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가 바뀌어야 정치가 바뀐다" 이성권 전 국회의원
"유권자가 바뀌어야 정치가 바뀐다" 이성권 전 국회의원
  • 김성대 기자
  • 승인 2019.10.18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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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출신...부산대 철학과 졸업, 총학생회장까지 지내
33살 때 전세금으로 일본 유학 → 와세다대학원 진학
고노타로 중의원 사무실서 일하면서 대학원 공부 병행
2004년 남성 최연소 17대 국회의원 당선, KOTRA 상임감사 역임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 고베 총영사 역임...'세계베스트 공관장상' 수상
2020년 총선 "무조건 나간다. 기존 정치 답습 않는 창의적 방식 고민"

이성권 전 국회의원(17대, 부산진구 을)은 경남 남해의 시골에서 태어났다. 이 전 의원은 고등학교 때까진 그저 농사일 잘 하는 둘째 아들이었다. 장학금을 받고 부산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할 때까지도 그의 인생 목표는 '공부 잘 해서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었다. 피 끓었던 대학시절 그가 한국 사회에 관심을 갖고 학생운동에 뛰어들게 된 건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접하고서였다. 군 복무를 마친 이성권이 부산대 총학생회장이 되었을 때 언론은 "부산대 역사상 처음으로 한총련 주류(NL)가 아닌 비주류 총학생회장이 등장했다"고 보도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박관용 전 국회의장의 비서관으로 현실 정치의 첫 발을 뗀 그는 국회 생활 4년 만인 33살 나이로 전 재산이었던 전세금을 빼 들고 일본 유학을 떠났다. 고학생활 끝에 명문 와세다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이 전 의원은 학비와 유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무작정 고노타로 중의원에게 이력서를 보냈다. 면접 30분 만에 합격 통보를 받았고 그는 2004년까지 대학원 공부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힘든 시기를 보낸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비전'을 안고 2004년 한국으로 돌아온 이성권 전 의원은 공천장을 담보 삼은 은행 대출로 선거자금을 마련, 맨손이었던 그를 믿고 지지해준 지역 주민들 덕에 남성 최연소로 17대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다. 그는 의원 시절 국회 사무처 선정 '2007년 최우수 입법의원에 선정됐고, 이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상임감사를 맡아 전세계 50개국을 발로 뛰기도 했다. 또한 청와대로 옮긴 뒤엔 시민사회비서관으로 국정 컨트롤 타워의 실제 운영을 체험했으며, 2013년부턴 외교관 역할을 맡아 주고베 총영사로 일했다. '2014 세계 베스트 공관장상'을 수상했고 제7회 지방선거 부산시장 후보로도 출마했던 이 전 의원은 <소통은 권력을 이긴다>, <인재(人災)공화국을 넘어>라는 책도 썼다. 언젠가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한국사회 보수의 쌓인 병폐가 누적 돼 폭발한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던 그를 부산진구의 북카페 '공감'에서 만나고 왔다.

미디어팜과 인터뷰를 끝내고 자신이 운영하는 북카페 '공감'에서 포즈를 취한 이성권 전 국회의원. 사진=김성대 기자.

▲고향이 남해다.

남해는 제 정서의 기질, 성격을 형성해준 곳이다. 어머니 품과 같은 곳이랄까. 대한민국 해안들이 다 아름답긴 하지만 남해의 자연조건, 특히 상주면 바닷가의 잔잔한 파도와 금산이라는 명산은 따로 언급할 만 하다. 어릴 때부터 바다와 산이 있는 곳에서 자라 정서적으로 모가 나지 않은 것 같다.

▲부산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재학 시절 총학생회장도 지냈는데. 왠지 북카페를 연 일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

80년대 후반 대학에선 학생운동 분위기가 강했다. 저 역시 데모 하러 다니는데 시간을 많이 투자했고. 철학과에 진학한 건 책을 읽어 과거 교훈, 타인들의 생각과 사상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타인들의 다양한 생각, 사상, 주장을 경청하고 그 내용을 함께 토론하며 수용하는 문화가 부재한 한국의 현실 정치에 대한 사유로 이어졌다. 정치, 경제, 사회, 미래 문제를 위주로 아래(주민, 유권자)로부터 철학하고 토론하는 문화를 형성해보면 좋겠다 싶어 북카페를 열었다.

