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권씩] 한국의 4차 산업혁명을 가로막는 것들 '대한민국 규제백과'
[한 달에 한 권씩] 한국의 4차 산업혁명을 가로막는 것들 '대한민국 규제백과'
  • 자율바람
  • 승인 2019.04.13 15: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혁신 성장의 핵심은 기술 개발이 아니라 규제 개혁이다.”

저자 최성락 교수는 이 책에서 한국의 4차 산업혁명을 가로막는 여러 규제들에 대해 소개한다. 한국규제학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는 “한국의 규제는 ICT 융합이 이루어지기 전과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기술이 나오기 전의 환경에 알맞게 만들어져있다”고 말하면서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기술의 개발에 맞게 규제가 개혁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새로운 기술을 활용할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중국 명나라 시대의 ‘원양 항해 금지‘ 규제가 어떻게 정화의 대함대와 같은 당대 최고의 항해기술을 보유하고도 그것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나아가 중국이 어떻게 시대의 흐름에서 뒤처지게 되었는지를 소개한다. 잘못된 규제는 결국 우수한 기술의 보유에도 불구하고 기술을 활용할 기회를 상실케 만든다. 명나라의 우수한 항해기술의 활용이 정부 규제에 가로막히게 되자, 더이상 항해기술을 발전시킬 유인을 잃게 만들었고, 중국문명이 서양문명에 먹히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게 된 것이다. 우리도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규제개혁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할 필요성에 부합하여 이 책의 가치를 평가할 만하다.

모든 규제는 아름다운 말들로 포장되어 있다. 안전, 환경보전, 공정, 복지, 인권 등의 말들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그 중 안전과 관련된 대표적인 규제가 바로 드론에 관한 규제이다. 물론 드론을 하늘 위에 띄우는 것은 여러가지 사고 위험을 수반한다. 드론이 날아다니면 항공기, 헬리콥터, 고층건물 등과 충돌할 위험이 높다. 따라서 공항이나 도심 지역에서는 드론 비행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어떤 나라든 안전을 위해 드론 비행과 관련한 지역 규제가 있다. 하지만 규제방식에 있어서 미국과 한국은 차이가 있다. 미국은 소위 '네거티브 방식'을 취하는 반면, 한국은 '포지티브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국은 드론 비행이 가능한 구역을 31개로 지정해놓고 그 외 지역에선 드론을 날릴 수 없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반면 미국은 규제 지역 외 어느 지역에서든 드론을 날릴 수 있게 되어 있다. 따라서 미국은 규제 지역을 피하기만 한다면 어디든 드론 비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드론을 통해 먼 곳으로 택배를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정된 지역 내에서만 드론을 띄울 수 있기 때문에 드론이 지정된 구역을 벗어나면 불법이 되므로 먼 곳으로 드론을 보낼 수 없게 된다. 사정이 이렇다면 국내에선 드론을 이용한 택배업이 불가능하다. 결국 포지티브 방식의 드론 비행 규제가 4차 산업혁명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드론에 의한 택배업'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한국에서도 규제 방식을 포지티브 방식에서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꾸자는 논의가 진행되어 왔지만 '안전'이라는 절대가치(?) 앞에 규제개혁이 번번이 무산되어 왔던 것이다.

이 책은 드론 산업에 한정되지 않고 여러 산업의 잘못된 규제에 대한 예시를 들고 있다. 그 중 4차 산업혁명의 대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공유경제와 관련된 언급도 있다. 공유경제의 대표적인 사례로 우리는 우버와 에어비앤비를 들곤 한다. 각각은 차량 공유 서비스와 숙박 공유 서비스를 대표하는 미국의 기업이다. 하지만 한국의 규제환경에서 두 서비스는 불법이다. 미국에선 우버로 인해 택시비가 40% 정도 감소하고 다양한 형태의 수익모델이 창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선 규제의 벽에 가로막혀 이런 새로운 서비스 산업을 향유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이러한 공유경제 서비스가 기존 택시업계와 숙박업계의 이해관계와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는 데 있다. 정치권은 택시업계와 숙박업계라는 이익집단의 눈치를 보느라 관련 규제의 개혁에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가 이익집단의 이해와 국민 전체의 이해 중 하나를 사회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문제라고 지적한다. 즉, 택시업계와 숙박업계의 기득권 보호를 위해 정치권이 규제개혁에 미온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결국 국민 전체의 이익을 무시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규제개혁은 우리 사회의 기득권 정치의 한계를 타파해야 하는 또다른 과제와도 연결되어 있어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위에서 규제개혁과 관련된 두 가지 사례만을 제시하였지만 이 두 사례를 통해 언급된 규제방식 문제과 기득권 정치의 문제는 규제개혁의 핵심 주제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규제개혁의 핵심은 법이나 규정을 통해 사회를 개혁시킬 수 있다는 환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현실은 법이나 규정을 통해 규제되어지지 않는다. 법과 규정은 현실을 따를 뿐이다. 네거티브 방식으로의 규제개혁은 규제를 최소화하고 자유의 영역을 최대화하려는 적극적인 노력 없이는 실현될 수 없다. 이는 비단 드론 산업에만 국한된 논의가 아니라 핀테크, 빅데이터, 인공지능, 공유경제와 같은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다양한 신산업 전 분야와 관련돼 있다. 또한 기득권 보호에만 매몰되어 새로운 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방식으로 정치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사회의 발전 동력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기득권 보호의 정치는 결국 새로운 산업발전을 가로막을 뿐 아니라 기득권 보호의 목적도 실현시키지 못할 것이다. 법과 규제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 대세에 따라 법과 규제를 바꾸어야 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일독함으로써 법과 규제의 당위성이 현실성을 잃어버릴 때 법과 규제가 그 순기능을 잃어버리고 얼마나 사회에 역기능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확인하게 될 것이다.

글/자율바람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