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지역 영화사] 창원 '동양의 작은 헐리우드'
[경남지역 영화사] 창원 '동양의 작은 헐리우드'
  • 이성철
  • 승인 2019.03.04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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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철 교수의 <경남지역 영화사> 표지. 사진=호밀밭 제공.

경남지역의 문화 활동은 어느 지역 못지않게 활발하다. 특히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전후의 시기에는 경남지역 민족운동가들의 활동과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문화인들의 활동이 마산 등을 중심으로 매우 다양하게 펼쳐졌고, 그들의 활동 기록들은 비교적 잘 남아있는 편이다. 그러나 유독 영화부문에 관한 활동과 그 기록들은 단편적이거나 산발적으로 흩어져있어 그간 이 부문의 발자취와 성과들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바가 없다. 물론 경남지역의 영화부문에 관한 기록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 기록들 대부분은 개인들의 기억에 의존한 회고록에 일부 반영되어 있다거나, 몇몇 뜻있는 분들의 자료정리 등의 형태로만 존재한다. 물론 이러한 선행 자료들이 후학들의 연구에 큰 도움이 되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기록들이 단편적이거나 사실과 부합되지 않는 점들이 눈에 띄고, 경남지역의 영화관련 서술들도 대부분 영화 그 자체의 텍스트나 그에 얽힌 스토리텔링(배우나 극장 등)에 머물러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나라에서 영화는 일제 강점시기에는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레이먼드 윌리엄스가 말한 일종의 ‘부드러운 테러’로 다가왔고, 한국전쟁 전후 시기에는 ‘문화적 냉전’의 기제로 대중들에게 널리 유포되었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식민지와 전쟁의 경험을 겪은 국가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이었지만, 이 시기의 영화에 대한 기억과 전망에 관한 역사적인 사실들은 많은 부분 유실의 위기에 놓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책에서 처음으로 소개되는 경남 마산의 강호 감독과 창원의 리버티늬우스 역시 이러한 사정에 놓여있었다.

강호 감독의 경우는 한국영화사에서 거의 잊힌 존재였다. 그래서 필자는 지역의 몇몇 전공자들의 구전으로만 전해져오던 그의 활동을 오롯이 되살려보고 싶었다. 그가 남긴 무성영화의 필름들은 남아있지 않고, 그가 남긴 영화운동에 관한 비평문들은 읽어내기 힘든 형태였다. 그러나 이곳저곳에 흩어져있는 그에 관한 기록들의 조각을 맞추고, 그가 태어난 고향마을을 답사하고, 지역문화 활동에 깊은 애정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의 증언들을 통해 잊힌 강호를 다시 불러낼 수 있었다. 그리고 창원의 리버티늬우스 경우는 미공보원의 뉴스영화와 문화영화 등을 연구한 김한상 박사의 도움이 컸다. 몇 년 전 한국사회학회가 마산 경남대학교에서 열렸을 때 필자는 그의 논문 발표를 들을 수 있었다.

그의 발표는 전국 차원에서 전개된 미공보원의 영화 활동에 관한 것이었지만, 그 발표 중에 창원 상남동에서 미 공보원의 활동이 있었다는 짧은 언급이 있었다. 이후 창원의 상남동 용지리에서 약 15년간 활동했던 미공보원 상남영화제작소의 활동에 관한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당시 창원은 한국영화의 메카였고, 동양의 작은 헐리우드라고 불린 사실도 알게 되었다. 마산의 강호 감독과 창원의 리버티늬우스는 지금껏 한국영화사에서 공백으로 남아있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작용했을 것이다. 강호 감독의 경우 비록 중앙에서 활동한 경력이 대부분이었지만 그의 활동 내용이 카프의 문화운동이었다는 점과 월북인사라는 점 등이 그를 진지하게 검토할 기회를 갖지 못하게 한 일종의 레드 콤플렉스가 작용한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한편, 창원의 리버티늬우스는 지역의 관심 있는 분들 사이에서는 간간히 구전으로 전해져온 사실이 있지만 이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고, 기왕의 짧은 언급들에는 사소한 잘못들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이 책을 준비하면서 바로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역영화사는 한국영화사와 상보적인 관계에 있음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지역과 중앙은 형식논리학에서 말하는 중앙과 변방의 관계가 아니라, 보편성 속에 특수성이 놓여있고 특수성 속에 보편성이 관철되는 변증법적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역영화사에 대한 연구는 한국영화사의 내용과 깊이를 더욱 풍부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조그만 책을 준비하면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지역의 지리와 문화, 그리고 역사에 깊은 조예를 지니고 계신 허정도, 유장근 선생님, 지역사회운동과 문화사에 밝은 박영주, 송창우 선생님, 그리고 지역영화에 관한 한 독보적인 존재인 이승기 선생님 등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책은 생기를 잃었을 것이다. 그리고 초고가 완성되었을 때 이 를 지역의 독자들에게 먼저 알려준 경남도민일보와 문화부 기자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이 책이 지역영화사에 관한 새로운 발굴이라고는 하지만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그리고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시기는 19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이지만 정작 30~40년대의 이야기는 비어있다. 이 책을 계기로 더욱 밀도 높고 풍부한 후속 연구들이 이어지길 바란다. 끝으로 이 책의 초고들은 <지역사회학>에 투고 및 게재되었던 논문들을 다시 수정하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을 보완한 것임을 밝혀둔다. 지역에서 1인 출판의 천로역정을 걷고 있는 호밀밭 장현정 대표와 이 책을 만들어 준 모든 출판 노동자들에게 감사드린다.

2015년 5월 리버티늬우스의 산실이었던 미공보원 상남영화제작소를 지척에 둔 연구실에서

글/이성철 창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기획 연재 ‘경남지역 영화사’는 책 <경남지역 영화사: 마산의 강호 감독과 창원의 리버티늬우스>의 저자 이성철 교수와 출판사 호밀밭의 허락 아래 미디어팜에 게재되는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