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과 노력의 교육" 의령교육지원청 이남영 교육장
"공감과 노력의 교육" 의령교육지원청 이남영 교육장
  • 김성대 기자
  • 승인 2019.04.09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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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출신...국어교사로 교직 첫발떼
3월 4일 제30대 의령교육장에 취임
'미래교육 테마파크' 인구유입 기대
"마지막까지 국어교사로 살고 싶어"
미디어팜과 인터뷰 중인 의령교육지원청 이남영 교육장. 사진=조현웅 기자.

 

국어 교사로 교직생활 첫걸음을 뗀 의령교육지원청 이남영 교육장은 경남 고성 출신이다. "농부의 아들은 사범대학으로!"라는 고3 담임선생님들의 '확고한 방침'에 따라 교육자가 됐다는 그는 공감역이 닮은 5, 6명 협력자들과 ‘상호 멘토’ 역할을 유지하며 서로에게 도움 주는 삶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그가 생각하는 '도움'이란 비판적 지적과 합리적 지원, 무한의 지지로 이어지는 것으로, 그 끝에 매달린 신뢰는 덤이라 그는 덧붙였다. 언행일치는 어려워도 해야 할 말을 하는 것에 진정성이 담기면 적어도 손가락질은 받지 않을 것이란 믿음을 가진 이남영 교육장. ‘알 만큼 알아야 하고, 할 만큼 해야 하고, 지킬 만큼 지켜야 한다’는 것을 전제한 것이 친절의 본질이라 말하는 그와 의령교육지원청 교육장실에서 만났다. 

 

▲4월 4일부로 제30대 의령교육장으로 취임하신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준비가 안 된’이 아니라 ‘준비를 안 한’ 교육장입니다. 그러니 특별한 소감이라는 것도 없을 수밖에요.(웃음) 그래도 지난 세월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오히려 깨우치고 배운 것도 많고, 동료 교직원들과 부대끼면서 체득한 경험들도 다양하니까 그걸 바탕 삼아 단위학교들마다 맞춤형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 달을 보냈습니다. 우리 교육지원청은 물론 단위학교 구성원 여러분들의 지적과 지지를 모두 수용하면서 남은 시간을 소중하게 엮고 꾸려 나가겠습니다.

▲혹시 고향이 의령이신가요? 어린 시절 자란 환경이나 학창시절에 품었던 꿈 등이 궁금합니다.

저는 이곳 의령과 비슷한 자연환경을 가진 고성의 골짜기 마을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시절까지 보냈습니다. 지금은 바다를 끼고 있는 고성의 풍광이 더 널리 알려져 있지만, 제가 어릴 적에는 농사 위주의 첩첩 산중 마을이 읍내를 제외하고는 고성의 중심이었지요. 유곡면을 돌아보니 저의 고향마을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부친께서 초등교원이셨고, 1학년 담임선생님이 남자 선생님이셨는데 그분의 자상함에 이끌려 선생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한 적은 있습니다. 결정적인 동인(動因)은 고3 담임선생님들의 확고한 방침이었던 “농부의 아들은 사범대학으로!”에 떠밀린 것이었습니다.(웃음) 문예창작과나 고고학과에 가고 싶었던 마음을 접고 국어교육과를 나와 ‘창작의 지옥’보다는 ‘삶의 감동’을 공유하는 방향으로 인생행로를 재설계하게 되었지요. 홀로 인생일 뻔했는데, 아이들과 어우러진 교직생활로 저 개인적으로는 참 만족스러웠노라고 말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1981년에 교사로 처음 임용되셨습니다. 부임하신 첫 학교에서 맡았던 첫 학급에 대한 기억이 남다르실 것 같은데요.