▲와세다대학교에선 국제관계학과 석사를 졸업했고 이후 주일본 고베총영사를 지냈다. '일본 전문가'로서 최근 일본과 관계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일본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하려고만 들어도, 정부와 다른 해법을 제시하기만 해도 '친일' 내지 '토착왜구'라는 시뻘건 낙인이 달려드는 느낌을 받는 요즘이다. 저는 그래서 한국 사회 자체가 위기라고 생각한다. 지금 한국 사회에선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다. 여러 의견을 토론과 소통으로 취합해 합의점을 찾는 문화와 풍토가 사라지고 대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걸 일방적으로 상대에게 강요해 실현하려는 위험한 사회가 작금 대한민국 사회라고 저는 보는 것이다. 근래 '조국 갈등'에서도 나타났듯 그를 두둔했던 사람들은 조국 전 장관에게 유리한 주장, 정보만 받아들이는 확정편향의 전형을 보여줬다. 이는 일본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마찬가지다. 한일 관계는 두 나라 뿐 아니라 미국, 중국 같은 강대국들 사이 국제 질서 세력의 변화 상황 속에서 한국이 전략적으로 어떤 대응을 해야 하느냐까지 염두에 두고 판단해야 할 사안이다. 그런데 이러한 바탕 위에서 합리적인 의견을 내는 사람조차 일본을 무조건 싫어하는 사람들은 토착왜구, 친일파라고 매도한다. 국제 정치의 해법을 제시하는데 극단적인 주장들만 수용되는 이러한 풍토는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북카페 공감은 이성권 전 의원을 최연소 남성 국회의원으로 만들어준 부산진구 가야대로에 있다. 사진=김성대 기자.

▲북카페 '공감'은 어떻게 문을 열게 된 건가. 

저는 1996년부터 정치권에 몸담았고 2004년에 국회의원이 됐다. 그런데 과연 20년 전과 지금 한국 정치는 바뀌었는가. 바뀐 게 없다. 오히려 더 후퇴한 게 아닌가 싶다. 과거엔 여야 간 갈등과 대립이 있어도 지금처럼 사생결단은 아니었다. 낮에 싸워도 밤에 소주 한 잔 하면서 해법을 모색할 수 있었다. 정치권만이 아니다. 국민도 같다. 생각이 다른 당원, 정당은 철저히 배제하거나 관계를 끊는다. 이념이든 지지하는 대상이든 과연 그것이 인간 관계를 단절할 만큼 소중한 것일까. 저에겐 그것들이 전체주의 국가 같은 나쁜 모습으로 밖엔 안 보인다. 정치와 국민 풍토가 함께 후퇴한 모양새다. 때문에 누군가가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국회의원들은 자성해서 극단에 매몰되지 않는 정치를 펼쳐야 할 것이고, 정당들은 몇몇 의원이 당원들과 함께 공부하는 모임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후자는 부산진구에서 이미 시도한 적이 있다. 3개 정당이 모여 2주 간격으로 토론회를 열었는데 호응이 아주 좋았다. 부산 시당 당원들 사이 합의 가능한 수준을 끌어내기 위해 공동 아카데미 학교를 만드는 것. 그것이 북카페를 연 큰 목적 중 하나다. 또한 술 마시는 동네가 아닌 책 읽는 동네를 만들어봤으면 하는 생각도 북카페 오픈에 중요한 동기가 됐다. 이성권의 지지자들은 이성권을 맹목적으로 좋아하면 안 된다. 제가 하고자 하는 일, 생각이 맞으면 지지하되 부응하지 않으면 저를 버려야 하는 게 맞다.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게 바로 공부고 토론이다. 북카페 공감은 그걸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공감에선 경제, 정치, 국제문제, 여성주의를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짜는 것으로 안다.

