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류 씨네필의 인생영화] 197위: 글렌 굴드에 관한 32개의 단편들
[이류 씨네필의 인생영화] 197위: 글렌 굴드에 관한 32개의 단편들
  • 윤호준
  • 승인 2019.06.12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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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위: 글렌 굴드에 관한 32개의 단편들 (1993)

감독: 프랑수아 지라르

촬영: 알랭 도스티

주연: 콜름 푀르, 데릭 키우보스트, 드본 앤더슨, 숀 라이언

감독은 글렌 굴드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 곡,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그대로 따와 영화를 만들었다.

인트로와 아우트로로 앞뒤를 감싸고 그 안에 30개 단편을 엮어 넣은 것이다. 놀라운 건 단순히 30이라는 개수만 맞춘 것이 아니라 에피소드들의 흐름이 실제로 다양하게 변주된다는 사실이다. 굴드 연주의 시각화, 지인들의 인터뷰, 레코딩 & 방송에 대한 애착, 여러가지 기행들, 이렇게 크게 4가지로 나뉘는 변주의 범주는 적당한 간격으로 골고루 분배되거나 또는 한 곳에 집중 배치되면서 흥미로운 리듬을 형성한다.

굴드가 녹음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영국 모음곡' '인벤션' 등이 끊임 없이 배경에 깔리는 영화는 32개로 쪼개져 있으면서도 산만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이런 탄탄한 구조 덕분에 굴드 역을 맡은 콜름 푀르는 피아노 연주 연기를 전혀 하지 않고서도 굴드의 아우라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었다.

따로 떼어 언급할 만한 훌륭한 단편들이 몇 개 있는데, 그 중에선 'L.A. 콘서트'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대기실에서 무대까지 올라가는 길이 유독 긴 그 백 스테이지 장면은 무대를 찾지 못해 이리저리 헤매는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1984)의 멤버들과 좋은 대구를 이룬다.

그 밖에 굴드가 토론토 변두리 식당의 소란스러움을 감미로운 3성 푸가라도 되는 듯 입체적으로 듣는 '기사 식당', 카메라가 온전히 굴드의 시점이 되어 끝없이 인터뷰어들의 질문을 받는 '대답 없는 질문들', 그가 어느 자원개발 회사의 주식을 사들여 대박을 내는 과정을 보여주는 동안 바흐 연주가 안성맞춤처럼 흐르는 '비결'도 좋다.      

 

★ Only One Cut

인트로와 어린 시절을 다룬 '심코 호수'에 이어 세 번째로 등장하는 에피소드 '45초와 의자'. 이 에피소드의 컷은 딱 하나. 흐르는 음악은 바흐의 '2성 인벤션' 중 한 곡이고, 카메라는 굴드의 얼굴을 향해 점점 다가간다. 미동도 없이 카메라를 응시하는 굴드의 눈매. 감독은 영화 초반에 굴드의 비범함을 이렇게 확증한다. 

글/윤호준 (영화애호가,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