 채일 때까지

쌍봉의 물주머니가 쪼그라들 때까지

낙타의 침에서 맥주 썩은 냄새가 날 때까지

정교하게 날밤 까는 우주가 혀를 내밀고 있다

방구석이 몰려 각을 세우는 미명에도,

시멘트벽에 박힌 못처럼 나는 모로 누워있다

오늘의 거북목은 어제로 가는 골목

어제의 낙타 발자국은 치다 만 오함마의 흠집

꼭! 하루는 질려서 집으로 돌아온다

당신이 파놓은 상처도

집이다

 

 

 

 

 

 

임현준

시인.

전라남도 벌교 출생.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 수료.

2018 『애지』 신인상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