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예술, 삶, 페미니즘
[기고] 예술, 삶, 페미니즘
  • 윤호준
  • 승인 2019.01.03 17: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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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안 랩소디를>를 아내와 둘째 딸과 함께 봤다(첫째는 이미 관람). 아내는 가슴이 뻥 뚫린다며 너무 좋아했고 둘째도 재밌게 봤단다. “집에 가서 퀸 노래 틀어줄까?” “응~” 집에 도착하자마자 <Live Magic> 테잎을 틀어줬더니 온 식구가 제목을 훑어가며 경청한다. 나도 참 오랜만에 들었다. 좋았다.

퀸을 다시 듣게 만드는 건 참 좋은데 영화적으로 <보헤미안 랩소디>는 꽝이다. ‘좀 허술하긴 하지만 마지막 웸블리 20분 때문에 다 용서가 된다’는 평을 많이 봤는데, 난 도무지 용서가 안 됐다. 숱한 삽입 숏들, 관객과 지인들과 스텦과 펍의 사람들과 겔도프까지 계속 낑궈진 반응 숏들을 참기 힘들었다. 반응 숏은 웸블리의 거대 군중 숏 몇 개면 충분했고, 그마저도 노래 부르는 머큐리의 뒤에서 찍으면 자동으로 군중이 보이게 마련이다. 브라이언 싱어가 이 따위로 찍었다니 세상에나. ‘보헤미안 랩소디’를 두고 3분이 넘고 대중적이지 않고 어쩌고 했던 영화 속 그 제작자 양반의 태도를 영화 자체가 몸소 실천하고 있으니 이런 아이러니가 있나.

하지만 이런 대실망을 아내 앞에서는 한 마디도 뻥끗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 스스로가 좀 안쓰러웠다. 안목이 없어서 허술한 것도 기꺼이 좋아할 수 있는 사람과 안목이 있어서 허술한 것을 참을 수 없는 사람 중에 누가 더 나은 사람일까? 여기서 안목의 무용을 얘기하고픈 생각은 없다. 엄청나게 음악을 듣고 엄청나게 영화를 본 건 분명 자랑할 만한 일이고, 그 두 가지를 남들보다 예리하게 관찰할 수 있게 된 건 저절로 얻어진 능력이 아니니까. 하지만 이런 결론에 도달할 때마다 매번 드는 생각, 그래봤자 달랑 그거 두 가지잖아? 라는 생각. 문학, 미술, 연극, 무용, 만화, 게임, 건축, 스포츠 등등에서 나는 <보헤미안 랩소디>에 열광한 아내의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한 두 가지 예술 분야에 정통한 사람들은 대개 착각을 한다. 나는 여기에 정통하므로 저기에서도 훌륭한 것을 골라낼 수 있고 훌륭한 것에 반응할 수 있어. 착각도 이런 착각이 없다.

단지 예술뿐일까? 나는 빨래도 아내보다 한 수 밑이고 부엌 정리도 한 수 밑이고 청소에서도 한 수 밑이다. 이런 ‘생활의 기술’을 ‘예술의 안목’과 비교조차 하지 않았던 점이 과거 혹은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나의 죄라고 생각한다(“제가 여성들보다 더 뛰어난대요”라고 주장하실 분들도 많을 텐데요, 그런 분들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예술의 각 분야는 그 자체로 대단하지 않다. 그걸 좋아하는 내가 대단한 거다. 어떤 예술이 절대적 지위를 갖고 있다는 생각, 어떤 예술 없이는 삶을 살 수 없다는 생각은 오만하다. 예술 없는 삶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철학이나 사상이 없어도 살 수 있고 심지어 소신이 없어도 살 수 있다. 우리가 신념으로 사는가? 오로지 사람들과의 ‘관계’로만 한평생을 살아온 어머니와 장모님의 숭고한 궤적 앞에서 브라이언 싱어에 대실망하기 위해 가꿔온 나의 안목은 새 발의 피조차 되지 못한다.

안목은 비평을 낳고 비평은 칼날을 세운다. 이 칼날을 ‘관계로서의 삶’에까지 대입하여 여성들 앞에서 마구 논평해댔던 것이 바로 남성들의 죄라고 생각한다. 이성과 합리로 포장하여 마구 발사했던 총알들. 공감 따위는 집어던진 맨스 플레인. 고작 한 두 가지 분야에서 좀 알기로서니, 그 덕후로 보낸 시간이 ‘생활과 관계’보다 우등한 거라고 윽박질렀던 남성들.

그러나, 한편으로, 페미니즘에 대해 생각해보면, 사상 교육의 필요를 느낀다. 그 누구도 공리주의를 정신병이라 부르지 않는다. 현상학을 정신병으로 부르지 않으며 구조주의를 정신병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런데 왜 페미니즘은 정신병이라 부를까? 굳이 페미니즘의 역사와 사상을 가르칠 필요도 없다. 그냥 현대철학의 중요한 쟁점 사안만 중고등학교에서 쉽게 가르쳤어도, 대한민국 공교육이 그런 과정을 30년 정도만 걸어왔어도 최소한 ‘페미니즘=정신병’이란 말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볼 때 현대철학의 진행 과정은 그 자체로 페미니즘 사상의 진행과정이다. 소쉬르 언어 철학(구조주의)의 핵심을 깨달을 수 있다면 남성으로 태어나 말하고 걸어 다니고 밥 먹고 옷 입는 자체가 여성을 억압하는 일이라는 걸 충분히 깨달을 수 있다. 한국 공교육에 그런 깨달음의 과정, 돈오점수의 사유 훈련이 부재했다는 게 한탄스럽다. 그러니까 빨리 교육개혁하자.

윤호준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