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같은 레트로 유행 '프레디'
벼락같은 레트로 유행 '프레디'
  • 김성대
  • 승인 2019.02.18 14: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책 '프레디' 표지. 심플라이프 제공.

980만 명을 넘겼다. 500만 때만 해도 이러다 말겠지 했다. 아니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동명의 곡 구조만큼 극적이고 집요하게 흥행 가도를 달려 나갔다. 그 결과는 역대 국내 흥행 외화 순위 13위였다.

사실 프레디 머큐리는 생전에 단 한 번도 한국을 찾은 적이 없다. 세계 수 억 명이 실시간 브라운관으로 지켜본 92년 추모 공연도 한국에선 제대로 중계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해 겨울 한국에선 카페를 들어가도, TV를 켜도, 심지어 길을 걸어도 어디선가 퀸 음악이 흘러 나왔다.

이 벼락같은 레트로 유행을 주도한 건 중년 퀸 팬들이 아닌, 10~20대들이었다. 오래 돼서 새로웠던 것일까. 그들은 끊임없이 프레디를 보기 위해 티켓을 끊었다.

이 흥행이 더 의아한 건 프레디가 다수 한국인들이 여전히 편견을 갖고 있는 동성애자였고 에이즈로 사망했으며, 심지어 그가 만든 ‘Bohemian Rhapsody’는 한때 국내서 금지곡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불리한 정황에도 불구하고 <보헤미안 랩소디>가 승승장구 할 수 있었던 건 역시 프레디의 싱어송라이터로서 출중한 능력 덕이라고 봐야겠다.

프레디는 퀸의 최초 히트곡 ‘Killer Queen’을 비롯해 ‘Bohemian Rhapsody’, ‘Love Of My Life’, ‘Don’t Stop Me Now’, ‘Bicycle Race’,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 ‘We Are the Champions’, ‘Somebody To Love’, ‘I Was Born to Love You’ 등 퀸 대표곡들 상당수를 작곡했다. 피아니스트였던 프레디는 노래도 잘 불러 남성으로선 쉽지 않은 3~4옥타브 발성을 자유로이 구사했다.

혹자의 지적처럼 <보헤미안 랩소디> 개봉 때 딱히 경쟁 작품이 없었다는 사실, 가장 효율적인 ‘한국적인 오락 문화 공간’이 극장이었기 때문에 이 흥행이 가능했으리라는 말은 그럴 듯하지만 진실은 아니다.

물론 ‘저 노래가 퀸 노래였어?’라는 많은 사람들의 반가움도 한 몫 했을 테지만, 가장 중요한 건 어쨌거나 영화의 주인공 프레디 머큐리가 뮤지션으로 지녔던 천재성이었을 것이다. 그의 드라마틱한 삶은 그 천재성의 이면에서 프레디를 설명한 주석이었을 뿐, 다른 무엇도 아니다.

책 <프레디>는 ‘Bohemian Rhapsody’를 듣고 퀸에 빠진 알폰소 카사스라는 작가의 또 다른 프레디 머큐리 이야기다. 알폰소는 네스프레소, 도요타, 리복 등과 일한 스페인 출신 일러스트레이터로 그는 이 책을 ‘인트로-발라드-기타 솔로-오페라-록-코다’로 나누고 거기에 프레디의 히트곡들을 대입해나가며 자신의 영웅을 추억했다.

화려한 원색들과 어울린 잿빛 프레디의 인생. 작가는 이를 “프레디 머큐리 초상화의 은유”라고 썼다. 알폰소 스스로 열심히 취재한 퀸과 프레디 관련 팩트들, 그리고 그의 혼을 담았을 아리따운 그림들이 영화와는 다른 감동을 안긴다.

<프레디>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보다 더 사실적이고 책 <퀸: 보헤미안에서 천국으로>보단 덜 구체적이다.

김성대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