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시애틀' 사천을 만들자, 이종범 전 사천시의회 부의장
'한국의 시애틀' 사천을 만들자, 이종범 전 사천시의회 부의장
  • 김성대 기자
  • 승인 2019.06.17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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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서포 출신...30살부터 50명종업원 사업 시작
2014~2018년 사천시의회 전후반기 부의장 역임
사천시 "대한민국 산업의 중심지 자격 충분하다"
2018 지방선거 사천시장 출마 "재출마 의지 있어"

윤광토건(주), 화창건설(주) 이종범 대표는 사천시 서포면 출신이다. 2014~2018년 사천시의회 전후반기 부의장을 지낸 그는 나고 자란 사천에서 줄곧 고향을 지키며 살아왔다. 제도권 교육은 서포초등학교를 통해 처음 접했고, 경남과학기술대학교를 졸업하며 그 결실을 맛봤다. 그는 현재 경남과기대 공대 대학원 졸업반으로, 지천명을 훌쩍 넘기고서도 공부 끈만은 놓지 않고 있다. 이 대표는 서른 살 때부터 사업을 시작했다. 지역 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직원 50명을 거느리고 감행한 공장 설립이었다.

이종범 전 사천시의회 부의장은 30세 때부터 사업을 시작했다. 건설업은 1996년도부터 해왔다. 사진=김성대 기자.

▲사업을 비교적 일찍 시작했다.

과거 유명 낚싯대 제조 공장 기술주임이었다. 거기서 기술을 터득해 공장을 차렸다.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되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었지만, 대구 모 업체에 보증을 서서 부도도 한 번 겪었다. 평소 건설 쪽 분야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었던 터라 1996년도에 건설업을 시작한 것이다. 

▲경영인으로서 어떤 마인드를 갖고 있는지. 

저는 회사 이윤의 30~40%를 지역에 환원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경영을 해왔다. 가령 서포를 떠나 24년째 살면서 명절 때마다 서포면사무소에 쌀 보내기를 해온 식이다. 24년간 한 해도 안 빠졌다. 계기가 있었다. 95년 즈음 회사가 부도로 어려움에 처해 하루하루 가족들 땟거리를 걱정할 때 지인이 저에게 쌀 한 포대를 갖다 줬다. 그때 쌀의 눈물겨운 고마움을 절감했다.(이 말을 하며 이 대표는 눈시울을 붉혔다.) 사실 부도 후 어려운 환경 때문에 고향을 떠나려 했다. 그런데 ‘돈을 갖고 떠난 것 아니냐’는 생각을 고향 사람들이 갖게 하고 싶진 않아 마음을 바꿨다. 꼭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사회 환원을 하겠다는 다짐도 그 무렵 한 것이다.

▲정치는 어떻게 하게 됐나.

자생단체 협의회 회장, 체육회 회장, 중학교 총동창회장. 수양 로타리클럽 회장 등 이런저런 자리들을 맡다 보니 많은 지역 분들이 권했다. 그러나 저는 사업 부도로 인한 인생의 큰 오점 때문에 극구 사양을 했다. 지역에 봉사할 수 있는 일, 힘들어서 남들이 하지 않으려는 일들을 하는 저를 보고 후배들도 정치를 꼭 해보라고 많이 종용했다. 그렇게 후배들에게 떠밀리듯 정치를 하게 됐다.

▲정치인으로서 각오가 있었을 것이다.

새로운 시대로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치라는 게 어느 자리, 위치에 앉혀놓으면 마치 전매특허처럼 자기 자리에만 여념하는 것을 바꿔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처음엔 도의원 출마를 권유 받았지만 제가 가야할 방향은 도의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시의원을 하면서 사천시민이 잘 살고 사천시민이 행복한 사천시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었다. 물론 시의원은 절대 두 번 이상 안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 자리는 다음 후배들에게 물려주겠다고 당선 후에 분명히 말했다. 내가 떠날 자리를 생각해가며 회사 경영을 해온 것과 마찬가지다.

▲2014년부터 4년간 사천시의회 전, 후반기 부의장을 맡았다.

