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소질 개발·발견하는 것이 참교육" 고성교육지원청 권우식 교육장
"개인 소질 개발·발견하는 것이 참교육" 고성교육지원청 권우식 교육장
  • 김성대 기자
  • 승인 2019.07.10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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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군 단계리 출신...초등 4학년 때 부산 유학
1983년 통영시 산양중학교에서 첫 교편 잡아
고성군 학교들 '오고 싶은 학교'로 만드는 일 급선무
"대학입시위주교육과 체벌은 사라져야...인권조례는 지지"

경남 고성군 교육지원청 권우식 교육장은 산청군 출신이다. 83년도부터 교편을 잡은 그는 교감과 교장, 장학사와 도교육청 창의인재과장 등 교육자로서 주요 직책들을 거쳐 현재까지 왔다. 천편일률의 대학입시위주 교육 대신 아이들의 저마다 다른 그릇과 개성을 맞춤형으로 키우는 것이 참교육이라 생각하는 권 교육장은 외지에서 출퇴근 하는 교직원들의 고충을 해결해줄 ‘교직원 통합관사’와 가족교육 차원의 ‘최첨단 목공실’ 건립을 임기 내 숙제로 삼고 있다. “선진사회의 바로미터는 인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그의 집무실을 찾아 교육자로서 지난날, 오랜 기간 지녀온 교육 철학을 물었다.

제34대 권우식 고성 교육장. 윤리 교사 출신인 그는 "선진사회의 바로미터는 인권"이라고 말했다. 사진=조현웅 기자.

▲제34대 고성교육장으로 취임하신지 1년이 다 돼 갑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갈수록 어렵습니다. 지역 자치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이 아무래도 교육이고, 고성군에서도 교육 영향을 중시하기 때문에 사실 교육장이라는 자리는 안팎으로 부담스러운 직책입니다. 교육부 정책을 다듬거나 교육감 철학을 담아 정책을 수행하던 도교육청 과장 시절과는 많이 다르더군요. 지역 특색을 고려한 국가 교육 수준의 교육 과정을 운영해야 하는 자리인 만큼 교육자에겐 가장 어려운 자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좀 전에도 학교 3군데를 다녀왔고, 결재 후 한 숨 돌리려던 차에 편집장님을 만나고 있는 건데요.(웃음)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일을 할수록 능력에 부대낌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고성군민들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죠. 그게 공직자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산청이 고향인 것으로 압니다. 어린 시절 자란 환경이나 학창시절에 품었던 꿈 등이 궁금합니다.

저는 산청군 신등면 단계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저희 집은 대발로 된 장판이 깔린 초가였어요. 당시엔 다 어렵게 자라던 시절이었죠. 증조할머니와 할머니, 어머니와 아버지까지 나름 대가족이었습니다. 산청에선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학교를 다니다 4학년 때 부산에 계시는 종조할아버지 댁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 시절 자식에게 공부를 시키려는 집안에선 부산, 마산, 진주 등지에 유학을 보내곤 했거든요. 하지만 그때가 저에겐 어머니 곁을 떠나는 게 정서적으로 힘들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친구도 사귀어야 하는 때에 고향을 떠난 것이죠. 그렇게 한 학년 10반, 학년 당 62명 정도가 있는 부산 부전 초등학교로 가게 됩니다. 아직 중학교 입시가 남아있을 때인데 4학년 땐 정말 매주 시험을 봤어요. 선생님은 주무시지도 않는지 다음날 채점을 해오셨죠. 그렇게 스파르타식으로 공부를 해오다 6학년 초 무시험 전형이 발표되고 학생들은 한숨 돌릴 수 있었습니다. 학창시절엔 방송 PD가 되고 싶었는데요, 부산대학교 다닐 때 영자신문 <부대타임즈> 기자 생활을 하며 품었던 꿈입니다. 말 그대로 꿈으로만 남은 바람이었죠. 전 지금 생활에 너무나 만족합니다. 제 그릇 이상으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만요.

▲교육장 취임 전 고성군과 따로 인연은 없었는지.

‘15일의 인연’이 있었습니다. 과거 거제 종합고등학교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데, 마산 집에서 무려 188km를 출퇴근 했죠. 그러다 고성 중앙고등학교에 자리가 나 근무하게 됐습니다. 2004년 1월 장학사에 합격해 그해 3월 1일자로 중앙고에 발령이 난 거였죠. 그런데 불과 보름 후 인턴장학사로 저는 도교육청에 가야 했습니다. 그 15일이 교육장을 맡기 전 고성과 저의 유일한 인연이었네요.

