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권씩] "1원도 안 받은 뇌물죄" 탄핵 인사이드 아웃
[한 달에 한 권씩] "1원도 안 받은 뇌물죄" 탄핵 인사이드 아웃
  • 자율바람
  • 승인 2019.02.01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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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 형사사건에서 대통령 변호인단 중 한 사람이었던 저자는 박 전 대통령 탄핵사태의 진실을 "1원도 안 받은 뇌물죄"로 축약했다. 사진=기파랑 제공.

“1원도 안 받은 뇌물죄.”

저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사태의 진실을 이 한 마디로 축약했다. 그는 이 사건의 본질을 “거짓이 진실을 덮고, 법치가 정치에 굴복한 과정“이라고도 표현했다. 한 인간의 현상에 대한 인식이 이러할진대, 그리고 대통령 변호인단의 한 사람으로서 그러한 인식의 심화과정을 경유한 사람의 심리상태는 그저 언론의 여러 파편적 정보들로만 현상을 인식한 사람의 그것과는 매우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아마도 그러한 복잡한 심리상태의 발로였을 것이다. 지난 탄핵사태의 전말은 어쩌면 저자의 표현대로 거대한 ‘거짓의 산’이었을 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도 촛불혁명의 감성적 분노로부터 벗어나 이성의 힘에 따라 지난 탄핵사태에 대해 반성적으로 고찰해볼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정신없이 휘몰아치던 감정의 폭발 속에서 우리는 잠시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정신을 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가져다주는 차분함의 기질에 의탁할 수만 있다면 이 책은 분명 반성적 사고의 좋은 안내자가 될 것이다.

<탄핵 인사이드 아웃>은 저자가 2016년 11월에 유영하 변호사의 제안으로 대통령을 돕기 시작했을 때부터 2017년 10월 16일 박 전 대통령 형사사건에서 변호인단이 총사퇴하여 일상으로 돌아올 때까지의 경험을 포함하여 최근까지 벌어진 탄핵 관련 재판들의 법리적 쟁점들을 시간 순으로 정리한 책이다. 그동안 탄핵사태와 관련하여 여러 책이 출간되었으나 탄핵사건을 시간순으로 정리한 책은 이 책이 처음이다. 책은 국회의 탄핵소추안 발의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저자는 이때부터 대통령 탄핵사태를 ‘정치탄핵’으로 규정한다. ‘정치탄핵’이란 정치가 법치주의 위에 군림한다는 뜻이다. 민주주의가 ‘법의 지배’를 전제한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정치의 법에 대한 군림‘은 곧 민주주의의 파괴를 의미한다. 2016년 12월 3일에 발의된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불과 6일 후인 12월 9일에 국회에서 가결된다. 6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소추사유에 대한 증거조사가 이루어질 리 만무했고, 소추사유조차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채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었던 것이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탄핵심판과정은 이후 언론의 여론몰이와 정치권의 지원사격에 의해 진실의 은폐로 점철되었고, 사실관계에 대한 철저한 증거조사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오히려 잘못된 소문과 정보들이 여과없이 국민들에 의해 사실로서 간주되었고, 정치권은 이를 이용하여 선전과 선동의 도구로 삼았다. 

굿, 섹스, 최순실 아바타 등의 조작된 허상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이미지에 덧씌워졌으며, 나중에 모두 허위로 밝혀진 이런 루머들이 결국 탄핵정국을 주도하게 되었다. 저자가 경험한 탄핵심판의 과정은 정치에 의해 법치가 훼손된 하나의 모범적 사례였다. 법치의 최후 보루여야 할 헌법재판소마저 신속한 재판을 이유로 공정한 재판은 희생되어도 무방하다는 듯, 탄핵결정의 시한을 2017년 3월 13일(이정미 재판관의 퇴임일) 이전으로 정하기에 이른다. 신속한 재판의 미명 아래 태블릿 PC에 대한 증거조사, 고영태 녹음파일에 대한 검증, 변호인단이 요청한 핵심 증인의 채택 등이 모두 거부되었다. 결국 2017년 3월 10일에 박근혜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파면되었다. 정국은 혼란스러웠고, 정치는 모든 것을 주도했으며, 사법부는 법치주의를 정지시켰던 것이다. 이후 벌어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형사재판도 탄핵심판이 낳은 프레임에 따라 진행되었다. 박 전 대통령은 항소심에서 뇌물죄 등이 인정되어 징역 33년 형과 벌금 200억 원을 선고받았고, 현재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35년간 한국에 거주한 영국의 전 언론인 마이클 브린(Michael Breen)은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에 기고한 ‘한국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분노한 신이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한국에서 민중의 감정이 일정한 선을 넘으면 강력한 야수로 돌변해 정책 결정 과정과 확립된 법치를 붕괴시킨다. 한국인들은 이를 민심이라고 부른다. 정확한 표현은 군중의 감정이다”라고 쓰고 있다. 그러면서 “민심이라는 야수는 잠시라도 멈춰 생각하는 법이 없다”고 덧붙인다. 탄핵정국과 촛불혁명의 야수성은 프랑스 혁명기의 ‘공포‘를 떠올리게 한다. 민주주의는 광장 위에 존재하지 않는다. 광장 위에는 야수와 공포만이 남을 뿐이다. 민주주의는 ‘법의 지배’를 근간으로 하는 근대적 법과 제도 위에 존재한다. 지금 우리는 역사적 선택의 순간에 서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탄핵사태로 인해 타락한 우리의 정치조직을 다시 바로 세우느냐, 아니면 민심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당파 독재정치에 국가의 미래를 맡기느냐의 선택일 것이다. 선택은 역사의 향방을 결정한다. 현명한 선택을 원한다면 우리는 대통령 탄핵을 야기했던 거대한 ‘거짓의 산’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의 가치는 바로 그 필요의 정도에 비례할 것이다.

글/자율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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