거제 연초중학교에서 철부지 교사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군 입대로 딱 11개월을 근무했는데, 1학년 여학생 학급과 인연을 맺었었죠. 아이들도 철부지지만 학교만 다니다가 학교로 갔으니 담임교사도 철부지였던 셈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가르쳐야 하는지도 잘 모르면서 젊으니 넘치는 열정에만 기댔던 그때를 떠올리면 참 부끄럽기만 합니다. 그 아이들이 졸업 후 30년이 지나 초대를 한 자리에서 그런 마음을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것은 아이들이 심심할 틈이 별로 없었다는 농담이었습니다. 교과수업 25시간, 특활 2시간, 보충 6시간이 일주일의 기본시수였고, 학예회 두 번과 매일 점심시간 리듬체조와 스카우트 활동 지도에 60권 학급문고를 외상으로 들여놓고는 의무적으로 이어서 읽기 등으로 시간들을 조였으니 저도 정신이 없었는데 아이들이야 오죽했겠습니까?(웃음) 38년 전의 시골학교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고, 아이들과 학부모들도 잘 참아준 것이지요.

▲지금까지 찾아뵙고 계시거나 특별히 생각나는 은사님이 있는지요.

반면교사(反面敎師)라는 말에 깊이 공감하며 교사의 삶을 이어왔습니다. 본받고 싶은 점과 절대로 나는 그러지 않아야지 하는 부분은 대부분 학창시절에 가르치셨던 선생님들에게서 찾게 됩디다. 동료교사들 간에도 상호보완의 팁들이 발굴되곤 했지만요. 돌아가실 때까지 명절 인사를 다녔던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께 격려를 받고 오면 그저 참 좋았습니다. 대학 은사님 몇 분에 대한 흠모의 마음도 교직생활을 지탱하게 하는 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모두 선비 같은 분들이셨습니다.

▲가르치신 학생들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가 있을 텐데요.

사춘기 아이들에겐 제가 자격미달로 보이는 선생이었을 텐데 결혼 주례를 부탁하는 아이들이 더러 있더군요. 부끄러움을 면할 기회를 주었으니 오히려 고마웠지요. 지금 자기 역할을 잘하면서 살고 있는 아이들(제자라는 말이 입에 붙질 않아서)을 보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교직생활 10년차 정도까지 저의 ‘지나친 욕심과 열성’으로 포장된 독선 때문에 갑갑해 했을 남학생 서넛과 어른들의 섣부른 포기로 학교생활을 이어가지 못한 여학생 셋이 30대 초반까지 미숙했던 저의 자화상이란 질책을 받아야 할 기억입니다. 그 이후로 그 빚을 갚는다는 마음으로 국어교사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보려 애써 왔습니다.

이남영 의령 교육장은 "반성문 한 편 제대로 쓰게 하는 지도를 생활교육의 중심에 놓아도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사진=조현웅 기자.

▲교사 27년 반, 교감 2년 반, 전문직 5년 반, 교장 2년 반 등을 하시는 등 다양한 교직 경험을 가지고 계십니다. 기억에 남는 일(에피소드) 하나 정도 소개해 주신다면요.

저는 기록하는 일에 집착하는 편입니다. 일기든 일지든, 저만의 평론이든 ‘저를 기록하고 싶은’ 마음을 스스로 격려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드러내어 밝힐 만한 에피소드를 요구하시니 난감하네요. 저는 ‘하던 대로’나 ‘되는 대로’에 익숙하지 않은 편입니다. 차라리 ‘닿는 대로’나 ‘어차피 할 것이면’에 마음을 두려 하였고, 그런 저랑 공감역이 닮은 5, 6명 협력자들과 ‘상호 멘토’ 역할을 오래도록 유지하면서 끈끈한 ‘SOS팀’으로 기능해 왔습니다. 도움이란 것은 비판적 지적과 합리적 지원, 무한의 지지로 이어가야 1회성이 아닌 면역력으로 자리 잡는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인정하였기에 신뢰는 덤으로 따라왔습니다. 그분들과 함께 머리와 마음을 맞대고 풀어간 문제들에서 체득한 ‘요령’들이 많은 에피소드를 낳았고, 서로의 가슴에 묻어두었거나 아직도 추수활동들이 진행 중입니다. 활자화 하지 못하는 것이 충분히 양해되시리라 생각합니다.

▲평소 말씀하신 내용 중에서 “친절하면 안 되는 일도, 못 이룰 일도 없다” 또는 “인권의 요체는 친절이다”는 것이 인상에 남습니다. 왜 ‘친절’을 삶의 화두처럼 여기시게 되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지요.

