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원칼럼] 고향 울산, 현대자동차의 추억..
[김시원칼럼] 고향 울산, 현대자동차의 추억..
  • 김시원 기자
  • 승인 2020.07.07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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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원 기자
김시원 기자

울산에서 태어나 31살까지 살았던 나로서는 대부분 추억이 울산에 몰려있다. 그 중에서 울산의 대표 기업이라 할 수 있는 현대자동차에 대한 추억이 유난히 많은데, 대부분이 파업과 관련되어 있다. 쉴새 없이 파업하는 기업. 내가 생각하는 현대자동차다.

내가 10살 정도였을까. 현대자동차 생산직들이 파업하는 것을 보고 어머니께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도로를 막고 소리를 지르냐”고 했을 때 어머니께서 “급여가 너무 적어 먹고 살려고 그러는 것이다”고 답하셨다.

당시 현대자동차는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12시간 맞교대로 근무가 돌아가고 있었다. 급여는 대기업이라 표현할 수도 없을 정도로 낮았다. 당시엔 공장 생산직을 ‘공돌이’라고 무시하며 입사를 기피할 때 였다.

다른 지역에서는 모르겠지만 당시 울산에서는 공무원과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은 기피 대상이었다. 이들의 급여는 형편없었고, 급여로 생계유지도 힘들 때였다. 이들에 비해 울산에는 월급 많이 주는 대기업도 많았으며, 자영업자들이 노동자들에 비해 10배 이상 수익을 올리는 시기였다.

울산은 말 그대로 IMF 터지기 직전의 최고 호황기였다. 어린시절 내가 살던 동네에서 “친구 부모님이 공무원이나 현대자동차에 다니면 얻어먹지말고 너가 사줘라”라는 말을 수차례 들을 정도.

그런데 IMF를 거치고 울산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자영업자들이 몰락했으며, 대기업 사무직과 생산직들의 급여 격차가 급격히 좁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현대자동차 생산직은 해마다 급여가 오르고 성과급 등 소득을 합치면 전국에서 상위권에 꼽히는 연봉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약 15년이 흘러 현대자동차를 살폈을 때 현대자동차는 그 시절 그대로 파업을 동반하며 연봉협상을 하고 있었다. 1억 연봉에 주간 2교대제 근무, 각종 복리후생을 동반하며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직장이 되었지만 한결같은 모습으로 파업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으며 ‘귀족 노조’라고 말을 들으면서도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었다.

또 현대자동차 근로자의 특권이랄까? 현재는 모르겠지만 약 10년전까지 현대자동차 근로자들은 에쿠스 제외한 모든 차량에서 25%~30%를 할인받고 구매할 수 있었다. 2년에 한번 구매가 가능한 복리후생이다. 근로자들은 30% 할인을 받고 차량을 구매해 2년 뒤 본인이 산 가격에 중고매매상에 되팔고, 다시 신차로 산다. 돈 다 내고 현대자동차 사는 일반사람들과 차별로 봐야할까.

이런 현대자동차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너무하다고 표현한다. 울산 친구들 중에 부모님이 현대자동차를 다니던 친구들은 나에게 “너희 아버지도 현대자동차에 다니면 이해를 할 거다. 계속 나오는데, 왜 파업을 멈추겠냐”고 말한다.

현대자동차 생산직들을 편들었던 어머니께서도 언론에서 현대자동차 생산직 파업 기사를 볼 때마다 “예전 그 사람들이 왜 저렇게 변했나”고 하신다. 그때 힘든 시절에 대한 보상 요구일까. 이제는 사람들에게 베풀고 살 정도가 되었으면 다른 노동자들에게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신다.

현대자동차 생산직들이 이해는 된다. 밖에서 무슨 얘기를 들어도 내가 중요한 건 누구라도 마찬가지 아니겠나. 그런데도 '적당히'라는 말이 있다.  울산 발전의 주역들이 현재는 사람들에게 욕을 먹으며, 변질됐다는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적당히'라는 말이 꼭 필요할 때 같다.

김시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