부의장을 맡은 기간은 사천 시정의 격동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힘든 시기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천시의회가 소수 의원들이 집행기관에 끌려가는 것처럼 보였다. 시의원은 시민을 대표해 집행기관을 견제하고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기준과 원칙, 소신과 철학을 가져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일부 의원들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의회가 정착되기까진 시간이 많이 걸리겠다 생각했고, 실제 의정 활동을 하면서 소신껏 집행기관에 많은 제안과 견제를 했다. 그런데 공적 관계가 사적 감정 비하까지 갔고, 결국 대한민국 정치란 기득권 세력에 의해 농락 당하는 정치라는 걸 깨달았다. 적지 않은 예산들을 다음 선거를 위해 선심성으로 쓰는 모습은 정말 아니었다. 시민 혈세를 구석구석 알차게 잘 써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을 의정 활동 하면서 정말 많이 했다.

▲그것이 사천 시장 출마를 하게 된 계기였나.

지방자치단체장 쪽으로 한 번 가보면 어떻겠느냐, 당시 40명 정도 당직자들이 추대를 해 출마를 하게 됐다. 원래는 의장을 한 번 한 뒤 시장 출마를 생각했었는데 당 화합과 당의 정체성을 살릴 필요가 있다고 우선 판단했다. 오랫동안 스킨십을 해왔던 사람들이 화합의 여건이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출마를 결정했던 것이다.

▲선거 당시 몸 담고 있던 자유한국당이 송도근 현 시장을 전략공천한 데 대해 예비후보로서 크게 반발한 걸로 안다.

공천 취소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탈당했다. "사천시민들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비민주적 전략공천으로 사천시민을 무시했다"는 게 탈당 이유였다. 송도근 시장 본인과 주변 분들은 보수 성향이 아니었다. 당시 새누리당에 입당 후 경선룰을 문제 삼아 탈당해 무소속으로 당선됐던 사람이 집권당에 오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자택 정원에서 포즈를 취한 이종범 전 사천시의회 부의장. 그는 지난해 지방선거 무소속 후보 시절 "말을 내뱉었으니 책임을 져야겠다 생각했고 그런 책임감으로 완주했다"고 말했다. 사진=김성대 기자.

▲탈당 해서도 무소속으로 끝까지 갔다.

시민들에게 '공천 못 받아서 들어갔구나'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긴 싫었다. 저는 평소 단 한 사람의 약속도 중요하게 생각해왔다. 말을 내뱉었으니 책임을 져야겠다 생각했고 그런 책임감으로 완주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됐다. 대립이 아닌 화합적인 관계가 무엇인지를 그때 배웠다. 사천시 수장인 시장은 소인배가 아닌 대인으로서 뜨거운 가슴을 지니고 시민 모두를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정치인은 금전 문제에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저는 그거 하나는 자유롭다. 남에게 단돈 만 원도 받지 않는다는 게 제 지론이었고 시민들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게 제 목적이었다. 저는 시의원 시절에도 남에게 밥 한 끼 얻어먹은 적이 없다. 민원 해결 후에도 제가 밥을 샀다. 시의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니 대접 받을 이유가 없다. 제 고민은 단 하나, 시민에게 근심걱정 안 끼치고 행복하고 잘사는 사천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뿐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출마 당시 '사천의 미래'와 관련해 가졌던 복안은 무엇이었나. 

사천은 항공산업과 관광산업, 농수산업 세 가지 큰 틀을 갖고 움직이는 곳이다. 그런데 따져보니 바다케이블카 등 관광산업은 그저 '스쳐가는 사천'이었다. 문제점은 관광객의 동선이었다. 사람들이 와서 머물고 갈 수 있는 사천 관광을 생각했고, 그래서 한 제안이 '노산타워와 명품 수산물 쇼핑거리 조성으로 신수도와 비토섬에서 1박'이라는 관광 테마였다. 또 하나는 사천을 한국의 시애틀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과거엔 전자산업과 자동차, 조선이 대한민국의 경제축이었지만. 이제는 그 축이 명실상부 항공 우주산업인 만큼 KAI를 중심 삼아 사천을 그런 곳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제가 5~6년 전부터 주장했던 바이기도 하다. 카이는 미국의 보잉사처럼 군용기 외 민항기도 생산하고, 사천엔 인천 국제공항처럼 유사시 제2의 대체 공항을 만드는 것이다. 남부내륙철도 예타 면제도 됐고 사천은 충청권, 대전, 영호남을 포함한 대한민국 45%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공항을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위치다. 당연히 항공우주산업으로 사천이 대한민국 경제 중심이 될 수 있는 지역이라고 판단했다.