반성문(反省文) 써 보신 적 있습니까?(웃음) 반성문 한 편 제대로 쓰는 지도만으로도 아이를 감동시킬 수 있다면, 나아가 부모까지도 감동시킬 수 있다면 이를 생활교육의 중심에 놓아도 되지 않겠습니까. 학교에 있다 보면 10대 아이들과 한 번씩 검찰청엘 드나들 일이 생깁디다. 담당검사가 담임교사에게만 신뢰를 보내니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 마지막 선처를 이끌어내려면 꼭 필요한 것이 반성문입니다. 10대 아이들은 혼란의 시기를 살고 있습니다. 생각을 정리해 기승전결로 풀어내리란 기대는 이론의 영역일 뿐입니다. 담임교사의 친절이 더해지면 아이는 A4 한 장이나 두 장을 가득 채우는 자기 성찰의 글을 쓸 수가 있습니다. 한 문장씩 번갈아 가면서 아이의 마음이 가야 할 방향을 담임교사가 조절해 주는 노력, 그것이 바로 친절 아닐까요. 그런 아이는 다시는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저는 ‘실천적 언행’이 무슨 경전이나 교과서에 웅크리고 있는 추상적 도덕 이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언행일치’는 어려워도 ‘해야 할 말을 하는 것’에 ‘진정성’이 담기면 적어도 손가락질은 받지 않을 것이라 믿음이 있습니다. 이런 체득하는 절차적 경험을 외면만 안 해도 ‘지도를 위한 면역력 키우는 연습’은 자동적으로 일어납니다. 친절한 말, 친절한 몸짓은 그런 면역력을 키우는 영양분이자 감초이지요.

요즘 들어서 수많은 구호를 닮은 말들이 온 세상을 장식하려는 듯 기세가 등등합니다. ‘청렴-공감-소통-인권-교권-폭력-돌봄-배려-관심’ 등등을 화두로 내세웁니다. 이런 말들이 서로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이십니까. 저는 차라리 ‘친절하라!’고 하는 편이 더 낫겠다 싶습니다. 상냥한 말씨나 깍듯한 인사 정도를 친절의 표현이라고 여긴다면 ‘친절의 허상’ 정도만 체득한 탓입니다. 친절의 본질은 ‘알 만큼 알아야 하고, 할 만큼 해야 하고, 지킬 만큼 지켜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니까요!

인권 또한 지켜주는 일보다 스스로 지키려는 의지와 용기가 우선해야 자체 가치가 오롯해집니다. ‘내가 먼저 친절하면 남도 나에게 그만큼의 대우를 한다’는 확신이 없는 사람에겐 세상일이 피곤해질 뿐입니다. 남 탓에 몰입하는 사회 분위기에 우리 아이들까지 매몰되지 않도록 어른들부터, 교사들이 먼저 시작해야 합니다. ‘친절하기 운동’이라도 벌였으면 좋겠습니다. 남들이 모여 우리가 된다는 가장 간단한 사실을 우리 아이들이 체득하는 활동들이 교육과정 곳곳에서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서부경남 다른 지역들도 별반 다르지는 않습니다만, 의령은 유독 인구 절벽이 심한 편입니다. 교육장님의 입장에서 학교교육으로 이런 위기를 극복할 만한 방안이 있으신지요.

오죽 답답하시면, 저에게 뻔한 답이 나올 줄 아시면서 그리 물으시니 저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학교교육의 입장이나 방향성은 분명합니다. ‘한 명의 아이라도 뒤처지지 않도록 보듬어 돌보는 일’에 열중해야 합니다. 얼마나 알고 있느냐는 인지력을 중요하게 여기던 시절을 학교교육에서 잘 감당해 산업화 시대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데 학교교육이 기여한 바가 크다는 것을 모두가 인정합니다. 바뀐 교육과정에서는 미래교육의 패러다임을 ‘창의·인성교육과 진로교육’에 맞춰 핵심역량을 기르는 것으로 전환하지 않았습니까. 소규모학교는 그 나름의 장점을 많이 지녔습니다. 규모가 큰 학교들에서는 엄두를 내지 못하는 개별화 교육이 얼마든지 가능하니까요. 가정 형편까지 두루 살펴서 아이들에게 공정하고 공평한 기회들을 최대한 누리도록 돌보고 이끌어 지리적·사회적 소외감을 최소화하고, 예술적 감성과 언어적 소양을 키워내는 체험학습을 특화한다면 미래사회에서 그 쓸모가 최적화되지 않을까요. 지금 의령의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는 ‘소규모학교 어울림 교육과정’으로 특화한 체육회, 체험학습(수학여행 포함), 두레예술단(오케스트라 2, 가야금동아리, 국악관현악단) 같은 마을교육과정 등 운영을 2 년째 진행 중입니다. 풍부한 예산과 전문인력을 지원할 수 있도록 교육지원청의 역할을 다하고자 합니다.

