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민 노무현’ GV 참석, 김경수 지사 "저만의 10주기 추도식 가질 것"
영화 ‘시민 노무현’ GV 참석, 김경수 지사 "저만의 10주기 추도식 가질 것"
  • 김성대 기자
  • 승인 2019.06.01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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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9일 밤 창원메가박스서 관객들과 대화 나눠
조은성 피디, 백재호 감독 사회 맡아 고인 추억해
백 감독 3차례 망설인 끝 연출 결심 "200개 테잎 분석"
김 지사 "여생을 고인께 진 빚을 갚아야 하는 운명"
다큐멘터리 영화 <시민 노무현> 창원 메가박스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한 김경수 경남지사.(사진 가운데) 왼쪽은 영화의 제작자인 조은성 피디, 오른쪽은 영화 연출을 맡은 백재호 감독이다. 사진=김성대 기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이었던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5월 29일 오후 7시 30분 창원 메가박스 9층 1관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시민 노무현> 관람 후 관객들과 대화를 나눴다.

이날 대화는 이 영화를 제작한 조은성 피디와 영화를 연출한 백재호 감독이 함께 진행했다. 조은성 피디는 영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2016)를 연출한 감독이기도 하고, 백재호 감독은 종말론 앞에서 발버둥치는 젊은 영화인들을 그린 <그들이 죽었다>(2014)와 타국에서 음악으로 삶의 활력을 되찾는 직장인의 이야기 <대관람차>(2018)로 영화 팬들과 만난 바 있다.

영화 <시민 노무현>은 2016년작 <무현, 두 도시 이야기>로 시작된 노무현 관련 영화들 중 가장 최근작으로, 그 이전엔 2017년작 <노무현입니다>(이창재 감독)와 지난 4·5월 중순 나란히 개봉된 <노무현과 바보들>(김재희 감독), <물의 기억>(진재운 감독)이 있었다.

원래 제목이 ‘바보 농부’였던 <시민 노무현>은 노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 이름을 사계절에 맞춰 나눈 작품으로, 친환경 농사와 ‘진보의 미래’에 대해 고민한 고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냈다. 따라서 이 영화는 노 대통령이 생전에 꿈꾼 봉하마을 친환경 생태 사업 10년 결과물을 아름다운 영상으로 그려낸 <물의 기억>의 전편 격에 해당한다. <시민 노무현>은 노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에 맞춰 지난 5월 23일 개봉했다.

<시민 노무현>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 중인 조은성 피디와 김경수 지사, 백재호 감독. 사진=김성대 기자.

백재호 감독 “노무현 대통령은 내가 뽑은 첫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귀향한 2008년 2월 25일부터 서거한 2009년 5월 23일까지를 좇은 98분 영화가 끝나고 김 지사와 관객과의 대화가 시작됐다. 백 감독과 함께 사회를 맡은 조은성 피디는 “백 감독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에 관한 영화를 함께 만들어보자고 3차례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며 장내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백 감독은 “노무현이라는 사람의 삶을 잘 몰랐다”는 이유로 거절했다고 답했다. 백 감독은 “노 전 대통령은 제 생애 첫 투표로 뽑은 대통령이다. 그 사람을 잘 알아서 찍은 게 아니라 불의에 저항하는 모습이 멋있어서, 저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선택했었다”며 자신과 노 전 대통령의 간접만남을 떠올렸다. 그는 “처음엔 과연 내가 이런 영화를 만들어도 되는 사람인가 생각이 들었다. 잘 못 만들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으로 계속 망설였다. 연출을 결심한 건 ‘노무현 리더십 학교’ 수업을 들으면서다. 수업을 들으며 내가 만들 수 있는 영화가 있을 것 같았다. 내가 해야 될 일 같았다”며 “처음엔 10년 후 봉하를 담아보려 했지만 2019년 5월에 만들어야 하는 영화는 노 전 대통령의 모습, 말,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을 다뤄야 할 것 같았다. 상징이 아닌, 직접 이야기하는 영화를 말이다”고 영화 제작의 배경을 설명했다.

기록에 대한 집착, 신념, 그리고 철학

“454일을 고향에 머물며 대통령이 바라본 시간, 계절들을 담고 싶었다”고 말한 백 감독은 “노무현재단에서 협조해준 200개가 넘는 테이프 자료를 샅샅이 살펴야 했다”고 말했다. 고인은 이 기록들을 왜 남겨놓았을까. 따져보면 하루 30분씩 매일 기록을 남긴 셈이다. 퇴임한 뒤에도 이런 기록을 남긴 이유에 대해 김 지사에게 첫 질문이 던져졌다.