맞다. 여기선 페미니즘 읽기 모임도 한다. 여성단체 분들도 오시고. 사실 체계적으로 페미니즘 공부하는 곳이 많지가 않다. 일전에 문제가 된 박성중, 정갑윤 의원의 여성비하 발언만 봐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져있는 형편이다. 성 자체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것이다. 그것을 끌어올리기 위한 독서 모임으로 보면 되겠다.

▲'경제신문 읽기모임'도 있다 들었다.

저희 북카페 운영 방식은 일반 커피숍과 좀 다르다. 이곳은 수익이 아닌, 동네사람들이 책 읽고 토론하는 문화를 확산시키는 걸 1차 목표로 삼고 있다. 유동 인구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 마련한 프로그램에 지역 주민들 참여를 유도하는 것인데 현재 4~5개 정도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다. '경제신문 읽기모임'은 매일 일어나는 경제 현안들, 예컨대 미중 무역 분쟁이나 삼성전자의 반도체 전략, 올 상반기 경제 실적, 소득주도 성장, 지난 번 조국 전 장관과 관련된 펀드 논란 등에 대해 신문기사 1~2개를 읽은 뒤 토론하는 모임이다. 일단 읽는 분량이 적고 당장 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활 문제이기 때문에 수용도가 높을 거란 생각으로 시작했다. 매주 수요일 정기 모임을 갖는데 벌써 30회차가 훌쩍 넘었다.

▲방송 출연도 하신다고.

지난 1월에 출발한 저녁 7시 방송 KNN '송준우의 시사만사'에 고정 패널로 출연하고 있다. 중앙 정치 이슈를 부산, 경남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프로다.

▲언젠가 개인 SNS에 고 정두언 전 의원에 대해 "그를 생각하면 마음이 미어진다"고 썼다.

고인은 제가 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친해진 분이었다. 특히 2007년 MB가 대선 준비를 본격화 할 즈음 캠프에서 핵심 업무를 맡았던 정 의원은 MB 당시 후보가 정책 공약 개발을 위해 떠난 해외 순방을 저와 함께 가기도 했다. 당시는 아랍에미레이트 자원외교를 비롯해 독일 녹색성장 산업, 대덕연구단지가 모방한 일본 츠쿠바 대학 산업 연구소, 그리고 도쿄 정치인들과 교류 등을 컨셉화 한 시기였다. 고인을 생각하면 그저 안타깝다. 그는 한 사람을 대통령 당선까지 시킨 사람이었다. 정 의원은 캠프에서 궂은 일만 했고, 전략 기획을 담당하면서 MB의 어두운 면까지 방어해야 했다. 그는 MB를 위해 헌신적으로 뛰었던 사람이지만 MB가 당선된 이후에도 직언을 거두지 않아 스스로 힘든 길을 택했다. 보수 세력 정당엔 고인처럼 직언하는 정치인들이 많아야 하는데, 작금 보수 정당 의원들을 보면 그런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듯 해 아쉽다.

미디어팜과 인터뷰 중인 이성권 전 국회의원.
자신이 운영하는 북카페 공감에서 미디어팜과 인터뷰 중인 이성권 전 국회의원.

▲정치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어릴 땐 정치할 생각이 없었다. 사회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건 대학 입학 후 총학생회에서 마련한 '5.18 광주민주화운동 사진전'을 보고부터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국가권력이 정반대로 국민들에게 폭력적 학살 행위를 한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학술이념 동아리 등을 찾아다녔고 그렇게 자연스레 운동권 서클에 들어가게 됐다. 졸업 직전엔 총학생회장까지 맡아 했다. 한국 사회의 문제 진단 및 해결에 있어 시민단체나 학생운동은 비판자 입장에서 견제는 할 수 있어도 실질 판단은 결국 제도 정치권에서 이뤄진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 비서관 생활 4년은 제가 제도 정치권에 발을 딛게 된 첫 시기였다.

