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Y의 오늘의 식후경] 겨울 대게의 참맛, 영덕
[PSY의 오늘의 식후경] 겨울 대게의 참맛, 영덕
  • PSY
  • 승인 2019.01.23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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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에 거주 중인 PSY는 '맛과 여행'을 대주제로 앞으로 미디어팜 독자들의 입맛을 책임져줄 것이다.

해를 토해내기 전 겨울 바다는 특히 노여운 얼굴이다. 하늘을 닮은 푸르름은 찾아볼 수 없고 어둡고 차가운, 매일매일 해를 잡아먹어도 넉넉함과 붉음이 없는, 무자비하리만치 검고 냉정하지만 그 속엔 내포된 생명의 근원과 무한한 생명력으로 난 이 계절의 바다를 더 좋아하는 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PSY는 여건이 되는 한 지금의 맛과 지금의 풍경을 식후경을 통해 가급적 많이 전달하고자 한다. 제목답게 이번 여행은 이 계절에 그 맛이 더하는 대게의 참맛, 영덕행이었다.

해가 어슴푸레 질 무렵 도착한 영덕 강구항은 기존 거리 외 매립지로 새롭게 조성된 해파랑공원으로 이곳을 한적한 시골바닷가로 안 내 기억의 오류를 정확히 지적해냈다. 주제에 충실코져 일단 횟집부터 찾았고 다행히 강구에서 청송으로 시집오신 지인 분 도움으로 싸고 양 많은 대게수산까지 추천받았다.

현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가게라 양과 가격을 정하지 않고 식객이 원하는 박달대게와 홍게를 적절히 섞어 시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주시는 바람에 시작부터 너무 좋은 기운이었다. 물론, 떨어진 게다리랑 몇 마리 더 덤으로 주시는 센스까지 발휘하시는 춘자대게 사장님!! 거기다 오롯이 게에만 집중하라고 다른 찬을 먹지 말라시며 양념값도 안 받으셨던 대게수산 사장님!!

대게수산은 우리 동네 시장처럼 게를 따로 사서 가져오면 1인당 회초장값(1인 3~4,000원)을 받고 기본 찬과 게를 쪄주는 시스템이었다. 물론 수산과 식당을 겸하는 횟집도 많았지만 이럴 땐 현지인의 추천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게 제일 좋은 처세술이거늘.

 

해를 토해내기 전 겨울 바다는 특히 노여운 얼굴이다. 
이번 여행은 이 계절에 그 맛이 더하는 대게의 참맛, 영덕행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대게를 일명 '목욕탕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하나하나 일일이 손질해주신 덕분에 촉촉하고 따뜻한 대게살만 제비새끼처럼 오물오물 받아먹는 호사를 누렸다. 

 

즐거운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대게를 일명 '목욕탕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하나하나 일일이 손질해주신 덕분에 촉촉하고 따뜻한 대게살만 제비새끼처럼 오물오물 받아먹는 호사를 누렸다. 실크실 같은 게살의 기분 좋은 달큰함과 쫄깃거림과 부드러움을 넘나드는 매력 덕에 킹크랩보다 대게를 더 좋아하는 PSY의 미각은 제대로 자극을 받았다.

전복껍질을 넣고 끓여야 진하게 우러나오는 국물처럼 알맞게 쪄진 게살에선 껍질의 키토산이 녹아든 듯 강인하면서도 다양하고 깊은 풍미가 나왔다. 

밥도둑계를 평정한 강자답게 게내장의 짭조롬한 맛은 바다 그 자체를 품은 태초의 맛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배부르다고 게뚜껑에 밥을 비벼먹지 않는 이들은 애초부터 대게를 먹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겨울밤엔 뜨끈한 국물이 제격이라 반주와 곁들일 매운탕을 시켰다. 한치까지 들어간 잡뼈매운탕이었다. 잡뼈매운탕은 마치 한국인의 국물사랑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알려주는 듯 했다.

이런 감탄을 자아내는 맛과 대게가 풍년임에도 관광객이 줄어 시름에 빠진 영덕의 어민과 자영업자분들의 한숨이 안타까웠다.

 

겨울밤엔 뜨끈한 국물이 제격이라 반주와 곁들일 매운탕을 시켰다. 한치까지 들어간 잡뼈매운탕이었다.

 

조용하게 전세 낸 듯한 착각속에서 식사를 마치고 해파랑공원이 조성되어 새단장한 덕에 리모델링한 깨끗한 숙소 '바다소리'에서 저렴한 가격에 흡족하게 잘 수 있는 건 평일 여행의 백미이지 싶다.

'비수기에 오면 황태자, 성수기에 오면 노숙자'를 강조하시던 어느 사장님의 명언이 제대로 들어맞았던 일정이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 검은 창문 저편 바다를 배경으로 맥주 한 캔 마시며 달래보는 겨울밤의 고즈넉함은 여행중독의 금단현상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숙면 후 이상한 분위기에 눈을 뜨니 통창을 통해 붉게 올라오는 동해바다의 일출이 마치 한 폭의 액자처럼 펼쳐지는 통에 아침부터 상기된 얼굴과 기분좋은 설레임으로 바다를 양껏 감상할 수 있었다. 3월의 해는 어떤 모양으로 떠오를지 궁금해 대게축제 때는 다시 한 번 영덕을 방문할 생각이다. 펜션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2층 까페에서 직접 구운 맛난 빵과 커피 한잔으로 여행의 완성까지 하고서야 영덕을 떠날수가 있었다.

 

배부르다고 게뚜껑에 밥을 비벼먹지 않는 이들은 애초부터 대게를 먹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누군가 '여행은 걸어다니는 독서'라는 말을 한 게 기억이 난다. 그 지역의 제철음식을 경험한다는 건 그 곳의 풍광, 그곳 사람들과 함게 교감하는 가장 빠르면서도 직접적인 독서감상문이 아닐까 싶다. 이 글을 마무리하며 다음 책으로 어디를 읽고 어떤 맛을 적어야 할 지 행복한 고민에 불면의 밤을 맞이할 것 같은 예감이다.

글·사진/P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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