김 지사는 “대통령님은 생전에 ‘대통령기록물에 관한 법률’을 직접 챙겨 만들었을 정도로 기록에 대한 집착, 신념, 철학 같은 걸 갖고 계셨다. 영상물들은 꼭 남기라고 한 건 아니지만 왜곡돼 전달되곤 하는 언론 보도보다 직접 촬영한 영상이 잘 정리돼 국민들에게 전달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가지고 계셨던 것 같다”며 “당시만 해도 SNS가 없었다. 하지만 당신의 얘기가 국민들에게 직접, 제대로 전달됐으면 좋겠다는 갈증은 있었다. 비서관들도 대통령 육성으로 그것을 전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는 생각을 공유한 덕에 남겨질 수 있었던 기록들이다”고 말했다.

백 감독은 자신이 본 200개가 넘는 테이프들에서 고인의 말투가 대통령 시절과는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영상 속 노 전 대통령은 어렵지 않게, 방문객들이 알아듣기 쉽고 재밌게 말을 하고 있었다. 영화도 바로 그런 느낌으로 '쉽고 재밌게' 만들었다고 백 감독은 말했다. 영상의 화질 문제는 당시 촬영을 맡았던 사람이 HD카메라를 SD설정으로 해서 찍어 그렇다고 그는 덧붙였는데, 이런 식의 방대한 기록이라면 테이프 양을 감당할 수 없으리라는 판단에 그렇게 한 것 같다고 백 감독은 추측했다. 10년은 찍을 줄 알았던 기록이 1년 여만에 끝날 줄은 몰랐을 거란 말이었다.

영화 <시민 노무현> 공식 포스터. 퇴임 후 내려온 봉하마을에서 방문객들을 맞은 노 전 대통령의 뒷모습을 담았다. 

김경수 지사 "봉하마을 함께 가자 제안, 안 해줬으면 서운할 뻔"

이번엔 백 감독이 김 지사에게 물었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봉하마을로 함께 가자고 했을 때 어땠느냐." 당시 고인의 연설기획비서관이었던 김 지사는 “그땐 그러려니 했다”며 운을 뗐다. 그는 “국정상황실에서 1년을 근무하다 대통령님이 탄핵을 당했고, 이후 헌재에서 탄핵이 기각돼 직무에 복귀한 날이 2004년 5월 15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며 “직무 복귀 일주일 전쯤 1부속실에서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이 왔고, 대통령 곁에서 일 하면 너무 좋을 것 같아 꼭 해보고 싶었다. 문제는 1부속실에서 근무하면 퇴임 후에도 계속 모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고 그때 심경을 밝혔다.

김 지사는 “그럼에도 아내가 ‘그러면 더 좋지’라며 동의해줬고, 퇴임 준비 때 비서관 3명을 둘 수 있는 가운데 기록을 맡고 있는 저에게 대통령께서 자연스럽게 제안해주셔서 너무 좋았다”며 지난 날을 추억했다. 그는 덧붙여 “제안을 안 해줬으면 서운할 뻔 했다” 웃으며 말한 뒤 “40~50대 남성으로서 시골 생활에 대한 로망도 작용했다”면서 봉하마을행 결정의 또 다른 배경도 설명했다.

백 감독은 집에서 고인이 어떻게 지냈는지도 물었다. "겉과 속이 같다"고 알려진 노 전 대통령이 집 안에서도 집 바깥처럼 지냈느냐는 얘기였다. 이에 김 지사는 "답은 영화 안에 있었다. 그 분은 실제로 겉과 속이 같은 분이었다. 안에서도 밖에서와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내실과 침실이 있는 안채에서 부엌, 사랑채로 가려면 밖으로 나갔다 다시 들어와야 하는 구조였다. 실내에서 왔다갔다 할 수 있으면 게을러지고 마음이 풀어지므로 대통령님께서 일부러 그렇게 설계를 하신 것이다. 집에 있는 시간에라도 늘 깨어있으려는 생각에서였다"며 "'지붕 낮은 집'이라 이름 붙이려 하셨지만 밖에선 2층으로 보여 결국 그렇게 부르진 못했다. 여사님은 그 집을 '불편한 집'이라 불렀다"고 내막을 전했다.