▲지난해 부산광역시장으로 출마하기도 했다. 내년 총선은 어떤가.

출마는 반드시 한다. 제가 공직을 포함해 올해로 제도 정치권에만 23년째 몸담고 있는데 더는 남들 방식에선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 되면 출판기념회 하고 세미나, 행사장 쫓아다니는 그런. 정치 세계에 들어온 사람들 행동 패턴이 똑같은 데 회의감이 든다. 결국 자기 얼굴 알리고 자신의 존재를 부각 시키려는 수단일 뿐이다. 저도 다 해봤지만 돌이켜보면 보람을 느낄 수 없는 방법들이었다. 정치인들이 자기보다 먼저 정치했던 사람들 방식을 답습하거나 더 나쁜 행태를 하면서 대한민국 정치는 꾸준히 퇴보해왔다. 다른 창의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북카페도 그 방법론 중 하나다. 책 같은 걸 읽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경험을 보충한 상태에서 소통해나가야 비로소 새로운 걸 창출해나갈 수 있다. 한국에선 책이나 신문기사 한 줄 안 보고 비슷한 사람끼리 앉아 머리 속에 걸 뱉어내는 술자리 문화가 팽배해있다. 대한민국은 OECD 국가들 중 1년에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않는 국민 독서율 꼴찌의 나라다. 국력은 경제력, 군사력이 아니다. 그것들은 일시적 어느 단계에서만 의미를 가질 뿐이다. 제가 생각하는 국력의 본질은 결국 책 읽는 힘 즉, 지력이다. 국민의식이 바뀌어야 정치도 바뀐다. 유권자 의식이 성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오는 정치인이란 뻔하다. 정치(인)의 수준은 결국 유권자의 수준이 결정하는 것이다.

북카페 공감의 내부 모습. 이성원 전 의원은 이 곳이 '책 읽고 토론하는 동네사람들' 문화를 확산시키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김성대 기자.
북카페 공감의 내부 모습. 이성원 전 의원은 이 곳이 '책 읽고 토론하는 동네사람들' 문화를 확산시키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김성대 기자.

▲북카페에서 인터뷰를 하는 것이니 책 추천 좀 해달라.

아는 선배가 쓴 <조용한 혁명>이라는 책이 있다. 일본이 본격 근대화를 겪는 메이지유신부터 오늘날 일본이 강대국이 된 계기와 과정을 700페이지가 넘도록 꼼꼼하게 다룬 책이다. 개인적으로 많은 도움이 됐던 저서다. 그리고 <청와대 정부>라는 책도 권하고 싶은데, 대통령 비서실이 곧 청와대이고 그런 청와대가 모든 걸 제왕적으로 처리하는 현 대한민국 대통령제를 비판적으로 고찰한 책이다.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을 잉태한 청와대의 잘못된 정부 운영 방식을 이 책은 논리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인데, 지금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사람들과 더불어민주당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끝으로 대한민국 시민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한국사람들은 대부분 물질적인 결핍감만 느낀다. 내 친구들, 나보다 못한 후배들이 돈이 더 많고 그들이 외제차 타는 것에 박탈감을 느낀 나머지 '나도 돈 벌어야지' 악착같은 마음을 품는다. 과거엔 그것이 한국 사회의 발전 동력으로 여겨졌지만 과연 그런 걸 추구한들 개인이 행복해질까. 저는 개인 행복은 물론 우리 사회의 안전과 발전을 위해서도 결핍이란 물질이 아닌 마음과 지식, 지혜의 영역에서 따지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걸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들을 하고, 행복은 바로 그 노력에서 나올 것이라고 저는 보는 것이다. 그런 걸 자각하는 마음들을 가졌으면 좋겠고, 그렇게 되면 정치를 보는 눈이 달라지리라 본다. 메시아나 영웅이 아닌 진정한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인물을 볼 줄 아는 눈이 생기는 거다. 유권자가 바뀌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안 바뀐다. 함께 바뀌어야 한다.

김성대 기자 

*참고자료: 이성권 저 <소통은 권력을 이긴다>(글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