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은 관심과 관계의 학문” 이성철 창원대 교수
“사회학은 관심과 관계의 학문” 이성철 창원대 교수
  • 김성대 기자
  • 승인 2019.03.22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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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대학교 사회학과 이성철 교수. 미디어팜과 인터뷰 후 한 컷. 사진=김성대 기자.

창원대학교 사회학과 이성철 교수는 영화와 사회학, 미술과 사회학의 관계에 대해 늘 고민하는 학자다. 부산 서대신동 출신인 그는 <경남지역 영화사>와 <안토니오 그람시와 문화정치의 지형학> 같은 책을 냈고, 켄 로치와 지아장커를 좋아하는 영화 감독들로 꼽는다. 사회학을 '관심과 관계의 학문'이라 정의내리는 이 교수는 취할 만한 정보를 준다는 전제 아래 드문드문 소설을 읽는 편인데 최근 읽은 에이모 토울스의 <모스크바의 신사>가 바로 그런 책이었다. 현재 중국 다큐멘터리 <나의 시편>을 분석하는 논문을 준비 중이고, <그림이 사는 세상>이라는 미술 관련 사회학 책을 집필 중이다. 그를 만나기 위해 갓 개강한 창원대학교 사회대를 찾았다.  

 

▲고향이 창원인가.

부산 서대신동 토박이다. 일본에서 일하시던 아버지가 해방 후 서대신동에 정착했다. 부산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고, 고등학교 땐 학생회장도 지냈다. 6남 1녀 중 막내다. 아버님은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돌아가셨다. 생활력이 굉장히 강하셨던 어머님은 엄격함 대신 사랑을 듬뿍 주셨다.

▲학창시절 때부터 책과 영화를 좋아했을 것 같다.

영화는 보통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 수준이었다. 어릴 땐 영남극장에서 <황금박쥐> 같은 만화영화를 본 기억이 난다. 책을 많이 보기 시작한 건 대학에 입학해서부터다. 2학년 땐 전공서적들을 집중해서 봤다. 당시만 해도 학업에 쫓기는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삼중당문고판이나 범우문고판들을 많이 읽었다. 서대신동에서 학교까지 버스로 가는 시간이 제법 걸려 차 안에서도 독서를 했다.

▲자신을 사회학으로 이끈 책 또는 학자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 그리고 좋아하는 영화와 감독도.

제가 대학교 2학년 땐 국내에 번역된 사회학 책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동아리를 만들어 원서를 함께 공부하곤 했다. 원서들 중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번역한 C. 라이트 밀즈의 <사회학적 상상력>도 있었고 스페인 내전에 참여한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 이탈리아 여기자 오리아나 팔라치에 관한 책들도 있었다. 그 시절 사회학과, 철학과 교수님들이 주로 사회 문제와 관련 있는 책들을 소개해주신 건데, 당시 정서에도 맞았던 것 같다. 요즘엔 역사와 미술책들을 주로 읽는다. 좋아하는 감독은 영국의 켄 로치와 부산국제영화제에 단골로 오는 지아장커, 그리고 <파이란>을 연출한 송해성 감독을 좋아한다.

▲그러지 않아도 ‘영화와 사회학’이라는 측면에서 켄 로치 감독이 교수님과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이 감독에 관해 좀 더 이야기 해달라.

켄 로치는 법학을 전공하다 영화로 전환한 사람이다. 원래는 영화감독이 아니고 BBC 드라마 연출자였는데, 대처 정부 출범과 함께 탄광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청소 노동자 이야기를 다룬 <빵과 장미>처럼 주로 노동을 다루는 그의 영화들은 노동자들의 일반적 투쟁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대신 노동자들이 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드러내는 장치들에 더 주목한다. <케스> 같은 영화로 키친 싱크 리얼리즘(Kitchen-Sink Realism, 부엌을 영화미학의 주요한 소재로 삶은 사조)을 대표한 켄 로치는 노동 운동을 지도했던 간부들이 대처 정부에 매수되고 어용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을 그린 다큐 <당신은 누구 편입니까>와 대처 정부에 들어 철도가 민영화되면서 노동자들이 겪는 갈등을 다룬 <네비게이터> 같은 작품들로 끊임없이 대처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는 대처 정부에 평생을 저항했던 감독이다.

