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대표 농가 되고파” 딸기엄마양파아빠 김유선 대표
“함양 대표 농가 되고파” 딸기엄마양파아빠 김유선 대표
  • 김성대 기자
  • 승인 2019.06.25 15: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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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출생, 마산에서 생활하다 함양으로...
20대 초반 '함양 총각' 만나 농업인 생활 시작
2014 양파가 폭락을 계기로 새로운 삶을 개척
농산물 가공과 직거래를 고집...재구매로 성장 중
함양 '딸기엄마양파아빠' 김유선 대표는 부산에서 태어나 마산에서 생활했다. 사진=김성대 기자.

함양 농가 브랜드 ‘딸기엄마양파아빠’ 김유선 대표는 부산에서 첫째 딸로 태어났다. 10대를 마산에서 보낸 그는 약관이 되어 함양 출신 “9살 많은 농촌아저씨”를 만나게 된다. 김 대표는 당시 ‘신입 전국 최다 판매왕’을 받는 등 모 자동차 대리점에서 실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던 터였다.

김 대표가 만난 ‘농촌아저씨’는 다름 아닌 지금의 남편이다. 남편은 김 대표와 연애하기 위해 부러 마산에 직장을 잡고 도시 생활에 도전했다. 그것은 말 그대로 '도전'이었다. 정으로 살아온 농촌 총각에게 도시의 삭막함은 넘기 힘든 벽이었다. 남편은 객지 생활 틈틈이 그리운 고향을 매주 찾기 시작했고, 끝내 모든 걸 포기한 채 함양으로 다시 가게 된다. 그렇게 22살 김 대표도 남편을 따라 가 농촌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12년 전 일이다.

'딸기엄마' 김 대표와 '양파아빠' 남편의 달콤한 한때.

"처음엔 힘들었어요. 동네에 있는 거라곤 논과 밭, 하우스가 전부였죠. 처음 농촌에 왔을 땐 제 일이 없었어요. 전 농부도 아니고 노는 사람도 아니고 하는 일은 없는데 바쁜 사람이었죠. 눈 뜨면 아침, 참, 점심, 참, 저녁. 7번 상차림은 기본이었어요(웃음). 그렇게 시부모님과 도련님, 조카와 딸 셋 아들 하나를 키우며 맏며느리 삶을 배워나갔습니다."

김 대표가 함양으로 올 때 들고 온 전 재산은 2,000만원.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통장 잔고가 조금씩 비어가고 있었다. 시아버지의 100만원 생활비 지원도 2014년 양파가 폭락으로 끊기고 만다. '20kg 한 망에 5천원도 못 받다니.' 김 대표는 길가에 버려진 양파들을 보며 억울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그는 한 망 두 망 600망이 넘는 양파를 트럭에 싣고 창원, 고성 등지로 직접 팔러 다녔다. 그렇게 손에 쥔 돈은 겨우 240만원. 기름 값 빼고 시어머니 조금 드리고 나니 남는 게 없었다. 농촌의 현실이었다.

농산물 가공과 직거래를 꿈꿔왔던 김 대표에게 양파 폭락 사건은 역설적으로 답답했던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는 계기가 됐다. 할 일이 생기고 꿈이 생겼다. 그렇게 그는 4남매 엄마이자 농업인이 됐다. 그 전까진 농업의 농자도 몰랐던 김 대표였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 좋습니다. 도시에 있었다면 4명까진 못 낳았을 거예요. 흙을 만지고 놀아서인지 아이들은 하나같이 씩씩해요. 엄마 아빠 일하는 결 곁에서 보니까 농산물의 가치, 소중함도 알게 되고, 밥도 남기지 않죠(웃음). 그런 게 농촌 생활의 묘미인 것 같아요.”

딸기엄마의 보물들, 씩씩한 4남매!

‘딸기엄마와 양파아빠’는 철저히 분업 한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가진 남편은 농사일을, 농산물 가공 및 대외활동은 김 대표가 도맡는다. 이곳은 직거래만 하기 때문에 홈페이지는 없앴다. 김 대표가 20가지 정도 제품들을 갖고 문자와 전화로 소비자와 직접 소통한다.

“철마다 제품이 다르지만 되도록 제철 농산물 위주로 거래를 해요. 전화와 문자 외에도 행사장, 박람회, 프리마켓, 로컬푸드, SNS 등을 통해 직거래를 하는데 다행히 재구매가 많은 편입니다.” 

김 대표는 현재 경남 4-H 연합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앞서 활동한 함양군 4-H 연합회에서 농촌에도 같은 생각을 가진 청년들이 많다는 걸 그는 뒤늦게 알았었다. 그런 배움의 역할을 해주는 곳이 바로 경남, 함양군 4-H 연합회였다. 도와 군을 오가며 다양한 교육을 듣는 것이 김 대표는 마냥 좋다. 사람은 교육을 통해 성장하기 때문이다.

“농사가 재밌어요. 적성에도 맞는 것 같구요. 볕 많이 쬐고 힘든 점도 있지만 트럭 뒤에 타고 찍은 영상을 SNS에 올리거나 신랑 오토바이 뒤에 타서 얘기를 나누는 건 아무데서나 할 수 없는 일이죠. 이곳은 얽매이는 게 없어 좋습니다. 금전적, 시간적으로 도시보다 훨씬 나은 것 같아요.”

외국인 근로자가 장악한 작금의 농가는 김 대표에겐 아직 먼 얘기다. 김 대표에겐 든든한 동네 어르신들이 있다. 그는 자신이 사는 마을을 "복 받은 동네"라고 말한다.
김 대표가 개발한 양파여주즙. 양파의 부담스러운 맛을 여주가 잡아주면서 계속 재구매가 일어나고 있다는 후문.

양파 5,000 평, 자주양파와 딸기 10동, 아로니아 400평, 여주 2동, 수도작 2만 평, 그 외 밭작물과 한우 20두. 여기에 김 대표가 직접 개발한 양파여주즙과 자색양파잼까지. 딸기엄마와 양파아빠의 미래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 

“함양 하면 ‘딸기엄마양파아빠’가 떠올랐으면 좋겠어요. 함양과 함양 농산물을 홍보하고 밖에 나가 저를 알린다는 게 참 좋은 것 같습니다. 농사는 시골의 쓸쓸함을 없애기 위한 저만의 돌파구였던 것 같아요. 아이들이 뛰어노는 농장, 아이들이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농장 제품. 이 모든 게 저에겐 축복입니다.” 

인터뷰·글=김성대 기자 사진제공=김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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