▲교사, 교감, 교장, 장학사, 창의인재과장 등 다양한 교육 분야 경험을 쌓아오셨습니다. 이 경험들은 지금의 교육장님께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교사로선 중학교 반, 고등학교 반을 맡았네요. 장학사로선 지역청과 본청을 거치며 인사와 교육과정을 담당했습니다. 교감 생활은 마산 구암고등학교에서, 공모 교장 생활은 마산서중학교에서 마쳤고 도교육청 창의인재과장을 거쳐 지금 이 자리에 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거칠 건 다 거쳤네요.(웃음) 그러면서 교육 행정 흐름을 다른 사람보다 조금은 더 경험한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을 해도 성급하게 판단해선 안 된다는 것, 가급적 지역청 담당자님들 의견을 잘 좇아서 조정하고 통합하는데 지난 경험들이 많은 도움을 줍니다. 물론 혁신적인 것도 교육의 한 부분이지만, 혁신이 시대의 트렌드라고 본다면 그 이면에 교육의 본질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본질이란 변함이 없는 일종의 암묵지 같은 거지요. 수업의 본질이 방법이 아닌 내용에 있는 것과 같은 얘기입니다.

▲첫 교편은 어디서 잡으셨나요. 특히 기억에 남는 학생이나 학급은 없는지.

과거 충무시 산양면(현 통영시 산양읍)에 산양중학교가 있었습니다. 83년 9월, 제가 부산대학교 코스모스 졸업을 했는데 8월 말 졸업 후 잠깐 쉬는 사이 발령이 나 근무한 곳이죠.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이었습니다. 제가 오기 전 담임 선생님은 집이 부산이어서 그만두신 상태였구요. 그런데 아이들이 제가 자기들의 옛 담임을 쫓아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웃음) 알고 보니 전 담임께서 아이들에게 많이 자상하셨다더군요. 특히 부반장 여학생이 저를 많이 싫어했는데, 그 여학생이 지금도 한 번씩 연락이 옵니다. 당시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에 갈 형편이 못 됐던 학생인데 대학을 나와 지금도 연락하는 친구죠. 그 외 제자들 중엔 법관이 된 친구도 있고, 현직 검사도 있습니다.

▲살아오면서 인간 권우식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이라면 누구일까요.

어머니입니다. 어머니께선 절 힘들게 키우셨어요. 얼마 못 사셨는데, 어머니의 그 헌신적인 모습들과 자식에 대한 하염없는 사랑을 늘 기억하며 삽니다. 사실 그 영향으로 저 역시 사람을 쉽게 못 대해요. 살면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사람이어서, 제가 사람을 중시하는 모습은 오롯이 어머니의 영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아있는 모범이셨죠. 살아가며 매순간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납니다. 교육이란 결국 사랑과 인내, 배려이기 때문에. 제가 교직에 몸 담아 분에 넘치는 직책을 맡게 된 것도 다 어머니의 영향이라 봅니다.

▲취임소감에서 “한 명의 아이도 놓치지 않는 따뜻하고 촘촘한 맞춤형 책임교육, 로컬 에듀 프로젝트와 행복교육지구를 통한 배움 중심 수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은 면 지구 내 한 명의 아이가 천금 같은 시대입니다. 아이들은 국가 입장에서도 큰 기둥이죠. 결국 촘촘하다는 말은 나라와 사회 전체가 학생들을 배려하고, 아이 한 명 한 명의 형편과 인성, 성격을 중시한다는 얘기입니다. 즉, 아이에 맞춰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단순히 아이를 얼러 키우는 게 아닌 맞춤형으로 키우고, 아이가 가진 장점을 최고조로 신장시키는 게 바로 교육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곧 지역사회 경쟁력, 국가 경쟁력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로컬 에듀 프로젝트란 지난 교육장님 때부터 해온 부분으로,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통해 새것을 안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을 오니(溫) 고니(故) 지니(知) 시니(新)로 캐릭터화 한 것입니다. 교육의 연계성은 그것이 합당하다면 내실 있게 다지고 부족한 건 메워가야 한다고 저는 생각하는 쪽입니다. 끝으로 행복교육지구는 지역중심마을학교, 학생중심마을학교, 학교중심마을학교라는 세 가지 영역을 어우르는 개념입니다. 군 단위에선 비교적 많은 편인 마을교사 116명과 마을학교 16곳을 통해 지역에 맞고 학생에 맞는 교육을 실행하는 것이 취지입니다. 현재로선 매우 희망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디어팜과 인터뷰 중인 권우식 교육장. 권 교육장은 국영수 중심의 대학입시위주 교육이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조현웅 기자.

