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극의 커피드립] 커피, 제대로 좀 만듭시다
[우병극의 커피드립] 커피, 제대로 좀 만듭시다
  • 우병극
  • 승인 2019.12.31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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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와 멋 우병극 대표.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9년. 스타벅스 1호점이 문을 열면서 에스프레소 이태리커피 시장이 한국에 첫 발을 디뎠다.

필자는 1995년 ‘오피스 커피 서비스(커피메이커 대여로 분말커피를 공급하던 서비스)’로 커피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커피시장은 사이폰 기술로 상당한 파이가 형성 되어 있었다. 하지만 커피숍 일부 주방장들의 오만과 편견으로 그 시장은 LP 및 음악다방의 몰락과 함께 급격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커피숍에 웬 주방장?’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 시절엔 주방장이 출근하지 않으면 커피숍을 운영할 수가 없었다.

시장이 위축되자 가게 주인들은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대안은 다름 아닌 커피메이커였다. 요즘 사람들에겐 생소하겠지만 원두 가루를 넣으면 그냥 ‘헹궈서’ 내보냈던 커피메이커는 한때 커피 업계를 위기에서 건져줄 단 하나의 구세주였다.

그러나 천하의 커피메이커도 이미 한풀 꺾인 시장을 살려 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커피시장은 그대로 무너지고 말았다. 재료상이 수입원두와 국내 식품사 공급 원두를 번갈아 다방에 공급하면서 근근이 시장을 이어 나가려 해 봤지만 소비자의 기호는 점점 높아져만 갔다.

1996년. OECD에 가입해 ‘삶의 질 향상’을 시대적 과제로 여긴 대한민국은 이듬해 외환위기를 맞으며 격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대량 해고가 이어졌고 부실기업들은 유행처럼 도산했다. 힘없는 소상공인들도 저마다 갈 길을 잃고 시장을 헤맸다. 그렇게 실직의 아픔이 창업의 호황기로 이어지면서 체인점들도 난립했다. 하지만 카피에 가까운 체인들의 수명은 그리 오래 가진 못했다.

2020년을 하루 앞둔 지금. 이제 더는 빠르고 급하게 돈을 버는 시대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커피숍은 한 집 건너 한 집, 그야말로 우후죽순 들어서 있다. ‘바리스타’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내린 커피들은 그리고 하나같이 어리숙하다. 

이미 늦은 걸까. 아니다. 지금이라도 제대로 하면 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커피 좀 내린다 싶으면 가르치려 들고, 10년 정도 했다 하면 선생 짓을 일삼는 이들이 판치는 상황. 이 상황이 바뀌지 않는 한 ‘제대로 하는’ 카페들의 아름다운 경쟁은 요원하다. 주위를 보라. 커피는 당기는데 막상 가려면 어딜 가야할지 모르겠다.

우병극 대표가 사이폰 커피 추출 후 스포이드로 우유를 주입한 모습.

그나마 나름 좀 한다는 곳에서도 커피 값을 밥값 마냥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부풀려 자신들의 잇속만 챙기는 모양새다. 그들은 단지 자주 시킨다는 이유로 커피 중에서 가장 싼 ‘아메리카노’를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커피라고 용감하게 말할 사람들이다. 웃기는 소리다.  

물론 제대로 추출하는 곳도 많다. 그러나 현실에선 수 백, 수 천 만 원짜리 커피 기계가 있음에도(에스프레소 추출은 상당한 고급 기술을 요한다) 핸드드립을 한다는 이유로 ‘드립’을 친다. 기억하자. 손님들은 더 많은 커피, 그 커피의 맛과 멋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는 사실을.

글·사진 / 우병극 '향기와 멋'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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