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권씩] 대우가 남긴 패배의 기록 '김우중 비사'
[한 달에 한 권씩] 대우가 남긴 패배의 기록 '김우중 비사'
  • 자율바람
  • 승인 2020.01.06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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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비사: 대우그룹 자살인가 타살인가> 표지. 사진=한국경제신문.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던 사람, 김우중.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은 한국 기업사에 확실한 족적을 남겼다. 30여 년간 불패신화를 써나가던 대우의 패망은 1999년 7월에 이루어졌다. 대우 파멸의 과정은 여러 파문을 남긴 채 허무하게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김우중은 마치 칭기스칸이 그랬듯 '중심은 아닌, 그래서 변방으로' 자신의 세력을 확장시켰던 야만지대의 정복자였다. 하지만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신천지로 떠오른 동유럽과 중앙아시아를 정신없이 질주했던 김우중과 그의 군단을 기다렸던 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닌 개도국 전체를 함몰시켰던 세계적 금융위기와 처철한 미국 금융자본의 논리"였다. 그와 대우는 그 논리에 의해 처참한 패배를 경험해야 했다. 이 책은 바로 그것에 대한 기록이다. 즉 승리의 기록이 아닌 패배의 기록인 것이다.

대우 패망은 자살인가, 타살인가? 자살의 정황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대우는 사실 거대한 부채 덩어리였다. 부실을 알고 있던 몇몇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미 1970년대 초부터 대우 부도설을 언급하곤 했다. 언제든 부도날 수 있는 기업, 동시에 스스로를 무한 확장시키며 굴러가는 기업이 대우였다. 또한 분식회계 문제도 심각했다. 1996년 8월에 젊은 공인회계사들이 대우의 분식회계를 언론에 공개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을 정도로 대우 분식의 전통도 오래된 것이었다. 대우는 그야말로 '거대한 부실 공룡' 그 자체였다. 대우 사태가 터지자 대우 직원들 사이에서도 대우 그룹에 대한 평가가 엇갈렸다. 특히 대우 그룹의 재무 라인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김우중 회장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을 숨기지 않았다. 이는 대우 그룹의 영업 라인, 사업 라인에서 일했던 직원들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거대한 부실은 1997년 외환위기 국면을 거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수렁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IMF의 고금리 처방은 부채 덩어리였던 대우 그룹으로선 견디기 힘든 조치였을 것이다. 대우는 그렇게 그 스스로의 부채에 의해 '예정된 실패'의 수순을 밟아갔다.

하지만 '예정된 실패'로만 치부하기엔 타살의 정황도 분명하다. 1998년, 정권교체로 출범한 김대중 정권의 신흥 경제관료들은 대체로 반재벌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재벌해체'라는 말까지 들고 나올 정도로 급진적이었다. 하지만 정권 기반이 약했던 김대중 정권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과격한 정책 일변도의 국정운영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의 재벌해체론은 대우라는 대기업 하나만을 해체하는 수준에서 만족해야만 했을 지도 모른다. 만약 김대중 정권의 신흥 경제관료들이 대우 사태를 핸들링하지 않았다면 과연 대우 그룹이 망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1999년 7월에 김우중 회장이 자신의 전재산을 내놓기로 하자 강봉균 재정경제부 장관은 김 회장이 "대주주 권한을 잃었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다녔다. 김 회장 퇴진과 그룹해체를 염두에 두지 않고서는 하기 힘든 말이었다. 강 장관이 이런 말을 할 때마다 대우 주가는 폭락을 거듭했다. 대우 사람들 입장에선 안 그래도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가 자기들을 죽이려 든다는 생각을 하기에 충분한 발언이었다. 강 장관은 기업의 부채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관료적 사고구조 아래서 재무재표상 부실을 가진 대우는 이른바 '나쁜 기업'이었고, 김우중은 '사기꾼'에 가까운 사람이었을 것이다. 신흥 경제관료들은 이미 1998년 말부터 회사채와 기업어음의 보유한도제를 도입하면서 대우를 압박해 들어가고 있었다. 보유한도는 15%였다. 이 한도를 넘는 대기업은 대우 밖에 없었다. 관료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15%라는 숫자를 정했을까? 당연히 시중에선 대우 기획 해체설이 나돌 수밖에 없었다. 시장에선 삼성캐피탈을 필두로 대우 여신이 빠르게 회수되어갔다. 대우의 자금줄이 본격적으로 위기에 봉착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의도적이었든 아니었든 간에 강봉균, 이헌재로 대표되는 신흥 경제관료들은 차분히 그들의 방식대로 대우 해체를 가속화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 순간 김우중은 한판 대역전극을 노리고 있었다. 그것은 삼성과의 빅딜이었다. 삼성과 대우 간 빅딜은 대우가 대우전자를 삼성에 넘기고, 대신 삼성자동차를 대우가 인수하는 방식으로 추진되었다. 김 회장은 빅딜을 통해 삼성으로부터 상당 규모 자금지원 보장을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삼성과의 빅딜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1999년 6월 30일, 삼성은 '삼성자동차 법정관리 신청'을 전격 발표한 것이다. 삼성과의 빅딜 무산 이후 대우 그룹은 급전직하로 패망의 길을 걷게 된다. 대우 김우중과 삼성 이건희라는 재계의 두 거물 간 일생일대 대결은 이렇게 허무한 결말을 남기고 만다.

김우중의 꿈은 이제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 그의 좌절된 꿈은 무엇이었을까. 해외 현지법인 396개. 국내 법인까지 합하면 589개 회사를 거느렸고, 93개 해외 공장을 지어냈던 그 꿈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집요하게 그를 괴롭히던 신진 사류들과 그를 물어뜯고 기어이 살점을 찍어냈던 해외의 포식자들과 세계 경영을 역포위해 왔던 IMF 위기와 그 모든 것에 대해" 이제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2019년 12월 9일, 그는 83세 일기를 끝으로 모험적이고 고단했던 삶을 마감했다. 한편에선 세계 경영을 꿈꾸던 기업가, 다른 한편에선 외환위기를 초래한 경제사범이라는 평가가 엇갈렸던 그의 삶을 하나의 전설로만 남기기엔 못내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글/자율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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