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을 위한 농협, 농민을 위협하다
농민을 위한 농협, 농민을 위협하다
  • 김성대 기자
  • 승인 2018.12.24 11:4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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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지역 하나로마트 수입산 바나나 판매
중앙회·지역농협 "권고, 현장지도 그때 뿐"
마트관계자 "가격 · 고객수요 측면 불가피"

농민을 위해 설립된 농협이 농민을 위협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지난 주 미디어팜으로 한 제보가 들어왔다. 제보자 A씨는 현재 경남 지역 일부 하나로마트들이 국산 바나나가 생산되고 있음에도 수입 바나나를 버젓이 팔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남 진주의 모 하나로마트에서 필리핀산 바나나를 판매하고 있다. 사진=김시원 기자.
경남 진주의 모 하나로마트에서 필리핀산 바나나를 판매하고 있다. 사진=김시원 기자.

 

이와 관련 국내서 바나나 농장을 운영하는 B씨는 “하나로마트 취지가 수입 농산물을 쓰지 말자는 건데, 마트 쪽에선 국산 바나나를 찾는 고객보다 수입산을 찾는 소비자들이 많으니 갖다 놓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유통업계에선 바나나를 마진 남기며 진열하는 과일이 아닌 구색 갖추기 기타과일로 취급한다. 즉, 보여주기식 용도로 쓰는, 안 갖출 수 없는 과일인 것”이라며 “지난해까지 국내 바나나 생산지는 제주에 2, 3군데 정도 밖에 없었다. 하지만 올봄부턴 다른 지역에서도 생산되고 있다. 그럼에도 하나로마트는 가격과 소비자들의 요구를 핑계로 계속 수입산을 진열 중이다. 지난 여름엔 국내산 바나나가 남아돌아도 못 팔 정도였는데 말이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참고로 농협의 전자시스템은 수입 바나나를 실제 ‘기타과일’로 분류해 수입농산물 판매실적이 전혀 없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하나로마트의 수입산 농산물 판매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10월19일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이 경남 창원의 농협중앙회 경남지역본부 앞에서 농협 하나로마트의 수입농산물 판매 규탄 기자회견을 가진 바 있고, 지난 19일에는 농민들이 전남 담양농협 판매장에서 수거한 수입농산물들을 발로 밟거나 태워 응징하기도 했다. 담양농협은 이날 농민회에서 2차례 판매 중단 요구에 불응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지난 19일 농민들이 전남 담양농협 판매장에서 수거한 수입농산물들을 태워 응징하고 있다. 사진=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 제공.
지난 19일 농민들이 전남 담양농협 판매장에서 수거한 수입농산물들을 태워 응징하고 있다. 사진=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 제공.

 

하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고 있다. 농협중앙회와 지역농협들은 ‘수입농산물 판매금지 기준’에 따라 하나로마트 지점들에 수입농산물 진열을 금지시키고 현장지도도 하고 있지만 법적 강제력이 없다보니 한계가 있다는 같은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농협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농협의 존재 이유를 부정한다는 이유로 시행하는 수입 농산물 판매 금지 지침을 어기면 자금지원과 점포설치 제한, 적발된 해당 점포에 대한 인사 불이익 등 중앙회 차원에서 강력한 제재에 나설 것임을 예고해도 그 때 뿐이다. 현장지도를 나오면 ‘철거’ 했다 돌아가면 다시 진열하는 일을 지역 하나로마트들은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경남 고성의 모 하나로마트 관계자는 미디어팜과 통화에서 “법적인 제재가 없다. 우리 매장의 경우 농민들이 반발하면 철거하는데, 사실 철거하지 않아도 법적인 문제는 없다. 농민들을 상대로 하다 보니 발생하는 문제지, 규정으로 팔지 말라는 건 없기 때문에 법적으론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우리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곳이 농협 아니냐는 본지 기자의 본질적인 질문에 이 관계자는 “수요를 못 맞춰낸다. 한 번씩 국산 바나나를 구해보려 해도 농장에서 주질 않았다”며 구입 문의와 관련한 “연락조차 오지 않았다”는 국내 모 바나나 농장주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말을 했다.

마트 관계자는 이어 “수입산과 국산 가격 차이가 워낙 많이 나기 때문에 수요자들이 국산 바나나를 잘 안 산다. 요즘 다문화 가정도 많아 우리 매장에선 ‘다문화 가정 코너’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다문화 가정에서 자기네 지역 바나나를 찾는데 그런 것 하나 없어 다른 매장으로 고객을 보내는 것도 이치상 맞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는 2014년 6월과 2017년 10월 농협중앙회가 전국 하나로마트들에 수입농산물 판매를 중단하라는 공문을 보낸 이후 가장 잦았던 마트 측 항변들과 정확히 일치하는 내용이다.

계속해서 이 관계자는 “이론적으론 맞는데 아시다시피 유통이 우리 ‘업’이다. 바나나 하나 때문에 고객 창출을 못 한다는 건 어폐가 있지 않나. 우리는 소비자 수요를 고려한 구색을 갖출 뿐이다. 망고, 파인애플은 전혀 넣지 않는다. 소비자가 많이 찾는 바나나만 넣는다. 다른 대형 마트들처럼 수입 과일들을 쌓아 놓고 그러진 않는다. 물론 농민들 눈치를 많이 보는 상황이긴 하다”며 마트 이익이 농민 보호보다 우선한다는 뉘앙스로 답했다.

이러한 지역 마트의 논리에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 관계자는 “권고를 해도 말할 때뿐이다. 돌아서면 다시 진열하고. 소비자들이 원해서 어쩔 수 없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들을 댄다.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계속 항의를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농장주 B씨는 “하나로마트는 국산 바나나가 없어 주문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데도 주문하지 않는 것이다. 없어서 팔지 못한다는 건 궤변이다”고 토로했다.

농협매장의 수입농산물은 지난해까지 포함, 최근 3년 동안 41만톤(8216억원)에 이른다. 이중 수입비중이 가장 높은 품목은 바나나로 지난해 6만7151톤(1076억원)을 기록했다.

농업협동조합법 제1조는 농협 설립 목적을 “농업인의 자주적인 협동조직을 바탕으로 농업인의 경제적ᆞ사회적ᆞ문화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통하여 농업인의 삶의 질을 높이며,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이바지함”이라 명시하고 있다.

현재 전국의 농협하나로마트는 2천 400곳이 넘는다. 그중 경남에만 350 여곳이 있다. 전국에서 가장 많다. 우리 농민들에게 하나로마트는 공판장 경매 다음으로 꼽히는 최고 판로다. 목숨줄인 것이다.

김성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