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문화 선구자’ 아인 박종한 선생 7주기 헌다례
‘茶문화 선구자’ 아인 박종한 선생 7주기 헌다례
  • 김성대 기자
  • 승인 2019.05.06 15: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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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4일 남해 덕신리 하천재(하천다숙)서 개최
진주연합차인회 주최, 한국 오성다도회 주관
5월 4일 남해 덕신리 하천재(하천다숙)에서 근대 차 문화 선구자인 아인 박종한 선생의 7주기 추모 헌다례 행사가 열렸다. 사진은 참석자들의 단체사진. 하천재는 퇴계 이황의 뒤를 이어 양관 대제학을 지낸 박충원의 14세손인 하천공 박병집과 그의 아들 만암 박채규가 선친의 유적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재실이다. 지금은 다도를 교육하고 전파하기 위해 '하천다숙'으로 쓰고 있다. 사진=박문용.

지난 5월 4일 오전 11시 한국 근대 차 문화 선구자인 아인 박종한 선생의 7주기 추모 헌다례 행사가 남해 덕신리 하천재(하천다숙) 인근 아인 선생 묘소에서 열렸다.

진주연합차인회가 주최하고 한국 오성다도회가 주관한 이번 행사는 선생의 묘소에서 개제선언을 하고 아인 선생의 행적 소개, 아인 선생을 향한 헌향·헌다·헌화·헌시 등으로 1부를 꾸몄다. 2부는 다도를 교육하고 전파하기 위한 하천다숙으로 자리를 옮겨 진행됐다. 오성다도회가 하천다숙 뜰에 모여 ‘아인의 노래’를 합창했고, 참석자 모두가 연밥과 수육 등으로 오찬을 치렀다. 끝으로 5월 초 우린 햇차를 아인 선생이 제작한 경의(敬義)잔에 나눠 마시며 행사는 마감됐다.

올해 7회째를 맞은 아인 박종한 선생 추모 헌다례는 남해군과 하동군, 진주시와 의령군 차인들의 관심 속에서 진행됐다. 하지만 이 관심은 표면적인 관심이라는 의견이 참석자들 사이에선 형성됐다. 시와 군, 나아가 경남도까지 이 행사에 실질적인 관심을 기울여 ‘차문화수도(진주)’를 가진 도로서 우뚝 서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온 것이다.

정헌식 한국차문화수도 진주 추진위원장이 헌다례 헌관 중 초헌을 하고 있다. 사진=김성대 기자.
한국 오성다도 전수관 박군자 관장이 아인 선생의 행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박문용.

당일 아인 선생에게 헌시를 바친 무명선사는 “차를 통한 인성교육, 삶의 여유로움, 그를 통한 문화예술의 발달. 그 길을 열어준 아인 선생 헌다례 행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특히 진주시는 차 문화만 잘 챙겨도 경제 여건을 충분히 창조해나갈 수 있다고 보는데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고 말했다.

아인 선생으로부터 오성다도를 전수받은 한국 오성다도 전수관 박군자 관장도 “아인 선생 생전에 약속드린 추모 헌다례를 한 지도 올해로 7년째가 됐다. 지난해까진 오성다도회가 주최했지만 올해부턴 진주연합차인회가 주최인 행사다. 아인 선생이 세운 대아고등학교 출신인 조규일 진주시장이 지난해(6회)까지 방문한 뜻깊은 행사인 만큼, 진주시에서도 앞으로 더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올해부터 행사를 주최하게 된 진주연합차인회 최명자 회장 역시 “여태껏 한국 오성다도회와 유족 분들이 진행을 해온 행사를 진주연합차인회가 주최하게 돼 감회가 새롭다. 마치 먼 미래를 내다보신 듯, 차인들이 편안하게 차 정신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천다숙이라는 공간을 마련해주신 아인 선생께 깊은 감사 말씀을 드리고 싶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박군자 오성다도 전수자(오른쪽에서 네 번째)와 제숙희 회장(정중앙) 외 행사에 참석한 한국 오성다도회 여성 회원들. 사진=김성대 기자. 
진주연합차인회 최명자 회장이 아인 선생 추모 헌다례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사진=김성대 기자.

아인 박종한 선생은 1944년 독립운동을 위해 ‘반진단’을 결성, 일제에 항거하고 국가 인재양성을 위해 대아중·고등학교를 설립 후 차를 통한 인성교육으로 인재를 배출했다. 선생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사상과 가르침을 전 국민에게 전하고 민족성 개선을 위해 한국차인회 발기를 제창, 사단법인 ‘한국차인회’를 창립하기도 했다. 또한 선생은 경남지역 실천 철학자인 남명 조식 선생을 기리기 위해 '남명제'도 창설했다.

아인 선생은 다도문화를 전국으로 퍼뜨리기 위해 1981년 5월 25일 '차의 날' 선언문을 직접 작성해 진주 촉석루에서 제정·공포하고 차의 불모지였던 진주를 차 문화 운동의 요람으로 만들었다.

김성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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