대처 정부 철도 민영화를 다룬 켄 로치 감독의 2001년작 '네비게이터'의 한 장면. 이성철 교수는 이 작품이 켄 로치 영화들 중 가장 슬픈 영화라고 말했다.
대처 정부 철도 민영화를 다룬 켄 로치 감독의 2001년작 '네비게이터'의 한 장면. 이성철 교수는 이 작품이 켄 로치 영화들 중 가장 슬픈 영화라고 말했다.

▲최근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과 본 영화가 있다면.

에이모 토울스가 쓴 <모스크바의 신사>를 재밌게 읽었다. 러시아혁명 성공 후 지위가 추락한 백작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체제들을 우회해가면서 사회주의를 풍자하는, 100년 이후 러시아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역사 소설이다. 1년 정도 책을 읽고 4년 정도 책을 쓴다는 토울스의 이 책은 더디게 진행되는 도입부 100페이지만 견디고 나면 그 다음부턴 흥미진진하게 즐길 수 있다. 제가 원래 소설을 잘 안 읽는데 이 작품엔 러시아 역사 등 정보들이 많이 담겨있어 좋았다. 최근 영화들 중엔 흑인 차별주의가 만연해 있던 60년대 미국 남부지방에서 백인과 흑인이 어떻게 융화해나가는지 과장되지 않게 풀어낸 <그린북>과 스튜어트 왕조의 마지막 군주인 앤 여왕 곁에 있던 두 여인의 암투를 그린 <페이버릿>을 재밌게 봤다.

▲조금 원론적인 질문이다. 사회학은 어떤 학문인가.

사회학은 관심과 관계의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사회학은 순수학문에 가까워 이론들이 많은데, 그 복잡한 이론들의 키워드는 결국 ‘관심과 관계’가 아닐까 저는 보는 것이다. 사실 인간 사이의 관계, 조직과 국가의 관계는 평등한 관계가 아니다. 이러한 관계를 어떻게 하면 바람직한 관계로 복원할 수 있는가, 사회학은 이런 쪽에 관심이 많다.

▲현재 연구하고 있는 건.

쓰려는 논문 하나와 책 한 권이 있다. 중국에서 나온 <나의 시편>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있는데, 중국의 신세대 농민공(중국에서 농촌을 떠나 도시에서 일하는 하급 이주노동자를 일컫는 말)들 중 민중시인 10명이 자기 시를 읊고 그 시에 담긴 의미를 이야기 하는 내용이다. 이 다큐멘터리를 분석하는 논문을 쓰려고 한다. 이전 농민공과 지금 농민공의 차이 등을 논하고 다큐에 나오는 가사에 중국의 경제지표 및 사회지표를 끌어다 쓰는 쪽으로 갈 것 같다. 또 하나 <그림이 사는 세상>이라는 미술 관련 사회학 책을 한 권 낼 예정이다. 이 작업을 위해 3년 정도 실제 미술 공부를 했다. 사실 미술사는 곧 사회사다. 이 책은 미술 전공자가 아닌 사람이 미술을 이야기 하려는 게 아니라 미술을 통해 사회학을 이야기 하려는 시도이다. 동양미술사는 본격적으로 건들지 못했고 서양미술사 중심으로 채워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파업을 공익에 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최근 진주시를 떠들썩하게 만든 삼성교통 파업도 그랬다. 물론 파업에 호의적인 사람들도 있지만 시쳇말로 ‘빨갱이들’이라며 노동운동을 비하하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그에 못지않게 많다.

노동운동이 파업으로 돌입하는 가장 큰 이유는 노동자들의 생계나 고용에 미칠 사항들을 노동자들이 신문기사 등을 보고 알게 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노동자들의 투쟁도 그랬다. 혹자들은 해당 인수가 조선 산업 경기를 활성화시킬 것이다, 너무 중첩적이고 경쟁력이 없으므로 통합이 맞다, 장기적으로 보면 조선 산업에 더 좋은 일이다고 했다. 일리 있는 말들이다. 하지만 생계 걱정을 하는 노동자들의 귀엔 그 말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 아예 그런 정보를 처음 들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사측과 노조간 신뢰가 무너지는 것이다. 알려진 바로는 해고와 실업의 심리 상태는 배우자가 죽는 충격과 같다고 한다. 파업을 하는 노동자들의 심리는 굉장히 불안한 상태라는 얘기다.