한 가지 큰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은 경남교육청이 의령군과 함께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미래교육 테마파크’가 완성이 되면 젊은 층 인구 유입도 가능하리란 것입니다. 잘 조성된 공원 같은 환경과 어우러진 융합교육 체험장인 미래교육 테마파크는 창의·융합인재로 키우고 싶어 하는 젊은 학부모들에게 매혹적으로 다가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교육장은 노먼 V. 필의 <적극적 사고방식>을 읽고 성격 변화의 계기를 맞았다고 했다. 사진=종합출판범우 제공.

▲살아오시면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인물이나 닮고 싶은 사람이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도 한 권 소개해 주시지요.

나이별로, 시점별로 본으로 삼고 싶은 분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책으로 만나고, 강연으로 만난 그분들의 올곧은 심지와 극복 의지는 저를 감동과 격동으로 변화시키고 성장시켰습니다. 온 마음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7남매 중 막내라선지 미숙아로 태어난 저를 온 정성을 다해 포기하지 않고 키워주신 부모님이 나이 들어갈수록 감사하다는 생각이 절절합니다. 지금 온 산이 꽃대궐입니다. 유독 꽃을 좋아하셨던 제 어머니가 벚꽃더미 위에 앉아계시리란 상상을 하며 출근을 합니다. 저는 요즘 아이들 말로 외모는 아버지 빼박이, 정서는 어머니 빼박이입니다.

요즘은 읽을 책을 권유하는 일이 참 어려운 시대인 것 같습니다. 고등학생 때 읽었던 노먼 V. 필의 <적극적 사고방식>이 저의 성격 변화에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말로써 대신하렵니다. <이기적 유전자>(도킨스)나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ㆍ<호모 데우스>ㆍ<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등은 상상력과 예지력을 자극합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다시 화제가 되고 있더군요. 30 년 전에는 정말 깜짝 놀랐었는데, 지금 아이들에겐 이 정도쯤이야일지도 모르겠네요.

▲마지막으로 교육자로서 철학, 의령교육장으로서 앞으로 포부를 밝히신다면요.

아이들 교육에 철학을 내건다는 것이 조심스럽더군요. 그저 눈으로 살피고 귀로 듣고, 말이나 글로써 공감하려는 노력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이 일에서 물러난 다음에 저를 기록하면서 정리해 보겠습니다. 스스로 세운 고집 하나를 말하라면, 끝까지 국어교사로 살다가 마무리를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 나이에 품은 뜻이 있겠습니까. 38년 동안 해 온 일이니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영역과 부분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저는 ‘닿는 대로’에 익숙한 사람입니다. 우리 교육지원청 구성원들과 함께 단위학교가 정말 어려워하는 일(업무)을 발굴하여 최선을 다해 돕고 지원하겠습니다. 간섭하지 않아야 할 부분은 지적하고 협의하여 멈추도록 하겠습니다. 진정한 지원과 지지는 단위학교의 면역력(자활과 자생, 대응력)을 키우고 다지도록 하는 일이니까요. 지금 진행 중인 ‘경남교육청 미래교육 테마파크’ 설립과 마무리까지 제대로 매끄럽게 추진이 되도록 필요할 때마다 거드는 일도 중요한 책무입니다. 아울러 우리 교육지원청 청사 이전도 의령군과 함께 탄력을 붙여 추진해야 할 일이므로 교육장으로서 임무를 다할 것입니다.

김성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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