비서실에 직접 담배 구하러 온 것이 결국 작별 인사 돼

이제 마이크는 관객석으로 갔다. 진주에서 온 한 여성 관객은 김 지사에게 "대통령이 가장 멋져 보였던 때가 언제였느냐"는 질문을 했다. 김 지사는 조금 생각하더니 "오전에 몸살 하시고 나와 비서관들에게 '오늘은 좀 쉬어라'고 해주셨던 때"라고 말해 좌중을 폭소케 했다. 곧 농담의 기운을 걷은 그는 "화포천 다니고 청소하고 마을을 가꾸면서 참모들에게 미안해하셨다"며 "주변 사람들에 대한 애정 표현, 그들을 동지로 여겼을 때가 가장 멋졌다"고 질문에 관한 자신의 진심을 정리했다.

다음 질문에는 한 관객의 애정어린 원망이 섞여 있었다. 지난 5월 23일 열린 고인의 10주기 추도식에 왜 얼굴을 비추지 않았느냐는 거였다. 해당 관객은 그저 우연의 일치였느냐며 김 지사를 은근히 몰아세웠다. 이에 김 지사는 재판 일정상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재판부가 매월 둘째, 넷째 목요일을 재판일로 정했는데 하필 5월 23일이 넷째 목요일이었다는 것이다. 김 지사는 "보석 후 쓰지 않아온 SNS를 대통령님께 드리는 변명 형식으로 썼다. 사실 탈상을 좀 더 미뤄야 할 것 같다. 대통령님께선 누구보다 제 상황, 제 처지를 잘 이해하시리라 믿는다. 해서 저는 나중에 저만의 10주기 추도식을 가질 것이다. 아직 재판 중인 상황이라 그렇다"며 항소심 재판 중인 자신의 처지를 간접으로 관객들에게 전했다.

영화 <시민 노무현> 관람 및 관객과의 대화를 모두 마친 김경수 지사가 관객들과 마지막 포즈를 취했다. 사진=김성대 기자.

세 번째 질문은 노 전 대통령의 김 지사 호칭 문제였다. 그리고 항소심 재판을 앞둔 현 상황에서 대통령이 옆에 계시다면 어떤 위로의 말을 해주었을까도 같은 질문에 포함됐다.

"대통령님은 주변 참모들에게 항상 '~씨'를 붙이거나 직위를 불렀다. 제 경우도 '경수씨' '김 비서관' 이상은 아니었다"고 말한 김 지사는 이어 "물론 가끔씩 이름을 그대로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이호철 전 비서관이나 김정호 의원은 '호철아, 정호야' 하시곤 했다. 그들은 인권 변론을 하던 82년도 이후부터 함께 했던 사람들이었다"며 "대통령님은 주변 사람들을 늘 존중했다. 단, 평소 내색은 잘 하지 않으셨던 분이라 아마 지금 저에게도 마음으로만 응원하시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 질문은 31년 전 한 집회에서 고인을 만났다는 관객의 몫이었다. 영화에서 보여준, 서거 전 어두웠던 노 전 대통령의 낯빛에 관해 그 관객은 우선 얘기했다. 반면, 현재 김 지사의 낯빛은 당당해보인다고 말한 해당 관객은 "이 상황(항소심 재판을 앞둔 상황)을 잘 이겨내리라는 자신이 있는지"를 물었다. 김 지사는 이에 "제 재판에 대해선 '자신있다' 말하지 않기로 했다"며 "당연하다 생각했던 게 당연하지 않았던 1심이었고 변호인단 중심으로 준비한 1심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2심은 함께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도정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도 하고, 응원해주시는 도민들께도 제가 해야 하는 책무라고 생각한다. 도정도 잘 챙기고 재판도 잘 준비해서 실망시키지 않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남다른 각오를 내비쳤다.

김 지사는 아울러 고인과 작별의 순간도 떠올렸다. 그는 "(서거)전날 마지막으로 서재에 계시다 비서실로 직접 오셨다. '담배 한 대 달라'시더니 바로 안 가시고 머뭇머뭇 하다 가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작별 인사를 하러 오셨던 것 같다"며 "대통령님의 표정이 어두웠던 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던 데다 자신이 짊어진 짐이 너무 무거웠기 때문이다. 그 짐을 다 지고 그런 선택을 하셨다. 저희로선 지금도 자책할 수 밖에 없는, 평생 그 빚을 지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여생을 그 빚을 갚는데 바쳐야 하는 운명이 됐다"는 말로 이날 관객과의 대화를 마무리 했다.

김성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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