▲고성군의 교육 현장에 가장 필요하거나 시급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고성군의 학교들을 ‘오고 싶은 학교’로 만드는 일입니다. 이는 교육청의 노력만으론 안 되는 일인데요. 사실 진주나 창원 쪽에 시골학교의 장점을 알고 있는 젊은 학부모님들이 많습니다. 시골학교에 오면 악기 하나는 배울 수 있거든요. 고성 구만면에서 창원까지가 차로 30분 거리. 그리 멀지 않은 거리입니다. 문제는 외지 사람들이 고성에서 살 집이 마땅히 없다는 겁니다. 제 생각에 이 문제는 지자체에서 시골의 쓰러져 가는 집들을 리모델링해 5~10년 동안 외지인들이 와서 살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 같거든요. 주거지만 해결돼도 고성군을 비롯한 군 단위 시골 인구가 늘 것이라고 저는 봅니다. 군 단위는 알고 보면 아이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갖춘 곳입니다. 특히 시골 초등학교는 아이 돌봄 기능도 잘 이뤄지고 있죠. 

▲나아가 한국 교육의 가장 중대한 현안은 뭘까요.

대학입시위주 교육입니다. 대학을 가기 위한 교육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영수 위주 교육을 벗어나 학생 개인의 소질을 발견하고 개발하는 교육으로 가야 합니다. 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충분히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낼 수 있는 그런 교육이 필요한 것이죠. 이를 위해선 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가 선행돼야 합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중소기업에 취업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대기업과 임금 격차가 너무 심하기 때문이죠. 많이 받는 사람은 그만큼 내놓고 적게 받는 사람들의 최저 임금은 맞춰주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자기만 생각 않고 사회 공공성을 생각하는 것. 노조 운동도 그런 쪽으로 갔으면 싶습니다. 교육 역시 그런 토양에서, 내 아이만이 아닌 모든 아이는 우리 아이다, 이른바 ‘모아우아’ 정신을 살려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입시위주 교육은 아이들을 갉아먹지만 타고난 소질에 따른 맞춤형 교육은 아이들을 성장시킵니다. 대학은 공부할 사람이 가야 합니다. 졸업장을 따기 위해 가선 안 됩니다.

▲경남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찬반양론이 팽팽합니다. 교육장님은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신지요.

체벌이 사라져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개인의 인권입니다. 한 사회를 놓고 볼 때 그 사회가 얼마나 문화사회이고 고급사회인지를 알 수 있는 척도는 인권을 얼만큼 중요시 하느냐입니다. 인간의 정신문화와 문화체계의 선진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국민소득 3만불이 아니라 바로 인권 보장입니다. 선진사회의 바로미터는 인권인 것이죠. 학생인권조례는 교육계가 나름 힘있게 기울여온 노력이었는데 좌절 되어 아쉽습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단위 학교에서 남을 업신여기고 남에게 해코지를 하고 장난삼아 남을 건드리는 학생들은 각성해야 합니다. 그런 학생들 때문에 우리 학교의 문화가 나빠지는 거죠. 인권조례의 본래 취지가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문화였습니다. 그걸 바탕으로 한 ‘교육인권경영’이 학교 현장에서 잘 펼쳐져 나쁜 행동을 하는 학생, 이유 없이 남을 건드리는 학생, 남을 배려하지 않는 학생들이 점점 사라졌으면 싶었습니다. 그러면 학교폭력문제도 자연스럽게, 서서히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도민들의 뜻이 그러하기 때문에 조금 방향을 달리 잡고 추진해보는 것도 어떨까 싶습니다.

▲임기 내 이것만은 이루겠다는 일이 있을까요.

교직원 통합관사를 통해 외지 출퇴근으로 힘들어하는 교직원들이 고성을 떠나지 않도록 하는 일입니다. 군과 협력을 통해 임기 내 삽이라도 뜰 수 있으면 좋겠구요. 가족교육 차원에서 최첨단 목공실을 만들어 고성 학생들이 좀 더 창의적으로 노작활동을 해볼 수 있는 공간 설립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도교육청 지원을 받아 장소는 이미 잡혀있는 상태입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교육장으로 기억되고 싶으신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교육지원청 식구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교육장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을 얻고 마음을 주는 교육장, 마지막 순간까지 소임을 다하는 공직자가 되고자 합니다. 그게 소망입니다.

김성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