▲복안의 현실화를 위해 본인이 적격이라고 판단한 이유는.

더는 행정 관료 출신이 단체장이 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 이젠 자치단체도 경영 마인드로 '공공경영'을 해야 한다. 작은 기업이지만 30년 정도 기업을 이끌어오면서 든 생각이다. 즉, 이제 시장은 경영 마인드십과 세일즈맨십을 가지고 운동화 신고 인적자원을 적극 활용해 중앙정부와 대기업 등을 찾아다니면서 '영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 발전 앞에서 검은고양이 흰 고양이가 다 무슨 소용 있나. 쥐 잡는 고양이가 최고 아닌가. 행정은 행정 전문가인 공무원에게 책임감 있게 맡기면서 지시보다는 관리 체제를 지향하는 시장이 이젠 필요하다. 여태껏 공직자는 몇 십 년간을 전문 분야에서 붕어빵 같은 틀에서 살아왔다. 그들은 바깥 세상을 잘 모른다. 어려울 것 없다. 사천, 진주, 하동, 남해. 고성에 항공우주산업이 자리 잡으면 경제 광역화 되는 거다.

▲그 외 지금 사천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역사와 교육이다. 사천은 과거 사물국 8국 중 하나였다. 사주 천년, 정명 600주년의 사천. 그러나 사천에선 아직 제대로 된 역사 정립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우리 사천의 진정한 뿌리가 무엇인지를 부각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사물국에 대한 용역이 얼마 전부터 추진되기 시작한 것이다. 늑도, 향촌동 등에서 2세기 전 유물들이 많이 나오고 있고 용현과 석계, 곤명과 봉계 쪽에서도 당시 유물들이 많이 발굴되었다. 저는 기원전(B.C.)까지도 볼 수 있는 사천 역사를 재조명 해야 한다고 본다. 특히 정신문화, 예컨대 다솔사의 만해 한용운과 효당 최범술, 김동리 선생 등 사천이 잉태했던 정신문화를 많은 사람들에게 계승할 필요가 있다. 빠르게 보다는 '슬로 시티'를 지향해야 한다. 시민들의 인문학적 관심이 역사 인식으로 이어질 때 사천이 더 나은 사천이 되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 역사 없는 문화는 없다. 그리고 교육문제는 신규학교 설립보다는 초·중학교의 공동화 현상을 막기 위한 학군 조정이 필요하다.

지난해 6.13 지방선거 당시 사천시장 출마 예정자로서 정책발표 중인 이종범 전 사천시의회 부의장.

▲사천 시장에는 또 도전할 생각이 있나.

여건이 되면. 복당은 생각 중이다. 분명한 건 무소속은 아니라는 것이다.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사천은 어떤 분위기인가.

너댓 사람 정도가 준비 중인 걸로 안다. 하동남해사천 통합선거구인 만큼 이번엔 사천 사람이 돼야 하지 않겠느냐는 목소리들이 사천 시민들 사이에서 조금씩 들리고 있다. 앞서 말한 서부경남 '광역화'를 이끌 수 있는 여건을 갖춘 지역인 만큼 그간 사천 시민들 입장에선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마지막으로 사천 시민들께, 그리고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 같은 걸 한 말씀 해달라.

사천시민들이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문화에서 어느 지역에도 뒤지지 않는 사천이 됐으면 좋겠다. 원가 경쟁 때문에 외국으로 다 나가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 이제 국가주도형으로 키울 수 있는 글로벌 기업은 항공우주산업 뿐이다. 제3의 경제 도약으로 사천은 미국 시애틀 같은 대한민국의 경제 중심도시가 충분히 될 수 있다. 개인적으론 사천을 더 깊이 알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사천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마음 자세를 한 번 더 다듬는 계기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저 스스로 사천 시민을 위해 한 점 부끄러움 없이 봉사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우리 사천과 시민의 바람이 무엇인지를 많이 듣고 배우며 더 큰 사천을 꿈꾸며 저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김성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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