▲강의 때 가장 염두에 두는 점은 무엇인가.

‘쉽게 이야기 하는 것’이다. 책 속에 담긴 내용들을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쉽게 전달할까를 늘 고민한다. 특히 사회학 이론들이 추상적이고 관념적이어서 더 그렇다. 예를 많이 든다든지, 그림을 그려서 표현한다든지 해서 이론의 현실적 의미, 맥락을 재밌고 쉽게 전달하려 늘 노력한다.

▲<경남지역 영화사>, <영화가 노동을 만났을 때> 등 영화와 지역, 영화와 노동을 묶어 사유하는 작업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시는 것 같다. 두 책을 집필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는지.

<영화가 노동을 만났을 때>는 영화를 보고 자료를 찾아 썼던 거라 개인적으로 해결하면 됐다. 하지만 <경남지역 영화사>는 딱히 참고할 만한 자료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자료 발굴 과정에 공을 좀 들여야 했다. 예컨대 창원 중앙동에 있던 상남 영화제작소의 옛 항공사진을 구한 일, 현재 사진과 대조해 옛 상남 영화제작소의 위치를 찾아낸 일, 80~90세에 접어든 관련 생존자들의 인터뷰, 통영의 최초 극장을 찾은 일 등 발품을 많이 팔았다. 그야말로 현장에 답이 있었다.

이성철 교수가 2015년 5월에 발간한 <경남지역 영화사> 표지. 이 교수는 책 집필에 필요한 자료 발굴을 위해 적지 않은 발품을 팔아야 했다고 했다. 사진제공=호밀밭.

▲앞으로도 비슷한 작업을 계속 해나갈 건가.

마산, 창원, 통영만 발굴했고 진해와 진주는 못했다. 그나마 진해는 더듬을 게 좀 있는데 진주가 잘 안 나타난다. 아이디어와 자료만 있으면 바로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그리고 상남 영화제작소 생존자들의 구술도 받아둘 계획이고, 필름은 발굴됐지만 목소리는 사라진 김기영 감독의 <죽음의 상자>를 복원하는 작업도 해나갈 것이다. 알고보면 지역민들이 흘려버리지 않고 만져서 키우려는 일들이 더러 있다. 이 일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다른 사람들과 연계해 활동을 하려면 연구비가 있어야 한다. 창원시의 지원이 필요하다.

▲<안토니오 그람시와 문화정치의 지형학>이라는 책도 쓰셨다. 그람시가 지금 한국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람시는 전통 마르크스주의나 스탈린주의에서 벗어나 경제결정론 및 문화를 강조한 사람이다. 그의 책 <옥중수고>를 보면 대중문화에 관한 글들이 많은데, 때문에 그는 한국 사회문화 현상을 분석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아이디어를 던져주는 사람이다. 한때 그람시는 정치와 혁명 이론가로만 한국에 알려졌지만 그는 늘 교육과 문화의 힘을 강조했다. 그람시 이론의 핵심은 변혁론이 아닌 문화론이었다. 레이먼드 윌리엄스, 이피 톰슨(Edward Palmer Thompson) 같은 거장 문화 이론가들이 다 그람시 주의자들이었다는 건 우연이 아니다.

▲언젠가 '청년세대와 '케 세라 세라''라는 글에서 “세대간의 생물학적 간격은 있을지라도 세대간 차이는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쓰셨다. 지금 한국 청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우리 사회에서 계급 문제 못지않게 심각한 것이 세대간 문제다. 어르신들은 "나라를 이만큼 세우는데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너희들이 감히~"라며 섭섭해하고, 청년들은 "그런 공을 무시하는 건 아닌데 어른들이 구축해놓은 고용구조는 우리가 자유롭게 진출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어서" 섭섭해한다. 요즘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자기 의견을 잘 말하지 않는다. 질문도 별로 않고. 그런데 막상 학생들과 식사를 하거나 소주라도 한 잔 기울이면 참신한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온다. 겉으론 조용했어도 평소 온갖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거다. 나는 실제 그런 학생들에게 많이 배운다. 부디 그들이 더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삶과 마주했으면 좋겠다.

김성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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